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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Apr 19. 2019

딸에게 있어서 친구란?

딸의 눈높이로 세상보기: 딸의 친구에 대한 정의

배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2019. 4. 16


어느 날부터인가 딸이 아빠는 친구가 아니고 엄마만 친구라며 나에게 조금 더 매달리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번갈아가며 아빠가 재우고 엄마가 재우는 것을 당연시하더니 엄마만 찾던 아기 시절로 돌아간 듯 엄마랑만 자려한다. 저녁을 먹고 나면 으레 "kuka nukuttaa tänään?" (오늘 누가 나랑 자?)라고 묻는다. "엄만kan?" (엄마랑?), "Ei 아빤kan!" (아빠 말고!)를 덧붙이기도 한다. 이전에는 "아빠"라고 대답하면, 딸이 "huomenna äitin kanssa." (내일은 엄마랑.)라고 말하며 아빠가 재우는 것을 잘 받아들였다.


요즘 딸은 아빠랑 자는 날에는 싫은 티를 팍팍 내며 아빠는 자기 친구가 아니라며 친구인 엄마랑 자고 싶다고 아빠에게 항의를 하는 듯하다. 그런다고 엄마가 재워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아빠 속을 긁을까? 사실 나는 딱히 손해 보는 게 없어서 이런 아빠와 딸의 신경전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게다가 내가 아빠 입장이면 많이 서운할 것 같기도 하고 옆에서 거들면 더 기분이 나빠질 것 같기도 해서 모른 척한다. 내가 아빠가 아닌 게 정말 다행이다.


어린이집에서 딸을 집으로 데려오면서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딸의 친구는 누구냐고 물으니 엄마라고 대답한다. 엄마의 친구는 누구냐니까 본인이란다. 아빠가 엄마나 딸의 친구냐고 물으니 단호하게 부정한다. 오빠도 친구가 아니란다. 그럼 오빠의 친구는 누구냐니까 아빠랑 오빠가 서로 친구라고 대답한다. 어린이집에서 같이 잘 어울리는 아이의 이름을 대며 친구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한다. 딸에게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며 엄마는 딸이랑 아들이랑 아빠랑 모두 다 친구였으면 좋겠다고 하니 딸이 울먹여서 대화의 주제를 급 전환시켰다.


딸에게 친구란 서로가 위해주고 마주 보는 한쌍만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친구가 엄마라고 말해주니 참으로 영광스럽다. 내가 딸을 바라보는 마음보다 딸이 나를 바라보는 마음이 훨씬 더 큰 것 같아 미안하기도 하다. 어린이집에 데리러 가면 "äiti" (엄마)라 외치며 활짝 웃는 얼굴로 내게 양팔 벌려 달려오는 아이가 주는 그 순간의 행복은 정말 너무 달콤하다. 따스한 햇살 같은 내 아이와의 그 순간을 영원히 그대로 담어두고 싶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아련하게 느껴지는 것이겠지.


딸이 자라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을 때 '엄마 미워!' 또는 '엄마 싫어!'를 외칠 텐데, 그때 나의 마음은 어떨까? 지금 딸의 모습을 기억해서 힘을 낼 수 있기를 바란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에도 그 이후에도 늘 딸의 친구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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