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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 May 02. 2019

성냥 사세요~ 아니, 잡지 사세요~!

성냥팔이도 신문팔이도 아닌, 잡지팔이 소년, 아들...

배경 이미지 출처: Pexels



2019. 4. 29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노부부에게 학생들이 만든 잡지를 팔았다고 아빠에게 전해 들었다. 가격이 5유로인 잡지를 팔면 학생이 판매 수수료로 1유로를 가지고, 나머지 4유로를 학급에 내야 한다. 이렇게 잡지 판매로 모인 돈은 학급의 현장학습 때 적절하게 쓰인다. 엄마에게는 너무나 낯선 이야기다. 과장해서 '앵벌이를 했다고? 그것도 학교에서 시켜서?'라고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자초지종을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아들에게 직접 듣고 싶었다. 때마침 엄마가 아들을 재우는 날이라, 아들이 잠자리에 들 때를 기다렸다. 침대에 누운 아들의 다리를 주물러주며 아들의 잡지 판 이야기를 들었다.


잡지는 학급의 모든 학생이 팔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부모님의 허락을 받은 아이들만 팔 수 있다. '난 그런 소리 못 들었는데?' 엄마는 전혀 몰랐지만, 아빠가 아들이 잡지를 팔아도 된다고 담임선생님에게 허락 메일을 보냈다. 잡지는 한 번에 한 개만 가져갈 수 있다. 여러 개를 가져가서 팔지 못해서 아이가 당황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배려인듯하다. 바닷가 쪽 길로 집에 오던 아들은 그냥 '이 잡지 살 사람?'이라고 한번 외쳐봤다. 운 좋게도 근처를 지나가던 친절한 노부부가 잡지를 사줬다. 아들은 잡지 판매로 손쉽게 1유로를 벌었다.


아들은 잡지를 팔았다는 사실에 무척 신이 난 것 같았다. 내일도 잡지를 팔아보겠다는 아들에게 만약 팔지 못하면 어쩔 거냐고 묻자 당당하게 아빠에게 팔겠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도 팔겠다는 야무진 계획을 내비쳤다. 단호하게 엄마는 사지 않을 거라고 했더니 놀란 눈을 하고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설명을 요구하는 말없는 시위에 핀란드어를 모르는데 핀란드어 잡지를 살 이유가 없다고 하자 아들은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잠든 아들을 뒤로하고 아빠에게 아들의 야망(?)을 전했다. 아빠는 잡지 한 개는 사줄 의향이 있지만, 그 후에는 아들에게 더 이상 잡지를 팔지 못하게 하겠다고 했다.




2019. 4. 30


아들은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이 잡지를 팔았는지가 궁금했다. 아들은 잡지를 아빠에게 팔 요량으로 다른 이에게 팔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아빠는 아들의 잡지를 흔쾌히 사줬지만, 더 이상 잡지를 판매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아들에게 통보했다.


아빠는 잡지에 대해 풍문으로 들어봤지만 직접 보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학창 시절 다른 잡지, 돋보기안경, 배지 등을 팔아봤고, 판매 수익은 공공부문 관련 수업에 주로 쓰였고 각반에도 혜택이 돌아간 것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정보는 아니라고 했다. 기금 모금을 위한 물건 판매에 능통하지는 않았지만, 가가호호 방문해서 구매 여부를 물었고, 누군가는 물건을 사줬고 누군가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가 학교 수학여행을 위해 학생들이 과자를 상당히 많이 판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아빠에게 과자를 팔아본 적이 있냐고 물었는데, 과자를 판 경험은 없다고 했다. 특별활동으로 자연부에 소속돼서 학교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특활부를 위해 물건을 팔아본 적은 있었다. 또한 군 생활 동안에  상이군인을 위한 기금 모금을 해봤다. 아들처럼 판매활동을 통해 수익을 분배받은 경우는 없었다.


불현듯 핀란드에 처음 왔을 때가 떠올랐다. 13년 전 이맘때였다. 시내에서 엄마 (그땐 엄마가 아니었다.)에게 잡지를 팔려고 말을 거는 학생들이 있었다. 나이가 아들처럼 어리진 않았지만 고학년이었다면 이야기가 제법 설득력이 있다. 아마도 아들이 가져온 잡지를 팔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아들이 가져온 잡지는 읽지는 못하지만 표지의 70년이 눈에 띄었다.


아들이 아빠에게 강매한 그 잡지




Kevätpörriäinen


올해로 70년을 맞이한 Kevätpörriäinen (께밭뽈리아이넨, '봄에 윙윙거리는 벌'정도로 해석된다.)은 1949년부터 헬싱키에서 매해마다 근로자의 날 즈음에 발행되는 잡지이다. 잡지는 헬싱키 지역에서 자원한 초등학생들의 글과 그림으로 채워지며, 헬싱키, 수도권 지역 선생님 연합이 발행한다. 이번해의 주제는 화학과 발명이다. 잡지는 매해 자원한 초등학생에 의해 헬싱키 거리에서 판매된다. 간혹 가가호호 방문하여 잡지를 판매하는 학생도 있다. 잡지 판매 수익은 학생들을 위해 쓰여진다.[1][2]


1. https://en.wikipedia.org/wiki/Kev%C3%A4tp%C3%B6rri%C3%A4inen 

2. https://www.iltalehti.fi/perheartikkelit/a/956f8959-839b-4132-a7ba-1ea225ca68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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