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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y 23. 2023

참나물, 핀란드 봄의 한 조각

친구의 한국 한 조각 선물에 대한 답례로 핀란드 한 조각 어떨까?

배경 이미지: 참나물 채취하다 찰칵! 2023. 5. 19



마흔이 넘으니 흘러가는 친구가 많다. 아마도 해외살이라 더 심한 것 같다. 다들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어쩌다 다시 만나면 어제 본 듯 반가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중 기회가 될 때마다 잘 챙겨주는 친구가 있다면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핀란드 산다는 이유만으로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친구는 처음부터 잘 챙겨주었다. 신랑이 핀란드인이라 핀란드 이웃으로 오랜 시간 함께 할 줄 알았는데, 떠나버렸다. 현재는 한국에서 살고 있다. 그래도 신랑이 핀란드인이라서 1년에 한 번 또는 두 번 정도는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친구가 핀란드에 올 때면, 수고스럽게도 내가 원하는 자잘한 한국의 것들을 배달해 준다. 자잘한 것들이라 하지만 이것저것 모여 결코 자잘하지 않다. 잊지 않고 찾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번거로운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함께 먹을 한국 음식도 챙겨 오는 친구가 참 고맙고 대단하다. 그 친구가 작년 여름에 스치듯이 핀란드인 신랑이 핀란드 참나물을 먹고 싶어 하더라 했다. 향이 과하지 않은 나물만 좋아하는 나는 봄이면 동네 지천에 널려 있는 참나물엔 관심이 없었다. 그냥 흘러들었는데, 봄의 따스함이 친구의 참나물 이야기를 떠오르게 했다. 문득 참나물을 채취해서 데쳐서 냉동보관하면 친구가 오는 여름에도 참나물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친구가 올 때마다 한국의 이것저것을 사다 주는데, 매번 받기만 해서 미안했는데, 올해는 참나물로 핀란드의 봄 한 조각을 선물하면 어떨까? 여름에 먹는 봄의 맛! 어린 시절 씀바귀, 쑥, 고사리 등을 채취한 기억이 있지만, 오랜 도시 생활로 그 시절 생활의 지혜는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참나물을 뜯을 생각을 하니 내가 아는 그게 참나물이 맞는지부터 여린 잎의 기준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참나물이 자라는 곳은 대체로 개들의 산책코스 옆자락이기에 개들의 배설물에 대한 염려도 앞섰다. 주변의 친절한 한국인의 조언을 바탕으로 마음을 다잡고 개들이 가지 않을 만한 곳을 찾아서 참나물을 채취하기로 마음먹었다.


참나물 채취에 대한 마음을 다잡은 날, 우연히 핀란드 친구와 메신저로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친구에게 참나물을 언급했다. 먹거리와 텃밭 가꾸기에 관심이 많은 친구는 나이 드신 핀란드인들도 참나물을 파이로 만들어 먹는다며, 자신의 도시여름별장에도 산딸기관목 아래로 참나물이 잡초로 잔뜩 자라고 있다 했다. 개가 드나들지 않는 마당은 참나물 채취의 최적의 장소인데, 지나다 잠시 들러도 된다고 한 친구의 도시여름별장에 참나물이 있다니!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때마침 별장에서 휴가 중인 친구도 잠시 보고 참나물도 채취할 겸 집에서 자전거로 15분 거리에 있는 친구의 별장에 다음날 방문하기로 했다.


친구는 도시여름별장을 작년에 구매했다. 핀란드의 여름별장은 자연을 즐기기 위한 목적이라 그런지 대체로 작고 소박하다. 원래 있던 별장 건물이 관리가 부실했는지 나무가 다 삭아서 겨우내 철거하고 새 건물을 세웠다. 친구의 별장은 아직 이곳저곳 마무리할 것들이 있어 입구가 조금 어수선했다. 안쪽 마당은 여전해서 참나물 채취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친구가 전날 야외 발코니 나무바닥에 방수를 위해 타르를 발라서 타르 냄새가 조금 진했지만, 나무 탄내 비슷해서 괜찮았다. 화학적인 냄새엔 향수라도 곧잘 두통이 생기는데, 나무로 만든 타르 냄새는 진해도 두통을 일으키진 않았다. 그렇게 타르 냄새를 맡으며 참나물을 양껏 채취했다. 너무 자라 채취하기 애매한 참나물은 친구를 위해 제거했다.


집으로 돌아와 참나물을 씻어서 데치고 소분해서 냉동하고 소량을 맛보기로 무쳤다. 역시나 향이 강해 그 수고를 해가며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만약 다음에 참나물을 무친다면 간장보다는 초고추장을 써야겠다. 어쩌면 참나물의 향이 봄내음으로 입안에 봄소식을 전해주는 게 아닐까? 그나저나 친구 별장에서 참나물만 가져온 게 아니었다. 옷에 타르 냄새가 진하게 베어 숯불냄새 비슷한 향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빨래까지 하고서야 참나물에 관한 나의 짧기도 길기도 한 여정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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