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환경상 핀란드어, 한국어, 영어, 그리고 나라환경상 스웨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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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초등학교부터 다양한 외국어 수업을 제공하는데 학교마다 제공하는 외국어 수업 종류가 다르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1학년부터 의무로 듣는 A1 외국어로 영어와 프랑스어 수업을 제공한다. 우린 일말의 고민 없이 아들에게 묻지도 않고 영어를 선택했다. 아들에게 3학년부터 A2 외국어로 스웨덴어나 독일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의무인 A1 외국어 수업과 달리 A2 외국어는 선택이라 우린 아들이 A2 외국어 수업을 듣지 않는 선택을 했다. 아들의 담임 선생님과의 학습상담에서 우린 아들이 이미 핀란드어, 영어, 한국어로 인해 복잡한 언어환경에 처해 있어 또 다른 언어를 더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담임 선생님도 우리의 의견에 동조하며 외국어 추가를 권하지 않았다. 그 당시 아들도 딱히 외국어를 하나 더 배우고 싶어 하지 않았다.
A2를 들을 필요가 없다는 결정은 고민 없이 내렸는데, 스웨덴어와 독일어가 표시된 3, 4, 5학년 아들 반 시간표를 마주할 때면 가끔 의문이 생겼다. 남들 다 듣는 수업을 굳이 듣지 않기로 한 결정이 옳은 걸까? 남들 하는 건 다 해야 하고 일단 하는 건 어느 정도 잘해야 한다 여기는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 보다. 다행히 나의 흔들림을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그가 우리의 결정이 옳다는 단호함을 보였다. 핀란드 공용어인 스웨덴어는 어차피 배울 테니 조급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다. 그의 단호함 덕에 내 불안함은 아들에게까지 미치지 않았다. 외국어에 일찍 노출된다고 꼭 그 외국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다양한 외국어를 배운다고 그 외국어를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은 왜 그리 흔들렸는지... A2 외국어를 듣지 않기로 한 데는 아들이 핀란드어에 집중하길 바란 것도 있었는데, 아들의 핀란드어가 향상되어 그때의 그 마음을 잃어버렸나 보다.
이번 가을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아들은 B1 외국어 수업으로 스웨덴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B1 외국어 수업은 A1 외국어 수업처럼 의무인데 스웨덴어와 영어 중 선택이다. 이미 A1으로 영어를 선택한 아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B1 외국어 수업으로 스웨덴어가 주어졌다. 다른 아이들에겐 어떨지 몰라도 아들에게는 초등학교 6학년이 두 번째 외국어를 배우는 적절한 시기인 것 같다. 모국어로 핀란드어를, 외국어인 듯 이중언어 또는 삼중언어인 듯 모호하게 영어를, 안정적으로 구사하고 있으니, 또 다른 외국어 추가가 혼란을 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모국어인 한국어는 나의 잘못된 교육방식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동안 휘청이긴 했지만, 작년부터 다시 자릴 잡아가고 있다. 더욱이 올해부터 학생수가 충족되어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외의 모국어를 쓰는 아이들을 위한 모국어 교육의 일환으로 학교에 한국어 수업이 개설되었으니, 한국어가 조금씩이라도 계속 나아질 것이다. 지금이 여러모로 두 번째 외국어로 스웨덴어를 배우기에 적절한 시기인 것 같다.
문득 교과과정에 외국어가 하나 더 추가된 것에 대한 아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지금 스웨덴어를 배우는 게 좋은지 진작에 A2로 스웨덴어를 배웠어야 했는지 아들의 의견을 물었다. 아들은 망설임 없이 지금이 좋다 했다. 3학년 시절부터 수업을 세시까지 들어야 했다면 그만큼 자유시간을 빼앗겨 고단했을 것이라 했다. 게다가 친한 친구가 A2로 스웨덴어를 배우다가 선생님이 못되게 굴어서 중간에 관두고 지금 아들과 함께 B1으로 스웨덴어를 배우고 있다며 그 경험을 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듯이 말했다. A2로 독일어를 배운 아이들은 선생님이 상당기간 아파서 대체 선생님이 자주 바뀌며 수업의 파행을 겪기도 했다고 했다. A2로 먼저 스웨덴어를 배운 아이들과 비교하면 스웨덴어를 잘 못해서 서운하지 않냐는 질문에 아들은 그 아이들은 그 아이들대로 수업을 받고 B1으로 배우는 아이들은 B1으로 수업을 들어서 전혀 상관이 없다고 답했다. 특히, 반 남자아이들 중 A2 수업을 듣는 아이가 딱히 떠오르지 않아 잘 모르겠다는 아들의 첨언은 나를 안도하게 했다.
아들만 A2 외국어 수업을 안 들었을까 봐 염려했는데,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A2 외국어 수업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하니 더는 뒤돌아 보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게다가 모범생인 아들의 친구가 선생님 때문에 중간에 관뒀다니 의아하면서도 아들이 그 수업을 듣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들이 지금이 좋다는 데다가 얼마 전 쪽지 시험에서 10점 만점에 9.5점을 받아오기도 했으니 지금이 스웨덴어 배우기에 딱 좋은 시기라 여기며 뒤돌아보지 말아야겠다. 그런데, A1으로 영어를 선택하고 A2로 스웨덴어를 배우면 B1은 무슨 언어를 배우게 되는 건지 궁금하다. 내년에 3학년이 되는 딸은 언어에 재능이 있는 데다가 그 덕에 영어는 또래 원어민 수준에 가까워서 외국어를 하나 더 배워도 무리가 되지 않을 것 같아 A2로 스웨덴어를 배우기로 했다. 딸은 A2로 스웨덴어보단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어 하지만, 스페인어 수업이 없어서 꿩대신 닭으로 스웨덴어를 배우겠다는데 동의를 했다. 딸이 3학년이 되면 내겐 복잡하게 보이는 핀란드의 외국어 수업에 대한 질문을 좀 해야겠다. 남매라도 무언가를 배우는데 제각각 적절한 시기가 있다는 게 신기하다. 보채지 말고 때를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어야 할 텐데 쉬운 일이 아니라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