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Apr 26. 2019

'아가~ 같이 책 보자!'가 불러온 사태

목이 터질 것 같지만, 딸이 원하는 대로 계속 책을 읽어주고 싶다!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2019. 4


엄마의 저질 체력 때문에 둘째인 딸은 아들보다 어린 나이부터 동영상을 많이 보고 자라고 있다. 첫째인 아들이 어릴 때는 아이랑 어떻게 노는지 몰랐으나 엄마의 체력은 쓸만했다. 당시 아들을 유모차에 태워 이곳저곳을 다니면 보채지 않아 자주 집 주변의 이곳저곳 (조랑말 보러 가기, 도서관 가기, 해변가 돌멩이 던지기, 작은 폭포 보러 가기, 새 관찰 전망대 및 오두막 가기, 섬에 걸어가기 등)을 돌아다녔다. 심지어, 집에서 꽤 떨어진 숲(도보로 45분 거리, 왕복 1시간 30분)까지 유모차를 밀고 가서 같이 놀다 돌아오곤 했다. 아들에게 해준 것처럼 지금 딸과 함께 밖에서 시간을 보내면 하루하고 몸져누을 것 같다.


그래서 딸과는 주로 집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보니 눈에 띄는 집안일을 하느라 아이는 뒷전인 경우가 많다. 그때마다  뽀로로, 마샤와 곰, 핑구, 미니언즈, Yle에서 볼 수 있는 아동용 애니메이션 등이 딸의 보모가 된다. 다행히도 엄마와 달리 언어에 재능이 있어 말을 곧잘 따라 하는 딸은  뽀로로 덕택에 가르쳐주지 않은 한국어 단어나 문장을 말해 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림 그리는 딸


딸은 절대 모르겠지만 오빠 어린 시절만큼 잘해주지 못해서 엄마는 딸에게 괜스레 미안하다. 아이랑 시간을 너무 같이 보내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들거나, 아이가 동영상만 너무 봤다 싶으면, 엄마랑 같이 책을 보자고 딸을 부른다. 아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보던 동영상을 뒤로하고 오빠 방 책장으로 달려가 책을 고른다. 두세 권씩 책을 고르던 아이가 어느 날부터인가 가져오는 책이 늘었다. 급기야는 책 한 세트를 다 읽어달란다. 혼자 다 꺼내기 힘드니 엄마에게 같이 꺼내자고 도움 요청까지 한다. 딸의 책 욕심이 부담스럽지만 사랑스러워서 딸과 같이 전집을 다 꺼내 바닥에 쌓아놓고 한 권씩 읽는다.


딸은 나와 나란히 앉거나 내 무릎 위에 앉아서 가끔 딴짓을 하며 책을 읽어주는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행복하게도 아직까지는 엄마랑 투닥거리는 시간이 제일 좋은 듯하다. 고맙다, 딸아! 그런 딸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매번 아이를 꼭 껴안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전집이라고 해도 유아를 대상으로 한 책이라 내용이 길지 않다. 천만다행이다. 가끔은 엄마가 금세 지쳐서, '그만 읽겠다.'와 '더 읽어 달라!'로 엄마와 딸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힘이 부쳐서 더 읽기 힘들 때마저도 책을 더 읽어달라는 딸아이의 모습은 너무 귀엽기만 하다. 그리고 미안하다.


엄마와 같이 책 보는 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