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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Sep 25. 2023

백조의 호수

전에 봤던 공연인데... 꼬리에 꼬리는 무는 생각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백조의 호수, 전에 봤던 공연인데 왜 낯설까?


아주 오랜만에 발레공연을 봤다. "백조의 호수", 본 적이 있는 작품이라 여겼는데, 공연이 낯설어 당황했다. 발레리나 절친이 표를 2장이나 준 덕에 지인과 함께 공연을 봤다. 지인이 공연 전 스파클링 와인에 저녁을 샀다. 너무 잘 먹었던 탓일까? 1막 후반부에 지루했던 백조들의 군무에서 한동안 졸았다. 부끄럽다 싶었는데, 내 옆자리 관객이 단잠을 자고 있어 위안이 되었다. 


공연 시작 전 지인이 백조의 호수 줄거리를 물었는데 당황했다. 백조의 호수 이야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설명할 정도는 아니었던 걸 깨달았다. 게다가 공연이 내가 알던 이야기완 다르게 전개되었다. 2, 3막은 졸지 않고 관람했는데, 문득 떠오른 장면들과 매우 달랐다. 절친이 춤추는 내내 날갯짓을 하느라 팔뚝살이 빠질 정도라던 주인공의 날갯짓이 별로 없었고, 프랑스 보르도 국립발레단으로 간 친구가 이끌던 군무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다른 작품하고 헤갈렸나? 나이 들어 여러 기억들이 자꾸 엉키는데, 백조의 호수에 대한 기억도 그런가? 


3막이 어설프게 마무리되면서 내가 전에 본 백조의 호수는 다른 버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공연 뒤 절친에게 확인해 보니 내 예상이 맞았다. 내가 전에 봤던 백조의 호수는 예전에 있던 덴마크 출신 단장이 안무를 했던 버전이고 이번 건 바로 전 스웨덴 출신 단장이 있을 때 기획된 작품이었다.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덴마크 출신 단장의 작품이 더 재미있었다.


안타깝게도 더 재밌는 덴마크 출신 단장의 작품은 다시 볼 수 없다. 임기 말년 그는 자진해서 물러났지만, 사실은 불미스러운 일로 쫓겨났다. 그의 퇴진 후에도 한동안 그의 작품을 무대에서 볼 수 있었는데,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누군가가 그를 떠올리며 고통받지 않기 위함이다. 그의 부적절한 행동 탓에 그가 안무했던 관객의 호응이 좋았던 공연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발레단 측의 결정을 존중한다.



무대에서 반짝이던 친구


공연이 재미가 좀 덜했지만, 어쨌든 친구의 춤은 멋졌다. 친구는 왕자의 결혼 상대 후보인 네 명의 공주 중 하나의 역할을 했다. 연이은 출산 및 육아휴직으로 공백기를 가진 친구의 복귀 무대였다. 친구는 무대에서 두말할 나위 없이 반짝거렸다. 나의 편애 가득한 눈에는 친구가 주인공보다 더 멋지게 춤을 추었다. 객관적으로도 그런 평가를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친구는 미묘한 차이지만 손짓, 몸짓, 표정이 그 누구보다 아름다웠다.


네 명의 공주 중 또 한 명의 발레리나도 친구를 제외한 다른 두 명의 공주보다 눈에 띄었다. 그 발레리나도 한동안 출산 및 육아휴직으로 공백이 있었다. 원래 주인공을 하던 발레리나들이라 그런지 달랐다. 둘 다 부드러운 복귀를 위해 솔리스트 역할로 시즌을 시작한 것 같은데, 내 눈에는 바로 주인공을 해도 될 만큼 둘의 기량은 여전했다. 물론 친구가 더 아름다웠다. 친구가 주인공이 아니라 친구의 춤추는 모습을 충분히 즐기지 못해 아쉬웠지만, 무대 위의 빗나는 친구의 모습을 오래 보려면 주인공 복귀는 천천히 이루어지는 게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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