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니요" 말고 아들과 유창한 대화를 해보고 싶다!
배경이미지: 엄마가 꽃을 둘러보는 사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기다리는 아들
눈부신 봄날, 아들과 동네 산책을 하고 싶었다. 하교 후 컴퓨터 앞에만 앉아있던 아들에게 제대로 된 휴식을 강제할 요량으로 밖으로 향했다.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들은 내게 딱히 할 말이 없는 듯했다. 아들과 대화하고 싶은 아쉬운 내가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대화를 이끌어 나가야 했다.
날이 좋아지자 운동삼아 산책하기 시작한 그가 기회가 될 때마다 아들을 대동했다. 산책하는 동안 아빠와의 대화에 대해 물었다. 아들은 예상대로 그에게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요즘 틈만 나면 아이들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있다. 천상 선생이다.
아들 반 수업 분위기를 앞장서서 헤치던 아이가 최후통첩으로 반을 옮긴 게 떠올라, 반 분위기가 좋아졌는지를 물었다. 단답형의 긍정의 답이 돌아왔다. 반을 바꾼 아이가 혹시 괴롭히던 아이는 없었는지 물었는데 묵묵부답이었다. 혹시나 싶어 반응이 찰질 것 같은 친구의 이름을 대며 괴롭힘 여부를 물었더니, 그제야 그렇다고 짧게 답했다.
함께 산책하는 게 좋다며 어떤지 묻자 아들은 어깨를 으쓱했다. 사람이 아닌 벽과 이야기하는 거 같아 마음이 답답했다. 내가 대화의 기술이 모자라 자꾸 대답이 네, 아니오로 귀결되는 걸까? 문장으로 답을 요하는 질문을 하면 묵묵부답이거나 모른다 답하니, 결국 단답형의 답을 요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날이 덥다."
"웅. 더워! 힘들어."
"그럼 우리 산책하다가 아이스크림 사 먹을까?"
"네!"
"아이스크림 골랐으면 엄마 아이스크림 고를 때까지 잠시 기다려줄래? 엄마가 아이스크림 고르는 사이에 네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았으면 해."
"네."
"이제 꺼내도 돼."
"이거 먹을까요? 저거 먹을까요?"
"네가 먹고 싶은 거를 고르렴."
"1번 하고 2번 중에 하나를 골라주세요."
"1번."
"그럼 저거요."
"아이스크림 맛있다."
"네. 먹으면서 계속 걸어요."
"빨리 산책을 끝내고 싶구나."
"더워서..."
"난 이 꽃밭 둘러보고 싶어. 힘들면 저 벤치에 앉아서 기다릴래?"
"이제 말 보러 갈까?"
"네."
"난 네 존재만으로도 행복해. 고마워!"
"네. 그런데 목말라요."
"아이스크림 먹어서 목마르는구나. 그런데 엄마가 물 안 들고 온다고 했잖아."
"네."
"집에 가서 물 마시자."
"네. 그런데 목이 많이 말라요."
"집에 가면 네가 좋아하는 스파클링 워터 작은 병 하나를 엄마와 나눠 마실까?"
"네! 엄마 집에 조금 빨리 가요."
"그래. 네가 앞장서. 네 속도에 맞춰 걸어갈게. 그런데 너 주로 네, 아니오로 답하는 거 아니?"
"답하다 보면 그런 걸 어떻게 해요? 그럼 머라 해요?"
"아빠가 너 영어 얼마나 잘하는지 영어로 이것저것 질문했는데, 주로 네, 아니오로 답했다더라. 그래서 네 영어 실력을 평가하기가 어렵다고 했는데, 지금 우리의 대화도 그렇네. 하하하... 너 진짜 핀란드 남자다!"
아들과의 대화를 회상하며 적어봤는데, 역시나 아들은 주로 "네"라고 말했다. 글로 보면 같은 "네"지만 상황에 따라 목소리 톤은 상당히 달랐다. 적당한 대답의 "네"와 원하는 걸 얻게 되어 흥분한 대답의 "네"는 목소리는 물론이고 몸의 반응도 달랐다. 좀 더 빨리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좀 더 빨리 스파클링 워터를 마시기 위해 더위에 지쳐 늘어지게 걷던 아들의 걸음이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