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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Aug 29. 2023

무미건조한 핀란드 웨이터가 그립다.

화내는데 쓸 에너지가 아까워, 그냥 그렇게 살아라 싶었던 웨이터...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오랜만에 친구와 점심을 했다. 평일 점심은 직장인을 유혹하기 위해 핀란드의 많은 식당들이 점심 특선 메뉴를 저렴하게 제공한다. 점심 특선을 제공하는 레스토랑 중 나름 좋은 곳을 골랐다. 우리는 연어와 샐러드를 선택해서 나눠 먹었다. 스타터가 서비스였는데, 수프나 샐러드 중 선택이었다. 샐러드를 메인으로 시킨 우리는 수프를 주문했다. 음식도 맛있고 친구와의 수다도 좋았다. 기분 좋게 수다를 이어가던 중 옆 테이블의 큰 소리가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중국인 관광객으로 보이는 커플이 메뉴판을 살피고 있었다. 남자가 모바일의 번역기를 사용해 메인 메뉴를 주문했다. 음식을 주문받은 웨이터가 서비스로 수프나 샐러드가 제공되는데 어느 걸 원하냐고 묻는데, 영어가 서툰 남자가 질문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주문을 반복했고, 웨이터는 수프나 샐러드를 선택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친구가 이를 안타깝게 여기며 당황한 손님에게 애피타이저라고 설명해 줬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내가 내 건너편에 앉아있던 여자에게 손짓까지 하며 천천히 영어로 주절주절 설명을 해주었다. 다행히 여자가 내 말을 이해하고 남자에게 설명하여 수프를 주문했다.


웨이터는 본인의 영어가 유창하지도 않으면서 마치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이 영어가 서툰 사람을 처음 만나 쉽게 설명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소리 높여 말하면 상대방이 언젠간 알아들으리라 믿는 듯이 행동했다. 답답한 상황이긴 했지만, 무례했다. 게다가 옆 테이블의 손님들은 우리의 개입에 대해 감사함을 표현했지만, 웨이터는 주문만 확인하고 자리를 떴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무례한 웨이터가 우리의 접시를 치우러 와선 커피를 마시겠냐고 물었다. 원래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호기심에 커피나 차가 점심에 포함된 것이냐고 물었다. 그 웨이터는 수프가 공짜인데, 공짜 후식까지 원하냐며 다 공짜길 바라냐며 비아냥거렸다. 순간 당황한 나를 대신해 친구가 대다수 레스토랑들의 주중 점심에는 커피나 차가 포함되어 있어 확인차 물어봤다고 그를 돌려보냈다.


예전 같으면 매니저를 불러서 웨이터의 태도에 대해 불평했겠지만,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을 부정적 감정으로 낭비하고 싶지 않아 우리의 대화에 집중했다. 그런데 다시 그 웨이터가 우리의 시선을 끌었다. 웨이터의 무례함이 이번엔 중국인 커플이 아닌 반대편 옆 테이블에 있던 나이가 지긋한 커플에게 향했다. 음식을 서빙하는 그에게 남자손님이 무언가를 달라고 하자 자긴 손이 두 개라 서빙하고 가져다주겠다며 윽박지르듯이 답했다. 같은 말이라도 재치 있게 응대할 수 있을 텐데... 상당히 거슬리는 톤 탓인지 웨이터가 우리의 대화에 불쾌하게 끼어든 느낌이었다.


세 번의 무례함을 직간접적으로 겪게 되자 그곳에서 기분 좋은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다행히 식사도 마친 터라 조용히 자리를 떴다. 충분히 항의할 수 있었지만, 그 웨이터의 잘못을 지적하며 내 기분을 망치는데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쓸 에너지도 부족한 판에 무례한 이에게 화내느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 레스토랑을 당분간 가지 않는 게 최선책이라 생각했다. 


그나저나 중국인 커플과 우리에게 무례하길래 인종차별주의자인가 싶었는데, 북유럽 사람들로 보이는 나이가 지긋한 커플에게도 똑같이 무례한 걸 보니 웨이터는 그냥 인성이 쓰레기였다. 그는 외모나 발음으로 추정컨대 남유럽 출신 같았다. 차라리 무미건조한 핀란드 사람이었다면 중국인 커플에 대한 답답함은 어쩔 수 없었다 치더라도, 우리와 나이 지긋한 커플에게는 덤덤하게 커피는 얼마다라는 설명이나 원하는 걸 곧 가져다주겠다고 했을 것이다. 무뚝뚝한 핀란드 사람의 서비스가 그립게 느껴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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