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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Sep 19. 2023

'게이'가 친구를 놀리는 말?

하긴, 난 어릴 때 '홍길동'이라고 놀림당했는데... 올바름이란?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2023. 9. 18


하교한 아들이 그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했다. 드문 일이었다. 핀란드어라 다 알아들을 수 없지만, 중간중간 들려오는 소리가 반갑지 않았다. 초등학교 6학년은 아직 많이 어린가 보다. 쓸데없는 말에 휘둘리는 아이들이 많은 걸 보면...


학기 초부터 아들반의 대표 문제아가 급식 줄에 5번째로 서는 아이가 게이라고 놀려댔는데, 반의 모든 남학생들이 그 말에 선동되어 끌려다녔다. 한 달 정도 지속된 이 유치한 놀이에 짜증이 난 아들이 결국 담임에게 중재를 요청했고,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었다.


하교한 아들이 이 상황을 그에게 설명했고,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아들과 대화를 했다. 나는 게이라는 정체성이 놀림의 대상이 아니고, 이런 걸로 다른 사람을 놀리는 건 자신의 무지를 떠벌리는 행위라 설명했다. 게다가 그런 행동은 부모까지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니 절대 해선 안될 일이라 당부했다. 이 상황을 선생님과 의논한 건 매우 잘한 일이라는 칭찬도 잊지 않았다.


게이에 대해 언급할 때 정체성을 존중해야 한다면서도 한편으론 내 아이들만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런던에서 잠시 살았던 20대 후반의 나는 멋진 게이친구들과 잘 지냈다. 그들의 인간적인 매력에 반하며 성정체성보다는 사람의 됨됨이가 먼저라는 걸 몸소 체험했고, 편견 없이 살고자 애썼다.


내 아이들이 성소수자라 한다면... 이 먼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불편한 감정은 뭘까? 물론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겠지만, 제발 그 길로 들어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저런 멍청하고 유치한 놀림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일까? 아님 나의 이중성일까?


이런 묘한 느낌을 그에게 말했더니, 그는 그 선택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의 말이 맞는데, 난 좀처럼 그 말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와 나의 문화차이 탓일까? 생각이 많아진다. 다행히 이 주제로 나 혼자만 아들과 대화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있었고, 아들의 담임선생님도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이메일에 따르면 이문제에 대한 적절한 논의가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들과 누군가를 게이라 부르고, 누군가를 손가락질하고, 비웃고, 그걸 방치하고, 중재를 요청하지 않는 게 옳은 일인가에 대해 논의했다. 게다가 게이가 누군가를 놀리는 말로 사용되는 게 옳은지, 만약 남학생이 남자에게 관심이 있는 걸 알게 되었는데, 게이가 놀림이 대상일 때 어떻게 느낄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마지막으로 왜 한 명의 학생이 나서기 전까지 학기 초부터 이문제가 지속되었는지도 토론했다. 이메일 말미에는 재발 방지를 위해 학부모들의 지도를 부탁했다.


아이들은 철없고 유치하다. 그래서 종종 장난이 선을 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한다. 아직 배울게 많은 나이니까 그럴 수 있다. 그걸 바로 잡아줘야 하는 게 어른이고 사회가 아닐까? 그런데 한국은 왜 그런 어른과 사회가 사라지는 것 같은지... 아들이 이 문제가 멈추도록 제동을 건 아이라는 게 뿌듯하면서도 한국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스치는 건 왜일까?


그나저나 이 문제를 일으킨 아이도 어떤 관점으로 보면 소수자인데... 왜 그럴까? 우린 모두가 관점에 따라 소수자가 될 수도 있는데, 왜 다른 소수자를 밀어내려 할까? 그 아이가 한없이 어리석어 보이는데, 나와 내 가족이 그리고 사회의 다수가 한없이 어리석어 보이는 짓을 하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같은 의미에서 핀란드를 포함한 여러 나라에 유행처럼 커지는 극우의 목소리가 잦아들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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