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도가 지나쳐도 미워할 수 없는... 그만하길 다행이다.
배경이미지: 2019년 11월, 트램 정류장에서 투닥거리는 아들과 딸
토요일, 한글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며칠 전 산 털모자(비니)를 환불하러 쇼핑센터에 들렀다. 환불하고 장도 볼 심산이었다. 쇼핑센터 이곳저곳을 끌려다니면 지루할 것 같아, 쇼핑센터 놀이공간에서 쉬라고 아이들을 떨궜다. 초등학교 2학년과 6학년이라 별 탈 없으려니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둘러 장을 보고 아이들을 떨군 놀이공간으로 향했다. 놀이공간에 도달하기 전 근처를 배회하는 아들을 만났다. 그새 기다리다 지쳐 나를 찾으러 왔나 싶었는데, 아들의 얼굴이 밝지 않다.
아들에게 동생 곁에 있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동생이 보고 싶지 않다고 시야에서 사라지라고 해서 나왔다는 대답에 문득 예전에 내가 화나서 나가라고 했다고 집 나갔던 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참 쓸데없는 걸 닮았다 싶다가, 무언가 잘못되었다 싶었다. 서둘러 딸에게 가는데 딸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 잠시를 못 참고 둘이 싸웠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두 아이에게 상황을 묻자, 아들은 웅얼거리고 딸은 울먹인다. 일단 딸에게 울먹이면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진정하고 오빠의 이야기를 먼저 듣겠다 했지만 상황파악이 쉽지 않았다.
아들에게 심문하듯이 캐묻고, 울음 사이로 듣게 된 딸의 해명을 종합해 보니 기가 찼다. 아들이 딱히 이유 없이 딸을 다치게 했다. 아들이 갑자기 딸을 끌었다. 딸이 아파서 그만하라 했지만, 아들은 딸의 말을 무시하고 조금 더 끌었다. 결국 폭발한 딸이 아들에게 자기 눈앞에 보이지 않게 따른 곳에 가 있으라 한 상황에 내가 등장한 것이었다. 여전히 아프다며 울먹이는 딸의 등을 살폈다. 아들이 끌 때 등이 지면과 부딪히며 열상을 입은 것 같았다.
동생을 질질 끌고 다녀서 다치게 하고, 아프다고 그만하라 해도 계속했다는 아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 폭력적이지도 않은데... 상상치 못할 상황을 일으킨 이유를 물었지만, 아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최근 둘이 도가 지나치게 시도 때도 없이 투닥거려 주의를 여러 번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사달을 내다니...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지쳤던 나는 지나치게 화가 났다. 그 화를 아이들에게 그대로 퍼붓는 건 어른으로 할 짓이 아니었지만, 주체가 잘 되지 않았다. 일단 추궁이나 혼내는 것을 멈추고 집으로 향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화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내 화난 얼굴이 아이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던 것 같다. 아들은 나와 거리를 둔 채 울먹였다. 나의 무서운 추궁 탓이었을까? 동생을 다치게 했다는 미안함 때문이었을까? 갑자기 아들이 엉엉 울며 자기가 나쁜 오빠라며 자책했다. 그러자 딸이 아들에게 그렇지 않다며 그저 미안하다 하면 족하다 했다. 그 말에 아들은 자신의 행동을 사과했고, 딸은 용서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아이들의 화해가 귀여워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스쳤지만, 상황의 엄중함을 느끼게 하고 싶어 둘의 화해를 아는 척하지 않았다. 게다가 둘의 행동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과하게 끌어서 거기에 무얼 더하고 싶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와 그에게 딸의 상처를 살펴달라 부탁했다. 자초지종을 묻는 그에게 아이들에게 상황을 들었으면 좋겠다며, 훈육은 이미 충분하니 자제하기를 당부했다. 마음이 진정된 나는 아들을 따로 불러, 사람을 다치게 하는 행동은 하지 말기를 당부했다. 지하철 역에서 둘이 사과하고 사과를 받는 상황에 대해 핀란드어를 사용해도 되는데 굳이 영어를 사용한 이유를 물었다. 혹시 나 들으라고 일부러 그랬냐고 장난스레 묻자, 아들은 그냥 첫말이 영어로 나와서 그냥 영어로 대화가 진행되었다고 멋쩍어했다. 진짜?
알아서 잘하고 딱히 사고를 치지 않는 아이인 아들이 가끔 동생에게만 어이없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해 이유를 물으면 아들 자신조차 답하지 못한다. 의젓하고 믿을만한 아이여도 아직 아이인가 보다. 남의 집 아이에겐 대다수 어른이 감탄할 정도로 잘하는데, 왜 유독 우리 집 아이에겐 짓궂게 구는지... 동생이 이쁘면서도 은연중에 샘이 나나 보다. 누구 하나 딱히 편들어주지 않으려 애쓰고 딸이 아무래도 동생이라 챙김을 더 받다 보면 아들이 서운할까 봐 딸 몰래 이것저것 챙겨주기도 하는데 어쩔 수 없나 보다. 서로 투닥투닥 싸우면서도 끈끈하게 구는 걸 보면 이런 게 어쩔 수 없는 좋은 남매 사이인가 싶기도 하다. 제발, 둘 다 무탈하게 자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