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신의 일상 (2)
#016. 공포환상기담 : 수호신의 일상 (2)
그리고 오늘 지유의 사당을 찾아온 이는 연인이라고 믿었던 남자에게 살해당한 여자의 영혼이었다. 지금 악을 쓰며 우는 여자의 뒤편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이들 셋이 천천히 다가오는 게 보였다.
“하민 씨, 그만 진정하세요.”
“이야기 다 하셨죠? 그럼 이제 우리랑 가야 돼요."
이어 우는 여자를 대신해 정장을 입은 이들이 지유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들은 저승에서 온 차사였고, 영혼들을 거두기 전 응어리라도 풀라며 여자를 그에게 보낸 것이었다. 한이 남은 영혼들을 억지로 끌고 간다면 차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 차라리 돈을 뜯겼을 때 경찰에 일찍 신고라도 했으면.
지유가 우는 여자의 한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지유에게 억울함을 호소한 여자의 모습은 그 말을 증언이라도 하듯 비참한 꼴이었기 때문이다.
- 생김새도 변변찮고 내세울 것도 없는 놈인데 그런 놈의 어디에 반한 건지.
지유는 여자가 말한 그 나쁜 놈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 마을 태생은 아니지만, 몇 년 전부터 이곳에 머물게 된 남자였고 처음 마을에 들어섰을 때부터 지유는 영 께름칙하다는 눈으로 그를 주시했었다.
- 저놈 또 여자가 바뀌었어.
지유는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 여자들이 바뀌는 남자를 탐탁잖은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 XX로 124번지 5층, 마을에서 제일 오래된 건물.
지유는 남자가 어디에 사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간임에도 사람의 원망과 원한이 냄새가 스며든 것처럼 몸에 묻어 있었다.
- 저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남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지유도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돈이 부족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본인이 일하여 번 돈이 아니라 여자들이 제공한 돈으로 생활하는 것이 뻔했다.
아까 속사포처럼 지유에게 자기 이야기를 풀고 간 여자의 말에 따르면 남자는 처음에는 간이라도 빼줄 듯 잘해줬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가 요구하는 돈의 액수가 커지고, 말로 전하기 거북한 짓을 요구할 때도 있었다.
- 저런 놈은 천천히 사람을 길들이면서 조금씩 자기 본색을 드러낸다니까.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깨달았을 때는 늦은 것이다.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뒤늦게 도망치려고 해도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말았다.
불길한 기운을 감지한 지유는 사당을 벗어나 마을 곳곳을 뒤졌다. 산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은 음침한 산길에서 원한과 피의 냄새가 흠씬 묻어나왔고, 지유는 그 냄새를 따라가다가 땅에 묻힌 여자의 시신을 발견했다. 거기에 묻어 있는 기운은 남자에게 묻어 있는 기운과도 일치했다.
이에 지유는 망설이지 않고 남자가 사는 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의 가택신을 불렀다.
보통 가택신은 터를 지키는 터주신과 집안을 다스리는 성주신, 문을 지키는 문전신, 부엌을 다스리는 조왕신과 화장실을 다스리는 측간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무슨 일에선지 남자가 사는 집에는 터주신 외에 다른 신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다른 신들이 도망가고 터주신만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남은 모양새처럼.
- 그런 경우 좀 있지.
사람이 버젓이 사는 곳이라도 다 같은 곳은 아니다. 가끔 신들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경우도 있었다. 보통 사람이 신의 보호를 벗어날 정도로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그렇다. 지유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터주신은 그런 지유의 태도에 꺼리는 듯 조금 깐깐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번만 허락할게요.”
마을을 다스리는 지신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터주신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어쩔 수가 없다.
곧 지유는 남자의 집 안쪽에서 묻어나오는 강렬한 원한과 죽음의 냄새를 감지했다. 틀림없이 여기서 살인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부엌과 욕실 쪽에서 시체의 냄새가 강했다. 이에 지유는 조왕신과 측간신이 왜 수호신의 임무도 버리고 도망을 쳤는지 그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른 인간들에게 이곳의 진실을 알릴 수 있을까?
남자의 집을 빠져나온 지유가 고민하며 길을 걸어가는 때였다. 해는 이미 저물었고 주변은 컴컴했다. 그러나 지유는 저만치 앞에서 걸어오는 남자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 이놈 또 여자가 바뀌었어?
지금 남자는 순진해 보이는 여자의 팔을 잡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여자는 거북해하면서도 남자를 거절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듯했다.
- 그놈이랑 절대 같이 가면 안 돼!
이에 지유는 경고하듯 여자를 향해 목청을 높였다. 자신의 목소리가 닿을 일 없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그때 지유의 눈에 저 멀리서 순찰하는 경찰차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지금 그들이 있는 곳보다 떨어졌지만 거기까지 이동하는 건 지유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곧 지유는 차에 매달리듯 뛰어가면서 경찰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조수석에 있던 경찰이 지유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다가 뭔가를 느꼈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 여자가 저쪽으로 끌려갔다. 당장 구하러 가!
지유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그들에게 달라붙어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이내 조수석에 있던 경찰이 운전석에 있던 동료에게 말을 건넸고, 서서히 그들이 탄 차가 남자가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