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환상기담 : 고요한 밤의 짧은 이야기 -17-

푸른 밤

by 이사금

#017. 공포환상기담 : 푸른 밤




하늘이 매우 파랗다. 친구인 예지네 집을 나선 뒤 완만한 언덕길을 올라가던 민아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는 오늘따라 하늘의 색깔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밤하늘이 새까맣기보단 새파란 종이 위에 검은 필름을 덧씌운 느낌이다. 그리고 그 위에 수시로 반짝이는 별들을 붙여둔 것 같았다.

민아는 자신이 밤하늘을 이렇게 올려다본 적이 드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약간 한눈을 판 채, 조금은 멍한 상태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꼭 뭔가에 홀린 것처럼.

“우리 엄마가 태워준대. 그러니까 좀 더 있다가 가.”

“괜찮아. 혼자 갈 수 있어.”


퍼뜩 민아는 친구인 예지가 자신을 붙잡았던 일을 떠올렸다. 오늘 학교가 끝나고 예지의 집에 놀러 갔던 민아는 한참 수다를 떨며 간식을 먹다가 어느새 어둡게 변한 하늘을 보았다. 민아는 부랴부랴 가방을 챙기며 일어섰고 현관을 나서는 그를 예지가 붙잡았다.

“지금 너무 캄캄해서 혼자 가면 위험할지도 몰라.”

그러나 어두워졌다고 해도 시간은 이제 8시를 조금 넘었을 뿐이다.

“에이, 됐어! 내가 애냐.”

왜인지 걱정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예지에게 민아는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날따라 예지가 안절부절못하는 것 같았다고 민아는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친구인 예지가 왠지 할머니랑 비슷한 것 같다며, 민아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사람이 제일 무섭다. 그러니까 사람이 갑자기 도와달라고 해도 함부로 따라가면 안 돼. 알았지?”

평상시에도 민아의 할머니는 손녀에게 항상 그렇게 신신당부했었다. 그래서 민아는 오늘 예지의 집에 들렀다 간다고 미리 메시지를 보냈었다. 할머니도 예지를 몇 번 본 적 있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은 채 그저 일찍 돌아오라는 답장을 보냈을 뿐이다.

할머니한테 지금 가고 있다고 문자를 보낼까 하며 외투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 들던 민아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언덕길이 원래 인적이 드물긴 했지만, 오늘따라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약간 불안했다.

거기다 아까부터 뭔가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 같다.

민아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린 민아는 조금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저만치서 커다란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타닥 타닥-

뚜렷하지는 않지만, 지금 발을 땅에 내딛는 소리가 서서히 들려오고 있었다.

혹시 사람일까?

아까까지만 해도 사람이 없어서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사람이 나타난다고 하니 그것도 불안하게 느껴졌다. 민아는 핸드폰을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고 빨리 걸음을 옮겼다. 아까부터 타닥거리는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꼭 지금 걸어오는 것이 민아를 향해 다가오는 것처럼.

“…….”

견디다 못한 민아는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뭔가 빛나는 것과 눈이 마주쳤다 싶었다. 사람의 눈이라고 하기엔 너무 반짝거려서 짐승이 아닐까 민아는 추측했다. 만약 눈이라고 한다면 그 위치가 너무 낮아서 결코 사람은 아닐 거라고 여겨졌으니까.

커다란 덩치에 움직이는 네 발. 주변에 어둠이 잔뜩 깔려있으면서도 민아는 뒤쪽에서 자신을 쫓아오는 것의 형태를 파악했다.

저건 틀림없이 개일 터다. 사람도 아니고 개라는 생각에 조금 마음은 놓였지만, 그래도 안심할 건 못 됐다.

지금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게 개라고 한다면 그 덩치가 보통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개라고 생각하자 민아는 왈칵 무서움이 들었다. 유치원 시절 민아는 골목길에서 덩치가 커다란 개에게 물릴 뻔한 적이 있었고, 그 뒤로 개를 좀 무서워하는 경향이 생긴 건지도 몰랐다.

- 어떡하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민아의 다리는 절로 빨라졌다. 네다리로 기어 다니는 그 정체불명의 그림자가 조금씩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개들은 보통 헥헥-거리는 숨소리를 내지 않나?

민아는 뒤에서 바싹 쫓아오는 그것에서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걸 알았다. 기묘할 정도로 주변에 침묵이 깔렸고 공기를 울리는 건 민아의 숨소리와 발소리, 그리고 뒤에서 쫓아오는 존재의 발소리 뿐이었다.

- 개인 줄 알았는데… 개가 아니야?!


정신없이 발을 놀리면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던 민아는 자신을 쫓아오는 존재가 개보다 더 큰 걸 눈치챘다.


