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신의 일상 (1)
#015. 공포환상기담 : 수호신의 일상 (1)
“그 새끼 진짜 쓰레기 새끼라고요!”
지유(地留)는 약간 당황했다. 지금 눈앞의 여자는 3일 전부터 지유가 있는 곳을 찾아와 하소연을 늘어놓고 있었다. 어느 시기부터인지 모르지만 지유가 머무는 곳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털어놓을 수 있는 장소가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상담이나 민원을 받는 센터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물론 그곳의 주인인 지유가 특별하게 그들의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지유의 능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으니까.
- 그저 이야기만 들어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저 사람의 한은 풀릴 거예요.
여자를 데리고 온 이들은 지유에게 특별히 그렇게 언질을 주고 떠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시작된 게 언제부터였더라?
하도 오래전부터 비슷하게 반복되어 온 일이라 지유는 그 숫자를 셀 수도 없다는 걸 알았다. 곧 그는 자신의 방안에서 고요하게 타오르는 촛불을 흘깃 바라보았다. 어두운 방이었지만 창문 틈새를 타고 들어온 햇빛이 촛불과 함께 방안을 밝히고 있었다. 이윽고 빛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그림자들이 너울너울 흔들려 마치 방안엔 여러 사람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참 신기하네.”
그때 방 앞을 지나가던 노인 하나가 희한하다는 투로 살며시 입을 열었다. 그는 평상시에도 지유가 있는 곳을 청소하고 관리하던 마을의 노파였다.
힐끔- 지유가 그를 바라보자, 곧 노파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등을 돌리고 건물 뒤편으로 발을 옮겼다.
“자, 그만 진정하세요.”
지유는 곧 앞에 있는 여자를 타이르듯 입을 열었다. 씨근거리며 분함을 감추지 못한 여자는 이에 진정하는 듯하더니 다시 참을 수 없다는 듯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 새끼 처음엔 엄청 순진한 척 착한 척 다했다고요!”
여자는 그렇게 말을 꺼내자마자 그동안 쌓인 서러움이 폭발한 듯 후다닥 말을 이어갔다.
“그 새끼 하는 짓에 깜빡 속아서 그동안 모은 돈까지 다 빼앗겼다고요! 내가 그 돈 모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
대강 여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여자는 연인인 척 구는 남자에게 돈을 빼앗기고 목숨까지 잃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런 사건은 드문 것이 아니었고, 때때로 지유가 있는 곳에는 그보다 더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하소연을 위해 찾아오고는 했다.
곧 여자가 발진하듯 입을 열었다.
“아줌마! 아줌마가 그놈 좀 어떻게 해주세요!”
“아, 아니….”
“아줌마, 여기 신이라면서요! 그놈 어떻게 벌해달라고요!”
“그, 그게….”
“이래선 억울해서 눈도 못 감는단 말이에요!”
여자의 말에 지유는 당황했다.
산 사람들의 관념대로라면 지유가 이곳의 신인 건 틀림없었다. 그는 마을에서 대대로 전해지는 작은 사당을 지키는 자였으니까.
하지만 지유가 머무는 사당은 대단한 이유로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젊은 여자가 갑자기 급사했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겨 세운 작은 사당이 지금에 와선 역사가 서린 장소처럼 탈바꿈한 것이다.
지유가 살던 시절은 본디 그런 시대였다.
여자, 특히 젊은 여자가 혼인도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죽는다면 그것이 반드시 화를 불러올 거라고 믿었던.
하지만 지유는 살아생전 남자라던가 혼인이라던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고 자신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감히 판단하지 못했다. 생전에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혼처가 정해졌지만, 남자 쪽에서 그걸 달갑지 않게 여겼는지 야밤에 집에서 일하는 하녀와 도망치고 말았다.
이에 사람들은 지유가 시집가기도 전에 소박을 맞았다고 안쓰럽게 여겼다.
하지만 지유는 그런 일로 자신이 불쌍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지유의 입장에선 얼굴도 모르던 남자한테 시집가서 지금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더 아득하게만 느껴졌으니까.
- 차라리 그놈이 도망가서 고맙다고 생각했지.
그렇게 남자가 도망간 뒤, 지유에겐 한동안 혼담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유는 자신의 처지를 결코 가엾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생전에 그가 느낀 것은 자기연민보다 답답함이었다. 그의 삶에 답답함을 유발한 것은 당시 시대가 지유 같은 여자들에게 다른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그때 지유가 원한 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걸 보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이었으니까.
시대가 변해서 지유의 삶에 변화가 찾아오기 전에 죽음이 먼저 그를 찾아왔다. 지유는 생전에도 심장 부근이 쿡쿡 쑤시듯이 아픈 걸 느꼈고, 해가 지날수록 더 그런 경향이 강해지는 걸 알았다.
결국 지유는 이른 나이에 죽었고, 사람들이 보기엔 남자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화병으로 죽은 것으로 여겨졌으리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엔 지유를 위한 사당이 세워졌다.
아니, 그건 사당이라고 하기엔 좀 볼품이 없었다. 하지만 가난한 시골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고, 지유의 영혼도 이에 불평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허름한 사당은 시간이 지나면 곧 허물어질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의 성의를 봐서 한동안만 머물러 있자.
그렇게 판단한 지유는 저승차사들이 자신을 찾아오기 전까지 그 사당을 지켰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당의 신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다. 자신을 자꾸 찾아오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어 저승으로 떠날 생각도 못 한 채 지유의 존재는 서서히 커지게 되었다. 이후 큰 전쟁이 있고 마을이 복구된 때부터는 어느덧 마을을 지키는 지신(地神)의 역할까지 담당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