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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Apr 11. 2023

독이 된 타인의 향수냄새

술 취한 무리들의 불쾌한 냄새보다 더 해로운 향수냄새라니....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부활절 덕택에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휴일이었다. 아이들과 부활절 기간을 함께 하시겠다며 아이들의 할머니가 아이들을 데려가셨다. 덕분에 둘만 오붓하게 뒹굴뒹굴 시간을 보냈다. 나이가 드셔서 힘에 부치신 지 차는 집에 놔두시고 아이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오셨다. 우린 기차역에서 아이들을 데려오면 되고 어머님은 다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시는 일정이었다. 점심시간이 낀 일정이어서 우리가 점심을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가실 때는 아이들이 원하는 메뉴로 사드렸는데 돌아가실 때까지 사드리기가 미안해서 김밥을 싸서 드렸다.


어머니를 위한 김밥을 싸는 김에 온 가족을 위해 김밥을 쌌다. 덕분에 아침에 좀비처럼 일어나 김밥을 말고 그릇을 정리했다. 그러고 나니 오전시간의 대부분이 흘러가버렸다. 잠시 쉬었다가 트램을 타고 아이들을 데리러 중앙역으로 향했다. 트램을 탄지 얼마되지 않아 건너편 자리에 술 취한 무리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에게서 상당히 불쾌한 냄새가 났다. 냄새에 민감한 편이라 그에게 자리를 옮기는 게 어떨까 물었다. 물론 건너편 무리들에게 들리지 않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냥 좀 참아보자는 그의 대답에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다행히 그들은 트램에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드디어 숨쉬기 편해지나 보다 싶었는데, 어디선가 향수냄새가 코를 찌른다. 좀 불쾌할 정도로 진했다. 무심코 계속 그 자리에 머물렀는데, 어느 순간 머리가 찌근찌근 아프기 시작했다. 멀미를 하는 느낌까지 결국 그 자리를 벗어났다. 계속 머물다간 메슥거림 덕에 구역질까지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우리가 내리는 정류장이 멀지 않아 금세 내려 바깥공기를 한껏 들이켰다. 자리를 옮기지 않고 계속 앉아있다 내린 그가 향수냄새가 너무 독해 자신도 조금 어지럽다 했다. 그가 보통 진한 향수냄새를 풍기는 사람은 냄새에 둔한 노인인 경우가 많은데, 40대 중반의 전형적인 핀란드 여자라서 놀랐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냄새의 근원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트램에서 내려 크게 들이마신 헬싱키 시내의 공기는 마치 숲 속 한가운데서 맘껏 들이마시는 신선한 공기처럼 달았다. 누군가 과하게 뿌린 향수가 내겐 독이었다. 술 취한 무리의 냄새는 불쾌했지만, 나를 해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 과한 향수는 불쾌함은 물론 나에게 두통까지 안겼다. 아이들과의 재회에 대한 설렘 덕에 두통에 대한 염려는 금세 잊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아이들과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가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에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두통은 잊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아이들이 짐을 풀고 할머니와의 시간을 떠드는 모습을 지켜보느라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어수선했던 집안이 차분해지자 두통이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불어 딱히 머라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함까지 결국 진통제를 찾아 먹었다. 그 여자는 알까? 자신의 독한 향수가 술 취한 무리의 상당히 불쾌한 냄새보다 더 역한 건 물론이고 다른 이를 고통스럽게 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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