그것은 개보단 사람, 정확하게 성인의 크기와 맞먹었다. 마치 덩치 큰 사람이 팔다리를 땅에 붙이고 기어오는 것 같은 기괴한 모습에 민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헉! 헉…!”


어느 순간 민아는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건지 방향은 잃어버렸고, 민아는 오로지 뒤에 따라오는 존재를 떨치려는 목적으로 마구 뛰고 있었다.

꼭 누군가가 그를 인도하는 것처럼.

민아는 어느 순간 언덕길을 벗어났다. 민아가 주변을 인식했을 때는 멀리서 주택가의 불빛이 비치는 풀숲 한가운데였다. 풀숲 한가운데로 시선을 돌리자 거기엔 둥근 바위 서너 개가 봉긋 솟아있는 보였다. 작은 바위들이 마치 제단처럼 자리를 잡고 있었다.

- 저 안이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민아는 바위틈으로 들어갔다. 아직 민아는 중학생이었고, 덩치가 작은지라 그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민아는 다른 이들의 눈에 띄지 않게 몸을 숨겼다.


바스락- 바스락-


투둑-!

곧이어 풀이 스치고 밟히는 소리가 들려 왔다. 민아는 입을 틀어막고 숨을 죽였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고 캄캄함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 저게 가까이 왔어!


어둠 속에서 소리가 하나라도 새어나갈까 봐 두려웠던 민아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의 설정을 무음으로 바꿔놓았다. 혹시나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 핸드폰이 울린다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타닥타닥-


이어 놈이 움직이는 소리가 자꾸 들려 왔다. 분명 주변을 헤매면서 민아를 찾고 있는 것이리라. 바위틈 사이로 몸을 수그린 민아는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었다.

- 괜찮아. 괜찮을 거야.


그때 누군가가 민아의 귓가에 조용하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괜찮을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해가 뜰 때까지 숨을 죽이고 기다리라며 알 수 없는 존재가 민아의 곁에서 버텨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두려움에 질려 핸드폰으로 도와달라는 연락을 할 생각도 못 한 채 민아는 그 자리에 죽은 듯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순간 하늘에 낀 검은 구름이 바람에 밀려났고, 짙푸르고 영롱한 하늘이 도로 모습을 드러냈다.


스르륵- 촤락-


이윽고 민아는 바닥을 스치는 기묘한 소리를 들었다. 그건 뭔가 촘촘한 것이 땅과 마찰하는 소리 같았다. 낯설지만 정신을 퍼뜩 들게 하는 그 소리에 민아는 살며시 눈을 떴다.


“……?!”


검푸른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였고, 민아는 순간 별빛이 주변에 내려앉았다는 착각을 했다. 꼭 반딧불처럼 영롱한 것들이 주변에서 반짝이고 있었고, 바위 근처를 얼쩡거리던 괴이한 그림자가 한 발짝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한밤중이었지만 민아는 청명한 빛이 자신을 감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푸르고 커다란 빛의 줄기.


민아는 그때 자신에게 다가온 어떤 것을 그렇게 기억했다.

그리고 그다음 민아가 기억하는 건 반짝이는 푸른 것이 그림자를 향해 달려드는 장면이었다. 파악- 소리를 내며 푸른 빛이 갑자기 움직였고 이내 어떤 비명이 들린 것도 같았다. 반짝임이 사라지자 곧 어둠이 몰려들었고 민아는 급격한 피로를 느끼면서 그 자리에 스르르 잠들 듯 정신을 잃었다.


***


짹짹짹-!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맑은 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민아는 바위 사이에서 몸을 부스스 일으켰다.


“?!”


눈을 뜨자 놀랍게도 청명한 아침이었고 어둠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어리둥절 주변을 살펴보던 민아는 자신을 불안하게 만든 존재가 근처에 없다는 걸 알았다.

곧 민아는 핸드폰을 꺼냈고 거기에 메시지와 함께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걸려온 걸 알았다. 전화는 할머니가, 메시지는 잘 들어갔냐며 예지가 확인차 보낸 것이었다.


- 이제 집에 가야 해!


이어 민아는 바로 움직였다. 무서운 것이 사라졌으니 더는 숨을 필요가 없다며 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덕 아래를 달려갔다.

이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민아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기가 겪은 일을 설명할 때 애를 좀 먹어야만 했다. 민아는 괴물의 존재는 함구한 채 수상한 사람이 쫓아와 그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 숨어 있었다고 둘러대야만 했다.

또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민아는 묘한 악몽에 자주 시달렸다. 그러나 악몽의 끝에 언제나 반짝이는 푸른 기운이 나타났고 민아는 안도하며 잠에서 깰 수 있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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