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환상기담 : 고요한 밤의 짧은 이야기 -14-

고개를 돌리다

by 이사금

#014. 공포환상기담 : 고개를 돌리다




- 저 여자 누구지? 영아네 언니…?


라희는 처음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닐까 생각했다. 친구 영아가 사는 원룸은 처음이었고, 막상 들어온 순간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으아아! 나 급해!”


원룸에 들어오자마자 영아는 호들갑을 떨면서 화장실로 들어갔고, 라희는 멍하니 현관 앞에 앉아서 친구를 기다렸다. 앉은 채로 스트레칭을 하듯 팔과 고개를 쭉쭉 피며 움직이던 라희는 어쩌다 고개를 돌렸고 벽 쪽에 어떤 여자가 기대어 있는 걸 알았다.


“……?!”


이에 라희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바로잡았다.


곧 라희는 자신이 착각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명백하게 여자가 벽 쪽을 바라보며 머리를 기댄 채 앉아 있던 것이다.


꼭 벌이라도 서는 어린애처럼.


라희는 미동도 하지 않는 여자의 뒷모습을 경계하는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분명 영아와 라희가 요란하게 안으로 들어왔건만 여자는 놀라는 기색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영아의 가족이라면 처음에 놀라더라도 라희를 보면서 인사라도 건넸을 일이다. 하지만 여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고, 그것이 라희의 의문을 돋우었다.


- 저 여자… 대체 뭐야?


이내 라희는 넋을 잃은 것처럼 여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벽 쪽으로 고개를 숙인 여자의 긴 머리는 놀라울 정도로 길어서 앉아 있는 자세라고 해도 바닥에 쓸리는 수준이었다. 저 정도면 좀 불편하지 않을까, 진짜 귀신처럼 머리가 길다며 라희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그건 지금 상황이 너무 황당하여 잡스러운 생각으로 그 어색한 분위기를 벗어나려는 시도였는지도 몰랐다.


하여간 그 상황은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여자가 계속 방에 있었는데도 금방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이상했고, 자신들이 들어왔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도 기이했다. 묘하게 어색한 기운이 방 안에 있는 두 사람 사이에 흘렀고, 라희는 영아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마저 고역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가짜로 우는 소리를 내면서 영아가 화장실에서 나왔다.


“아으…! 나 오늘 뭘 잘못 먹었나 봐.”


이윽고 영아는 현관 앞에 멍하니 있는 라희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아직 밖에서 할 일이 남았고, 영아의 원룸은 지나가다 가깝기에 들린 것일 뿐이다. 원룸을 나선 뒤 라희는 걱정과 불안이 가득한 말투로 영아에게 물었다.


“영아야, 저기 아까 네 방에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응?”

“혹시 가족이야? 나 아까 인사를 못 했는데.”


그러나 가족이라고 하기엔 뭔가 어색한 구석이 많았다. 여자의 존재가 계속 신경 쓰였던 라희는 영아에게 물었고, 영아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아-! 그거 신경 안 써도 돼.”

“엥?”

“그 여자 귀신이야.”

“뭐…?!”


라희는 화들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진 걸 알았다. 하지만 영아는 짐짓 라희를 달래는 듯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이었다.


“실은… 그게 몇 달 되었거든.”

“응?”


황당해하는 라희에게 영아는 태연하게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1년 전, 영아가 그 원룸으로 이사를 막 왔을 때였다.


“처음에는 나도 엄청 놀랐어.”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밤, 영아는 자신의 방에서 여자가 계속 같은 자리에 있는 걸 보았다. 처음엔 도둑이 침입한 줄 알고 신고하려고 했으나 영아는 곧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 여자는 영아에게 뭘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같은 자리에 가구처럼 있을 뿐이었다. 얼마 안 가 영아는 그 여자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 처음엔 섬뜩함에 바로 방을 옮기고 싶었으나 당장 그럴 여력은 되지 않았다.


다행이랄지 여자는 영아를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고, 다시 이사 갈 수 있을 때까지 영아는 여자가 없는 것처럼 살기로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영아는 그런 생활이 곧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친구의 이야기를 다 듣게 된 라희는 당혹감과 황당함, 친구의 대담함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밤이었다.


“깜짝이야! 영아, 너 무슨 일이야?!”


그날 수업과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라희는 아파트 입구 앞에 친구인 영아가 쪼그려 앉아 있는 걸 발견하고 기겁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영아의 표정은 밝지 않았고, 라희가 뭐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여자… 돌아봤어.”

“응? 뭔 소리야?!”


라희가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자 영아가 자기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원룸의 그 여자… 그동안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잖아.”


영아가 라희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여느 때처럼 원룸으로 돌아온 뒤 피로에 젖어 현관 앞에 널브러진 한 영아는 그날 이상한 걸 느꼈다. 평소대로라면 벽에 고개를 묻고 뒷모습만 보여야 할 여자가 오늘은 고개를 돌리고 있던 것이다.


어떤 말도 없이 하얀 눈을 치켜뜬 채 영아를 바라보면서.


여자의 얼굴은 긴 머리칼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영아는 여자가 찢어지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왜 갑자기 그런 변화를 보인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무서움을 느낀 영아는 바로 라희가 사는 곳으로 달려왔다.


- 처음부터 귀신 있는 방에 사는 게 아니었어.


영아가 두려워하는 걸 달래면서, 라희는 친구가 그 원룸을 빨리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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