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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Oct 10. 2023

도서대출연장과 아들의 강박

얼결에 마주한 아들의 강박, 굳이 왜 그걸 골라 닮았니?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내 도서관카드는 우리 집 공용이다. 그는 헬싱키시립도서관카드를 만들지도 않았다. 드물게 동네 도서관에서 책이나 영화를 빌릴 땐 내 카드를 사용한다. 아들과 딸은 학교에서 현장학습으로 도서관에 처음 갔을 때 반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카드를 만들었다. 핀란드는 아이들이 도서관과 친해지도록 어린이집 시절부터 현장학습으로 도서관을 방문한다. 초등학교도 현장학습으로 도서관을 방문하는데 도서관카드가 있다 보니 아이들이 책을 빌려오기도 한다. 


집에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많다 보니, 아이들 카드로 책을 빌리는 게 달갑지 않다. 현재 내 도서관카드로 23권의 책을 대여중이다. 책을 빌리고 반납하거나 연장하는 걸 내가 알아서 하다 보니 아이들이 제때 책을 반납해야 한다는 개념이 좀 약하다. 어쩌다 자신의 도서관카드로 책을 빌려와선 대여기간을 넘겨 반납하기도 했다. 어린이에게 너그러운 헬싱키도서관이 어린이 책은 연체료를 부과하지 않아 눈에 띄는 불이익은 없지만, 연체는 되도록 피하고 싶어 내 도서관카드만 사용하려 애쓴다. 아이들 카드로 빌린 책까지 관리하려면 아이들의 도서관카드번호와 비밀번호를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다.


얼마 전 아들이 학교에서 현장학습으로 도서관에 갔다가 책을 빌려왔다. 당연히 아들의 도서관카드로 책을 빌렸다. 아들에게 스스로 빌려온 책은 알아서 제때 반납하라 당부했다. 아들은 내가 빌려놓은 영문판 해리포터를 읽고 있었는데, 책을 더 빌려와 대여기간 내에 책을 다 읽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어떻게 책을 상당기간 동안 대여하는지 물었다. 일반 도서대출 기간은 28일이고, 대여중인 책이 예약되어 있지 않으면 최대 5번까지 대출연장이 된다 설명해 줬더니 내게 연장하는 법을 물었다.


지난 주중 여유가 생겨 웹상에서 도서대출을 연장하는 법을 알려주려고, 아들을 불러 아들 컴퓨터 앞에 앉혔다. 무심결에 화면에 떠있는 브라우저 창을 옮겼는데, 아들이 매우 불편해하며 마우스를 뺐었다. 브라우저 창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놓고는 이리저리 살피고 나서야 안도하는 것 같았다. 아들의 도서관카드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게 한 뒤 대여한 책 정보를 함께 확인하고 연장하는 법을 알려줬다. 대여기간이 꽤 남아있어 그때쯤 다시 접속해서 연장하라 조언했다. 연장하는 순간부터 28일 연장되니 미리 연장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브라우저 창의 특정 위치를 고집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짜증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농담반 진담반으로 아들에게 대놓고 짜증 난다고 투덜댔다. 아들의 모습은 마우스패드 위치를 고집하는 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어쩌다 내가 마우스패드를 움직이면 바로 제자리에 돌려놓고, 제대로 자리를 잡았는지 눈으로 각을 재는듯한 그 몸짓과 브라우저 창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아들이 모습이 너무 닮았다.


그러고 보니 아들이 잠자리에 들 때 베개와 이불을 위치를 상당히 신경 쓰던데... 것도 같은 종류의 강박이 아닐까? 아들! 쓸데없는 거 닮아서 참 피곤하게 산다. 아들이 자기 전 유독 이불과 씨름을 오래 한 날, 그한테 아들이 널 닮아 잠자리 자리 잡느라 잠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투덜댔다. 이에 질쎄라 그가 자면서 추위 타는 건 날 닮았다고 반격했다. 그러게 우린 왜 이런 쓸데없는 것들 아들에게 주었을까? 허탈해하며 그와 함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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