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집 : 이야기를 모으는 자 -22-

인형괴담 (6)

by 이사금

#022. 인형괴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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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은 예쁜 인형 같은데 빨면 될 것 같다는 딸의 말에, 버려진 물건은 함부로 주워오는 게 아니라며 도로 아까의 장소에 인형을 버리러 갔다.

여기 놔두면 쓰레기를 수거할 때 같이 가져가거나 아니면 주인이 도로 찾아갈 거라고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집 현관 앞에 인형이 놓인 건 누군가가 인형을 발견하고 들고 가다가 자기 집 현관 앞에 떨구고 갔겠거니 나름 추측했다. 조금은 억지스럽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예진 입장에선 나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이번엔 집 밖으로 나서던 남편이 이상한 걸 발견했다며 출근 전에 예진을 불렀다.

“여보, 이런 게 우리 집 현관 앞에 떨어져 있어.”

남편의 손에 들린 인형을 보자 예진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저건 분명 어저께 쓰레기장에 버리고 온 그 인형이 분명하다. 인형의 생김새와 인형의 옷자락에 묻은 붉은 자국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거 누가 우리 집 앞에 버리고 갔나 봐.”

일단 예진은 태연하게 남편에게 말했다. 딸아이도 이제 이런 걸 가지고 놀 나이도 아니고 버려진 물건이라 찝찝하니 나중에 치우겠다면서.

그렇게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한 뒤, 예진은 인형을 검은 봉투에 처박고 나오지 못하도록 칭칭 묶었다.

저 불길한 모습은 더 보기도 싫다는 듯.

남편과 딸아이가 나가고 홀로 되자, 예진도 밖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이번엔 기분 전환 겸 좀 다른 곳에 가 보자고 나름 계획을 세우면서.

예진은 검은 봉투를 들고 집을 나섰다. 기왕이면 집보다는 좀 떨어진 곳, 걸어서 쉽게 찾아오지 못할 정도의 거리가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예진은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6.

밤이었다.

남자는 가로등 아래 버려진 인형을 보았다.

- 나 원…! 여기는 쓰레기 버리는 데가 아닌데, 여기다 인형을 버리고 갔네.

사람들의 양심 없음을 속으로 비난하며 남자는 인형에게 가까이 갔다.

버려진 것치곤 꽤 깔끔한 모양새의 피에로 인형이었다. 남자는 그 인형을 본 순간 한번 자신이 가져가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가지고 간다고 해도 그 인형을 선물할 만한 아이는 없었다. 그러나 그 인형을 빨아서 자신의 가게 앞에 장식을 해도 좋지 않을까?

남자는 한순간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남자는 인형에게 뻗으려는 손을 곧 거두었다. 그리고 화들짝 놀란 것처럼 그 자리를 벗어났다. 마치 가로등 불빛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려는 것처럼.

남자에게 그것은 참으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경험이었다. 두 번 다시 같은 일은 겪고 싶지 않은.

남자는 그때 틀림없이 보았다.

가로등 아래 사물의 그림자가 평소보다 길게 늘어지는 일이야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까 본 것이 남자의 착각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저건 도깨비 소행이 분명했다.

거기다 지금 자신은 술을 마시지도 않았으니 잘못 본 것이 아닐 것이다.


그 인형 아래 길게 늘어져서 마치 고개를 까딱거리는 것 같은 기묘한 그림자를 목격한 일은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남자가 어린 시절부터 그의 어머니는 버려진 물건을 함부로 주워오면 동티가 난다고 늘 잔소리를 했다. 남자는 어머니의 말을 기억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 자리를 떠났다.

저 인형을 건들지도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이윽고 남자가 떠난 후, 주변은 고요함이 찾아왔다.

가로등 불빛 아래 탁탁-거리며 날벌레가 날아들었을 뿐 다른 기척은 없다가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드르륵드르륵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건 노인이 끄는 수레에서 나는 소리였다. 노인의 수레엔 여러 모양의 인형들이 실려있었다. 그중에는 비닐 포장이 된 것도 많았지만 비닐이 벗겨져서 밖에 노출이 된 채 약간 때가 탄 인형들도 여럿 있었다.

불빛 아래 까딱거리는 그림자가 노인을 보고 멈추었다.


이윽고 노인은 가로등 아래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인형을 보고 아주 익숙하게 손을 뻗어 수레에 실었다. 그것이 아주 흔한 일인 것처럼.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도 노인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인형을 회수한 노인은 이내 어두컴컴한 저편으로 수레를 끌고 사라져 버렸다.


***


- 후…!


드디어 이야기가 하나 더 마무리되었다.

이야기를 마치자 여래는 자신을 억누르던 중압감이 조금 풀어진 것처럼 약간의 숨을 내뱉었다. 그 숨소리는 남자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이야기를 마친 여래는 어떻게 자신이 이런 걸 상상하고 만들어 냈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따지고 보면 인형과 관련된 으스스한 이야기는 어린 시절 도서관에서 흔히 보던 싸구려 괴담 책에도 실려있던 것들이긴 했다.


남자는 오싹한 이야기를 여래에게 요구했고, 지금 여래는 그 시절 접한 흔한 소재에 자기만의 상상력을 덧붙여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다. 인형 이야기는 조금 진부할 수 있었지만, 여래는 그래도 자신이 애를 많이 썼다고 생각했다.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자신의 능력이 나쁜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여래가 스스로에게 약간이나마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 그런데 왜 반응이 없지?

그러나 이상하게도 남자가 반응이 없었다. 여래는 조금 불안한 시선으로 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여전히 표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여래의 반대편에 앉아 있었다.

톡-! 톡-!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검지 손가락을 이용해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었다. 여래는 남자의 행동에서 그 의미를 짚어냈다.


- 설마 나더러 또 이야기를 하라는 거야?


남자가 쉽게 자신을 보내줄 거라는 예상은 하지 않았다. 이야기를 끝내면 어떻게 탈출을 시도해야 할까? 여래는 거기까진 미처 생각할 수 없었다. 새로운 이야기를 짜내는 것만으로도 여래는 지금 상황이 버거웠기 때문이다.


- 이건 시간 벌기나 다를 바 없어.

지금 여래의 입장에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시간을 끌다 보면 분명히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자신의 행방에 이모든 소하든 누군가가 의문을 품고 찾아주길 바라며 여래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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