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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Sep 11. 2023

비눗방울의 추억이 방울방울

딸 덕에, 아들이 어린 시절의 즐거운 한때를 떠올렸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지난 8월 아이들과 마트 나들이에서 딸이 고른 버블건은 생각지 못한 기쁨을 안겨주었다. 딸이 산 버블건은 아들이 네 살 되는 해 봄에 한국에 갔을 때 사줬던 버블건보다 좀 조악해 보였다. 핀란드는 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한국에 비해 좀 느린 구석이 있는데, 버블건이 그에 해당하는 듯했다. 


신나게 버블건으로 비눗방울을 쏘고 있는 딸을 보고, 아들은 자기가 예전에 어떤 여자애와 버블건을 쏘며 놀던 장면이 떠오른다 했다. 꽤 즐거웠던 것 같다는 아들의 말에 눈물 날 뻔했다. 내가 기뻐하자 아들은 자신의 기억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밖이었는데 막힌 벽이 있었고 둘이 버블건으로 만든 비눗방울을 보며 즐거워했다고 했다. 


딱히 대단한 일상이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말한 적 없는데, 어린 시절의 순간이 아들의 기억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게 신기했다. 한 번도 떠올린 적 없다가 동생의 비슷한 모습에 기시감을 느낀 걸까? 문득 떠올린 아주 어린 시절이라니... 같이 놀던 여자애가 사촌누나라고 하자 아들은 마냥 신기해했다. 아마도 당시 차를 피해 집 아래 주차장에서 놀던 기억이 떠오른 것 같다.


아주 오래된 일을 기억한다는 거 자체가 기뻤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도 매우 반갑고 고마웠다. 둘째를 임신하고 있던 그 시절 입덧이 굉장히 심했다. 목으로 무언가를 넘기는 게 너무 역해서 물도 제대로 삼키지 못해 죽을 것 같아 살려고 부랴부랴 한국으로 향했다. 한국음식은 그나마 좀 넘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덕분에 예전에 즐기던 맛은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무언가를 먹을 수 있었고, 기운을 차렸다.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너덜너덜해진 나를 돌보느라 아들은 뒷전이었다. 딸을 맞이하느라 진이 빠진 덕에 그 시기 아들에 대한 기억이 많지 않다. 그나마 그때 찍은 아들의 사진을 보면, 내게 새록새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는 게 다행일 정도다. 그때만 생각하면 늘 미안한데, 아들에게 머릿속 저 깊은 곳에 고이 접어둔 좋은 기억이 있다는 게 너무 기쁘다. 


버블건 덕에 꺼내진 기억이라니... 아들이 버블건을 볼 때마다 그 좋았던 기분이 생각난다면 좋겠다. 아들에게 비눗방울과 함께 방울방울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이 있는 게 너무 좋다. 아들에게 어떤 계기가 없어 미쳐 꺼내지지 않더라도 즐겁고 행복한 어린 시절 기억이 많기 소망한다. 아들이 커서 사는 게 힘에 부칠 때 그 기억들이 버팀목이 되어주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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