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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Oct 06. 2023

훼손된 피시 앤 칩스의 추억

아들과 함께 한 맛있는 기억이 슬픈 끝맺음을 당했다.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마흔 중반이라 그런지 참 야속하게도 하루가 휘리릭 흘러간다. 집에서 뽀짝뽀짝 이것저것하다 보면 하루의 막바지에 이르러 서글플 때가 있다. 너무 집에만 있는 것 같아 한 번씩 잠깐이라도 외출을 하는데, 집 근처 좋은 산책 코스도 많은데, 내 발길은 늘 슈퍼로 향한다. 전날 네 식구 먹거리를 충분히 샀어도, 다음날이 되면 뭔가 필요한 것들이 있다. 오늘도 슈퍼로 향했는데, 여느 날과 달리 자전거를 타고 기분전환 겸 옆동네 슈퍼로 향했다.


장을 보고 나니 이른 저녁을 챙겨주는 날이란 게 떠올랐다. 옆동네 쇼핑센터에 코로나 이전 즐겨 먹던 피시 앤 칩스 식당이 이전했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랐다. 어린 아들이 무지 좋아하던 신선하고 두툼했던 생선튀김과 채식주의자였던 그가 애정하던 감자튀김을 떠올리며, 피시 앤 칩스와 채식주의자를 위한 새 메뉴, 세이탄 앤 칩스를 1개씩 포장했다. 맛있게 먹던 어린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질 만큼 행복했다. 


생선튀김은 아들과 딸에게 양보할 생각이었고, 헬싱키에서 가장 맛있는 감자튀김을 수년만에 다시 맛볼 수 있다는 설레는 마음에 포장을 열었는데, 실망이 큰 파도처럼 밀려왔다. 예전처럼 큼직하고 두툼한 생선튀김을 기대했는데, 작고 아주 볼품없는 생선튀김이 하나 들어있었다. 감자는 예전과 달리 얇고 맛없어 보였다. 세이탄튀김도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게 잘못된 온도에 오래 튀긴 모양새였다. 


예전의 감자튀김은 케이준 양념과 비슷한 특유의 양념을 두툼한 감자에 버무려 튀겨서 그곳만의 매력적인 맛을 뽐냈는데, 얇아진 감자엔 그런 양념의 흔적이 없었다. 두툼하고 바삭한 튀김옷에 감싸져 생선의 육즙이 윤기 나게 흐르던 생선튀김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딸이 생선튀김을 자르는데 쉽지 않아 보여 대신 잘라줬는데 튀김옷이 딱딱했다. 세이탄도 건조하다는 그의 평에 화가 나기보단 안타까웠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은 탓에 배가 고프지 않아 내 걸 따로 사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입에 침이 고이던, 아들이 입맛 다시며 흥겹게 먹던 그 음식을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실수라고 하기엔 음식이 너무나 엉망이었다. 다시는 사 먹지 못할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원래 있던 푸드코트가 문을 닫아 그 맛을 그리워하다가 옆동네로 이전한 걸 알게 돼서 기뻤는데... 물가상승에도 불구하고 가격을 유지하고 있어서 기특하다 싶었는데... 가격을 올리더라도 그때의 그 맛을 유지했더라면 기꺼이 애정해 주었을 텐데, 왜 이런 악수를 두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아들은 예전의 생선튀김을 추억하며 나보다 더 아쉬워했다. 두툼한 생선튀김을 잘랐을 때 풍성하게 드러나는 생선 속살은 뽀애서 진짜 먹음직스러웠고, 양도 넉넉해서 혼자 다 먹지 못했다는 아들의 어린 시절 맛있는 기억을 이렇게 형편없게 마무리하게 하다니... 이럴 줄 알았으면 그저 맛있던 추억으로 내버려 둘걸... 보통, 맛없는 음식을 사 먹고 나면 돈을 바닥에 던져버린 것 같아 화가 나는데, 화보다 안타까움과 서운함이 앞섰다. 음식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 같다. 아들과 내가 사랑하던 피시 앤 칩스야 영원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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