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 Apr 09. 2019

벨만 누르고 집에 오지 않는 아들

아들의 엉뚱한 행동에 쓸모없는 걱정과 화가 쌓여 폭발한 엄마

배경 이미지 출처: Pixabay



2019. 4. 8


다른 날 보다 조금 일찍 벨 소리가 들린다. 인터폰 화면을 보니 아들이다. 버튼을 눌러 아래층 문을 열어주고, 아파트의 문을 활짝 열어둔다. 무슨 일인지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소리도, 계단을 오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무얼 하느라 올라오지 않는지 궁금하다. 종종 엉뚱한 면모를 보이니, 언젠간 오겠지 하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 한참 있다 다시 벨이 울린다. 인터폰 화면을 보니 아들이다. 보통 바로 버튼을 눌러 문만 열어주지만 이번에는 수화기를 든다. "엄마가 화가 나려고 한다. 빨리 집으로 올라와라."라고 말하고 문을 열어준다. 문을 여는 모습을 보고 올라오려니 믿고 딸을 데리러 갈 채비를 한다. 비가 살짝살짝 내리는 날이라 딸이 밖에서 노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 싫다. 올라오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아들은 보이지 않는다. 장난을 치나 보다 여기고 조금 서둘러 딸아이가 있는 어린이집으로 향한다. 다녀오면 집에 있겠지.


알콩달콩 딸아이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들 걱정에 신경이 살짝 곤두선다. 집에 도착해 감기 때문에 더 무심해진 짝을 불러 아들이 왔는지 묻는다. 아직이란다. 순간 화르륵 화가 난다. 걱정이 솟아난다. 속으로 이 동네는 안전하니까 사고는 아닐 거라고 나를 다독인다. 천하태평한 짝에게 딸아이를 돌보라 시키고 아들을 찾아 나선다.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 길 건너 아파트 뜰에 있나 가본다. 내 아이는 없다. 집 근처에는 없는 듯하다. 학교로 다시 갔나 싶어 서둘러 학교로 향한다. 중간쯤 갔을 때 짝에게 전화가 온다. 아들이 집에 왔다고... 아들을 찾으러 나선 순간부터 아이에 대한 염려를 연료 삼아 타오른 화는 아들이 돌아왔다는 소식에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화가 화를 부르는 기점을 넘어선 것인데, 그 사실을 알면서도 화가 누그러지지 않는다. 이 상태에선 아이에게 지나치게 화를 낼 텐데... 집에 별 탈 없이 돌아왔으니 다행인데라고 나를 타일러봤지만 소용이 없다.


집에서 마주한 아들은 얼굴을 반쯤 옷에 파묻은 채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집에도 안 오고 어딜 돌아다니는 거냐고 아이를 다그친다. 겁먹은 아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없이 멀찍이 떨어져 나를 지켜본다. 가방을 두고 와서 다시 학교에 갔다 왔다고, 다음부터는 우리에게 상황을 먼저 설명해야 한다고 타일렀다고 짝이 아이를 대변한다. 엄마에게 사과도 설명도 안 하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하자 짝이 아이를 달래며 내게로 떠민다. 아들이 그제야 내게 안겨서 떠듬떠듬 설명을 한다. 여전히 첫 번째 벨을 누르고 올라오지 않은 이유는 말하지 않는다. 꼬치꼬치 캐물어서 얻어낸 사실을 정리하면, 처음 벨을 눌러 문이 열린 뒤 같은 건물에 사는 같은 반 아이가 오는지 확인하느라 문이 잠겨버려서, 다시 벨을 눌렀고 그제야 가방이 없는 걸 깨닫고 학교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집에 와서 내게 말을 하고 가던지, 다시 벨을 눌러서 인터폰으로 애길하던지 하고서 움직이는 거라고 아이에게 설명을 하고 다짐을 받는다. 엄마가 지나치게 소리 지르고 화낸 것에 대해 사과를 하며 너무 소중한 아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 줄 알고 걱정했다고 고백한다.


아들은 종종 자신만의 보이지 않는 세상에 푹 빠지는 것 같다. 아마도 그래서 처음이긴 하지만 오늘 가방을 학교에 두고 온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집 열쇠도 잃어버렸다. 열쇠가 들어있는 가방 주머니의 지퍼가 열려있던 것이 어디선가 열쇠를 꺼낸 듯한데 도통 기억을 하지 못한다. 엄마나 아빠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여러 번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다 지쳐 소리를 질러야 상황을 파악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의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해야 효과적인 것은 알지만 매번 그렇게 대화하기는 어렵다. 우리 아드님을 어찌해야 하나? 휴~ 정말 어이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아이를 찾는 그 잠깐 동안 만약 아이에게 나쁜 일이 생겨 엄마가 화가 나려고 한다는 말이 아이에게 해준 마지막 말이 될까 봐 마음 졸였다. 아이를 대할 때 맺음말이 부정적이지 않게 하려고, 아이를 혼내더라도 늘 안아주고 사랑한다로 마무리하려고 하는데,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마음속에 새겨두고 그러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 집에 오는 길은 멀고 험하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