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괴담 (5)
#021. 인형괴담 (5)
점심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미선은 TV를 켜서 아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틀어주었다. 그리고 방금 먹은 점심 설거지를 끝내려던 참이었다.
지금 거실 쪽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미선의 뒤에선 타닥타닥 뭔가가 걸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준영이, 거기서 뭐해?”
당연히 자신의 아이일 거라고 생각한 미선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더 빠른 걸음소리와 함께 발소리의 주인공은 벌써 벽 저편으로 모습을 숨겼다. 준영이라고 하기엔 너무 빠른 몸짓이다.
그리고 자신을 훔쳐보며 키득거리는 모습은 평소 자기 아이답지 않았다. 또 거실 쪽에선 여전히 아이가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의 노래가 아직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선은 틀림없이 보았다.
벽 뒤편에서 곰돌이 녀석이 서 있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는 것이 아닌데 번듯하게 두 다리로 서서 얼굴을 반만 내민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정이 없어 보이는 곰돌이의 구슬 같은 눈알이 그렇게 기분이 나쁠 수가 없었다.
미선은 생각했다.
선물 받은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만간 저 인형을 처분해야 할 것 같다고.
5.
고요한 새벽이었다.
그는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도 지나가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뭔가를 버릴 때는 마구잡이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종류에 따라 분리를 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그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이런 것 따윈 태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왜 옛날 사람들이 불길하다 싶은 물건을 불로 태우는지 그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근데 문득 뭔가를 태우려고 하니 막상 불을 피울 장소도 마땅치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특히 이런 도심에서는 말이다.
그래서 그는 고민했다.
- 이 기분 나쁜 물건을 어떻게 치워야 하지?
그는 고민 끝에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곳, 자동차로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은 지역까지 나왔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적당한 장소를 찾다가 사람들이 내놓은 쓰레기가 쌓인 장소를 발견했다.
- 그래 여기다 버리면 사람들이 치워주겠지.
그는 그렇게 합리화하면서 그것을 집어던지고 황급하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마치 뭔가가 뒤에서 따라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가 그렇게 사라지고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낮이 지나가고 저녁이 되었다. 여름이라서 그런지 저녁이 되었어도 햇빛은 금방 사라지지 않았다.
7시가 넘어갔지만 아직은 어린아이들이 밖에 싸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하늘이 밝은 날이었다. 예진은 그 시간에 집 밖으로 나왔다. 예진의 양손엔 쓰레기가 가득 들려있었다. 별로 먼 거리를 걷는 것도 아닌데 왠지 숨이 가빠왔다.
요새 날이 더워져서 그런 걸까?
예진은 급격한 날씨 변화에 몸이 적응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크게 움직인 것 같지는 않은데 몸은 쉽게 피로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자신이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증거일까?
예진은 문득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변화 때문에 자기 할 일을 늦춰서는 안 된다.
그는 생각했다.
이제 곧 돌아올 딸아이와 남편을 위한 저녁도 준비해야 한다. 오랜만에 집안을 대청소했고, 이불 빨래도 끝냈다.
오전에 한 빨래는 더운 날씨 덕에 바싹 말랐다. 근처 마트에 갔다 와 필요한 물건과 야채도 샀고, 어머니 댁에 문안도 갔다 왔다. 몸은 좀 안 좋지만 병원은 좀 나중에 가자. 그리고 이제는 집안에 묵혀 놓은 쓰레기도 내쳐야 한다.
예진은 양손 가득 쓰레기봉투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지정된 장소에 놓고 돌아가려 했다.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인형이었다.
그것도 아주 깔끔한. 그리고 조금 비싸 보이는.
예진은 신기한 눈으로 그 인형을 바라보았다.
- 도대체 누가 이런 걸 여기다 버린 걸까?
한눈에 보더라도 새것처럼 보이는 인형이었다. 거기다 생김새도 나름 고급스럽게 보였다. 인터넷에 비슷한 것을 검색하면 꽤 비싼 값에 올라왔을 것 같다.
문득 예진은 그 인형을 가지고 갈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집에는 인형을 가지고 놀 만한 아기도 있는 건 아니었다. 거기다 예진이 소녀 취향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귀해 보이는 인형이 쓰레기와 함께 뒹구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진은 살며시 인형에 손을 뻗으려다 순간적으로 멈추었다.
꺼림칙한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인형의 옷자락에 묻어 있는 붉은 자국이었다. 그것은 척 봐도 핏자국처럼 보이는 얼룩이었고 그걸 보는 순간 예진은 재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왜 인형에 저런 게 묻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주인이 저것 때문에 버린 거구만.
예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 인형을 가져갈 마음도 거둔 채 그대로 몸을 돌렸다. 예진에게 버려진 인형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빨리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의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지나가는 줄로만 알았다.
예진의 딸이 집으로 들어오면서 현관 앞에서 그 인형을 발견하기 전까진.
딸은 누군가가 현관 앞에 인형을 두고 간 것 같다며 스스럼없이 인형을 들고 들어왔다. 예진은 소름이 끼쳤다. 그 인형은 자신이 쓰레기장에서 발견하고 핏자국을 본 뒤 기분이 나빠져서 그대로 두고 온 것이 아니었는가.
- 어째서 이게 우리 집 앞에까지 왔지?
예진은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