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Apr 18. 2023

내가 한 일에 대해 생색내기

지속가능한 배려를 위한 찔러서 고맙다 소리 듣기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지난 주말은 종종거리며 바쁘게 지냈는데, 지금은 무얼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뭔가 까마득하다는 느낌까지 든다. 토요일은 아이들과 함께 한글학교에 갔다. 냉동식품으로 채식버거용 버섯패티와 동그랑땡을 이틀에 걸쳐서 만들었고, 오랜 시간을 들여 바느질통을 정리한 건 기억난다. 틈틈이 아이들 삼시 세끼를 챙겼다. 글을 끄적거릴 여유도 없었다. 딱히 별로 한 게 없는 거 같은데 매 순간 바빴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월요일을 맞이하여 어쨌든 글을 써보려 자리에 앉았는데 머리가 멍하다. 지난주에 마무리하지 못한 글을 열어보니 목요일에 쓴 글이 눈앞에 펼쳐졌다. 과거의 나야! 주말은 그렇다 쳐도 금요일엔 무얼 한 거냐?


부활절에 느꼈던 감정 중 하나를 회상해서 글을 썼다. 줄줄이 사탕처럼 딸려오는 이야기들을 끄적이다 싹둑 다 잘라내고 글을 시작하게 한 감정에만 집중해 글을 마무리했다. 배가 산으로 가나, 이 큰 이야기를 어찌 정리하나 부담을 느끼다 처음의 마음에 집중했다. 곁가지로 끄적인 글은 미래의 나에게 미루고 오늘의 나는 산뜻하게 글을 마쳤다. 글을 쓰고 나면 상큼한 마음에 한동안 붕 떠있는 기분이 든다. 그 기분을 즐기고 싶지만 멍 떼리긴 싫어 주변을 살폈다. 텅 비어있는 건조대가 눈에 들어왔다.


부활절 휴가를 여유롭게 즐긴 그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척 바빴다. 급기야는 아이들의 체스교실 동행을 부탁했다. 그 시간 동안 집중해서 할 일이 있다는데 그날이 오늘이다. 둘이 함께 살기 시작한 뒤 얼마되지 않아 그가 친절하게 내 빨래와 자신의 빨래를 함께 세탁기에 돌렸다가 내 흰옷을 회색으로 만든 뒤로 우리는 각자의 빨래는 스스로 알아서 한다. 빨래를 미루고 미루다 하는 그가 아침부터 세탁기를 돌렸다. 꼭 돌려야 하는 상황이었으리라. 그의 옷을 널어주기로 마음먹고 그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대가를 요구했다. 


"Payment!"

나는 그에게 볼을 내밀었다. 그는 별 대꾸 없이 바로 내 볼에 키스를 했다.

"Your payment is accepted. Since you're busy, I will hang your laundry."

"Thank you!"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그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거나, 공동으로 해야 할 육아나 가사를 혼자 했을 때 나는 내가 한 일에 대해 잊지 않고 생색내려 애쓴다. 과하지 않게 그러나 내가 한 일에 대해 그가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애쓴다. 그리고 그가 한 일에 대해서도 감사표현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처음 우리가 함께 했을 때 성격 급한 나는 눈에 보이는 집안일들을 그냥 다 해치워버렸다. 그에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성가셨고 내가 감당할만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상황이 바뀌었다. 성격은 여전히 급했지만, 몸이 지쳤다. 결국 그에게 집안일의 반 정도를 할당했다. 때론 더 넘기기도 했다. 함께 해야 하는 가사였지만, 대부분 내가 하던 일을 나누는 꼴이 되다 보니 그에게 내가 명령하는 것처럼 들렸나 보다. 그는 한동안 내가 'bossy'하다고 불평했다.


그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안 하니 하라고 요구한 건데, 그는 내 말투를 걸고넘어졌다. 이전에 내가 베푼 친절은 일상에 스며들어 당연한 일이 되어 잊힌 것 같았다. 자기 몫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가만히 있다가 그걸 시켰다고 불평하는 그가 싫었다. 전체적인 상황파악은 하지 않고, 참다 참다 해야 할 일을 말해준 나에게 불만을 표시하는 그에게 화가 났다. 당연히 해결책 모색도 내 몫이었다. 그에게 매번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기 지치고 그의 불평을 듣는 것도 싫으니 우리가 해야 할 가사를 나열하고 정확히 반으로 나눈 뒤 언제 할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내 제안을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그제야 내가 요구한 일이 함께 해야 하는 일이란 걸 깨달은 것 같았다. 그리고 집안일을 반으로 칼같이 나누면 내가 시켜서 하는 일보다 일이 많아질 것이란 결론에 도달했던 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집안일을 덜 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집안일 나누기는 거부했다. 결국 어영부영 넘어갔지만, 그 뒤로 그는 이전보다는 스스로 집안일을 거들었다. 나는 내 말투를 고치려 노력했다. 꾹꾹 눌러 담았다가 폭발해서 화내듯이 지금 당장 이거 해라가 아니라 내가 이걸 했으니 며칠 내로 네가 저걸 하면 되겠다는 식으로 말하려 노력했다.


그와 함께 할 시간이 엄청난데, 나의 친절이 당연한 게 되는 걸 방치할 수 없었다. 내가 이거 했으니 저거 해라도 가끔은 쓸모 있지만, 매번은 과하게 계산적인 것 같아 꺼려졌다. 어쩌다 그가 할 일보다는 내가 한 일에 대해 집중해 봤다. 지나치지 않는 선에서 내가 한 일을 알아달라는 뉘앙스로 내가 한 일에 대해 생색을 내며 고맙다는 말을 챙겨 들었다. 종종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가 한 일이나 그가 할 일을 대답으로 듣기도 했다. 괜찮은 대화법이라는 생각에 내가 한 일에 대한 생색내기를 챙겨하고 있다. 또한 그의 배려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고 표현하려 애쓴다. 그리고 마음으로 계속해서 날 위해 달라고 외친다.


매거진의 이전글 난 너와 산책하고 싶었는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