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집 : 이야기를 모으는 자 -23-

비 오는 날

by 이사금

#023. 비 오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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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숙은 며칠 전부터 계속 악몽을 꾸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런 꿈에서 깨어나고 나면 온몸이 이상할 정도로 뻐근했다.


꿈에서 깨고 난 다음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 악몽은 뭔가 찜찜하고 굉장히 기분 나쁜 내용이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잠을 설친 게 아니었을까? 이상할 정도로 팔다리가 저리고 어깨랑 목이 아팠다. 마치 사지를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지숙은 남편이 가끔 그의 잠자는 자세가 틀어진다고 핀잔을 준 것을 기억했다.

아마 지숙의 몸이 아프다면 지숙이 평소 잠자는 자세가 나빠서, 그리고 최근에 일이 많아 제대로 쉴 시간이 적당하지 않아서 이런 이유를 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지숙은 TV에서 방영해 주는 드라마에서 본 죄인의 사지를 줄로 묶어 잡아당기는 처형 장면이 떠올랐다. 그 장면이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던지라 지숙은 한동안 그걸 잊을 수 없었고, 밥도 잘 삼키지 못했다. 지숙은 팔다리가 그렇게 끊어질 듯 아파오자 꼭 꿈에서 그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해보았다.

묘하게도 이런 몸의 저림과 통증은 날씨가 흐리거나 비가 올 때 더 심해진다. 지숙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비 오기 전 습해지면 몸이 쑤시다고 투덜거리던 걸 기억해 냈다. 아직 지숙이 어머니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었지만 최근 일을 많이 했고, 피로가 쌓였기에 다른 때보다 더 빨리 늙어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아니면 집에서 키우는 구름이가 그가 잠들 때마다 옆에서 왕왕 짖어대기 때문에 숙면을 푹 취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지숙의 집에서 키우는 말티즈 믹스인 구름이는 희한한 녀석이라 남편이랑 있을 때는 얌전하다가도 지숙하고만 있을 때는 뭔가 맘에 안 드는 듯 으르렁거리다가 마구 짖기도 했다.


남편이 데리고 온 아이였기에 지숙보다는 남편을 더 따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주인인 지숙한테 마구 덤벼드는 성질은 아니었지만.


가끔 지숙이 하는 행동이 구름이의 비위를 거스르는 게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인간이 어떻게 이해를 하겠는가? 구름이가 왜 화가 났는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지숙은 구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지숙의 휴일이다. 밖에서 비가 내리고 있어 지숙은 밖으로 나가 기분전환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그동안 자지 못한 잠을 취하는 것이다. 날씨가 흐리고 비도 내려서 보통 맑은 날과는 달리 기온도 내려가 왠지 으슬으슬함이 느껴졌다. 감기 기운이 도진 것인지 지숙은 한기를 느꼈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이불속으로 들어가자 조금은 몸이 따뜻해진 것 같았고 졸음은 금세 몰려왔다. 잠들기 전 지숙은 비스듬히 열린 문밖에서 구름이 역시 꾸벅꾸벅 조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왕왕- 하고 구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지숙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구름이가 시끄럽게 짖어서 깨어난 것은 아니다.


지숙은 지금 몸이 엄청 눌리는 느낌을 받았다. 악몽일까, 가위일까. 온몸이 무거웠고 더 이상 편하게 잠을 잘 수는 없는 지경이었다.


지숙은 눈꺼풀이 천근처럼 무겁다고 생각했다. 마치 거대한 추가 몸에 매달린 것 같았고 지숙은 고개만 겨우 돌려 시계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일까? 자신이 잠이 든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고 방 주변은 커튼을 친 것처럼 사방이 어두웠다.


왕왕 크르릉-!


구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지숙은 손을 뻗었다. 지숙의 손끝에서 차가운 것이 닿았다가 사라졌다.


이건 구름이의 혀일까? 구름이가 심심해서 자고 있는 자신을 깨우려고 그런 걸까?


지숙이 손을 더 움직이자 뭔가 까끌한 것이 손바닥에 닿았다. 이건 구름이의 털일까?

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 비몽사몽 한 지숙의 눈에 또렷이 보이지 않지만 구름이가 지숙이 옆에 바로 가까이 온 것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지숙은 참 의외라고 생각했다. 평소 지숙은 구름이가 자신을 남편보다 좋아하진 않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구름이가 자신에게 친근하게 구는 것 같았다. 몸은 여전히 안 좋았지만 기분은 나아진 지숙이 손을 뻗어 끝에 있는 구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구름이의 털이 이렇게 빳빳하고 거칠었던가?

지숙이나 남편이나 평소에 구름이를 잘 씻기고 그 털을 정돈했고 구름이의 털은 언제나 보드라움을 유지했었다.


지숙은 눈을 움직여 자신의 손 끝을 바라보았다. 방 안이 컴컴하여 손 끝에 있는 구름이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지숙은 구름이의 털이 새까맣다는 것을 눈치챘다.


왕왕왕- 크르릉-!


지숙이 머리 위에서 개가 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지숙의 머리가 향한 곳에 비스듬하게 열려있던 문이 지금은 활짝 열려있다. 지숙은 희미한 눈으로 문턱 바깥쪽에 새하얀 털로 뒤덮인 강아지의 다리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지숙의 몸이 순간 공포로 굳어졌다.


왕왕-!


아까부터 구름이는 문 바깥에서 짖어대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지숙과 함께 방 안에 있는, 구름이의 흉내를 내는 저것은 대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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