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Apr 13. 2023

난 너와 산책하고 싶었는데...

함께 하는 삶이지만, 동시에 같은 걸 원하는 건 어렵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부활절 휴가의 여파인지 글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은근 이런저런 집안일을 하다 보니 시간도 휘리릭 흘러갔다. 이제야 자리에 앉아 부활절 기간을 곱씹을 여유가 생겼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어머니가 아이들을 데려가셔서 둘만 보내 시간이 있었는데, 이번엔 그때와 조금 달랐다. 예전엔 일상에 아이들만 빠진 거라 그저 아이들 돌보는 일이 줄어든 것뿐이었는데, 이번엔 부활절 휴일이라 아이들 없이 보내는 온전한 휴일이었다.


부활절 휴가 때 옆지기랑 같이 걷고 싶었다. 첫째가 뱃속에 있을 때 따스한 봄날 그와 함께 산책했던 길을 다시 걷고 싶었다. 한가로이 봄날의 볕을 즐겼던 간이 선착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백조를 마주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그때 그 순간을 추억하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았다. 


따스한 봄날을 떠올리며 과거의 추억 한 조각을 펼치고 싶었던 나의 제안을 그는 미안해하며 거절했다. 피부가 쓸려서 오래 걷는 게 힘들다 했다. 짧은 동네 산책은 괜찮지만 왕복 1시간 정도가 걸릴 긴 산책은 무리라 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섬, 늪지 위에 나무를 깔아놓은 운치 좋은 길, 나무로 만든 간이 선착장, 새를 관찰할 수 있게 나무로 만든 자연친화적인 전망대까지 아기자기함이 넘치는 그 길을 둘이 걷고 싶었는데... 


우린 둘은 참 다르다. 무식하게 잘 걷는 나와 달리 이런저런 이유로 오래 걷지 못하는 그. 혼자 걷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와 함께라면 더 좋을 것 같은 날이 있는데, 둘이 동시에 그런 감정을 느낄 때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컴퓨터를 사랑하고 영화광인 그는 외출은 효율적으로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가끔 운동삼아 좀 오래 걷기도 하지만 천천히 풍광을 즐기는 산책과는 거리가 멀다. 


결국 점심을 먹으러 외출하고, 장 보러 외출한 것을 제외하곤 집에서 뒹글거리며 그가 원하는 영화를 함께 보며 휴일을 보냈다. 영화가 길어서 평소에 볼 엄두를 못 내던 영화들을 연달아 봤는데, 오랜 시간 앉아있다 보니 이곳저곳 결리고 쑤셔서 힘들었다. 나의 체력적 부침으로 인해 중간에 쉬기도 하고 자리를 바꿔서 영화를 보기도 했는데, 영화광인 그는 나와 달리 별 어려움 없이 영화를 즐겼다. 역시 우린 다르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이 된 타인의 향수냄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