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지?
#013. 공포환상기담 : 누구지?
드르륵- 쿵-
위층에서 다시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희영은 눈썹을 찌푸렸다.
- 저 집은 어젯밤부터 뭘 하는 거야?
그 소음이 시작된 건 어젯밤 11시경부터였다. 부부싸움이라도 있었던 건지 희영은 위층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걸 들었다. 자세히 들으면 몸싸움이 있던 것도 같았다. 위층 부부가 소란을 부린 게 10시 반을 넘어서였던가?
쿵-! 쿵-!
11시가 되자 사람의 목소리가 잦아들더니 이어지는 건 급하게 바닥을 뛰어다니는 발소리였다. 한참 싸우고 나더니 이제는 무슨 일인가? 희영은 위층 사람들의 배려 없음에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렸다.
- 썩을…! 한숨도 못 자겠잖아.
위층 사람들은 아래층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는 걸까? 옆에서 자던 남편은 시끄럽다며 잠꼬대하다가 몸을 뒤척였다. 그는 많이 피로했는지 그 소음에도 불구하고 곧 잠에 곯아떨어졌고 안방에 깨어있는 건 희영뿐이었다. 희영은 상식이 없는 인간들이라며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아이… 씨X!”
이내 희영은 딸의 방 쪽에서 비슷한 욕지거리가 들리는 걸 알았다. 딸인 연희는 윗집의 소음에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불편한 침묵이 희영의 집안을 가득 메웠고, 다시 위에서 반갑지 않은 소음이 울렸다.
스륵- 슥-
싹-!
희영은 대체 윗집 사람들이 오밤중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들려오는 건 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소리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 시간에 공사라도 시작한 건가?
- 안 그래도 우리 애 시험이 코앞인데.
희영은 윗집 사람들의 행패에 짜증과 분노가 한꺼번에 치밀어오르는 걸 느꼈다. 마음 같아선 당장 현관을 박차고 위로 올라가 거세게 항의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화가 난다고 한들 이 늦은 시간에 올라가는 건 역시 실례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희영은 투덜거리며 내일 아침 일찍 윗집을 찾아간 뒤 뭐라고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겨우 잠이 들었던 희영은 새벽이 되자 찌뿌드드한 몸을 겨우 일으켰다. 아직 주변이 어둡긴 하지만 새벽잠이 없는 사람들은 벌써 나갈 채비를 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밤새 소음에 시달렸던 희영은 문제의 소음이 사라진 걸 알았지만, 이런 일을 방치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제의 결심을 지키기 위해 현관을 나섰다.
요새는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 사건까지 일어나는 시절이다. 어느 정도 이웃을 생각하면 이런 일은 알아서 방지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희영은 자신의 행동을 단단하게 다짐하고 합리화했다.
희영이 알기로 위층에 사는 사람은 40대 정도 되는 부부였고, 그들은 1년 전에 이사 왔었다. 전에는 딱히 소란을 일으킨 적은 없었기에 희영은 어제의 소음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 괜히 내가 가서 분란만 일으키는 게 아닐까?
희영은 미묘한 불안이 자신을 덮치는 걸 알았다. 그러나 곧 그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일을 한번 용인하면 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그러므로 그는 나름 자신의 행동을 합당하게 생각했다.
- 최대한 예의 바르게. 진상 소리 듣지 않게.
문 앞에 도착한 희영은 괜히 불안이 일어, 심호흡을 한 채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안쪽에서 깜짝 놀란 것처럼 사람이 후다닥 달려가는 소리가 났다. 희영은 곧 누구 하나라도 나올 거라고 여기고 현관문 앞에서 기다렸다.
“…….”
그러나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안에서 사람이 나오는 기색이 없었다. 분명 사람이 있었음에도 반응이 없다. 이상하게 생각한 희영이 다시 초인종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안에 계시죠? 좀 나와 보세요.”
희영의 말이 떨어지고 몇 분이 지났을까?
희영은 곧 현관문 안쪽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안쪽의 도어락 버튼이 눌리는 소리와 함께 슬며시 문이 열렸다. 이내 희영은 안쪽에서 어떤 젊은 남자가 얼굴을 내미는 걸 보았다.
곧이어 남자는 누구냐고 묻는 표정으로 희영을 바라보았다.
“…….”
희영은 약간 난감함을 느꼈다. 남자는 희영과 눈이 마주쳤음에도 아무런 말을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묘한 침묵이 두 사람 사이를 메웠고 희영은 당장이라도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렇다면 오늘 찾아온 이유를 밝히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희영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저… 아랫집에서 왔는데요.”
이상하게 희영은 자기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걸 알았다.
그건 참 기묘한 일이었다. 막상 윗집 사람과 얼굴이 마주치자 처음의 결심은 무뎌지고 괜히 왔다는 후회감이 밀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분위기는 예상한 것보다 더 기이했고 희영은 그 짧은 말을 꺼내기까지 희한할 정도로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이렇게 된 거 할 말만 하고 빨리 가 버리자. 그렇게 결심한 희영은 단박에 숨을 내뱉듯 빠르게 뒷말을 이어갔다.
“저기… 공사하시는 건 알겠는데, 조심 좀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 애가 수험생이라서요.”
“…….”
특이하게도 남자는 탐색하는 시선으로 희영을 바라보기만 했다. 희영은 희미하게 남자의 시선에서 의심과 불안을 읽어낸 것 같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날 무렵이었다.
“예… 주의하겠습니다.”
이윽고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꾸벅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희영은 남자의 대답이 성의가 있든 없든 상관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저 그 자리를 빠져나가고 싶은 마음에 희영은 대답을 듣자마자 꾸벅 고개만 끄덕인 채 바로 몸을 돌려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발자국 걸어가던 희영의 머릿속에 문득 스치는 게 있었다.
- 가만, 저 집에 딸이 있지 않았나? 그 딸이 우리 애보다 어렸던 거 같은데….
기억을 더듬어 희영은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의 여자애를 엘리베이터에서 본 걸 떠올렸다.
그렇다면 저 집에 장성한 아들이 있었던가? 희영은 윗집 가족이 이사 온 뒤 저렇게 생긴 남자와는 마주친 기억이 없다는 걸 떠올렸다.
- 누구지? 저 남자, 저 집 아들 맞나…?!
희영은 아까 본 젊은 남자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아까 그 남자는 위층 부부랑은 전혀 닮지 않은 것도 같았다.
게다가 평소 조용하게 살던 사람들이 왜 어제는 몸싸움까지 벌이면서 격하게 싸웠던 걸까? 이윽고 희영은 어젯밤에 이어진 기괴한 톱질 소리를 떠올렸다. 어떤 급한 공사가 있길래 한밤에 그렇게 일을 벌인다는 걸까?
- 대체 뭘 자르고 있던 거였지? 밤새도록.
곧이어 기괴한 상상이 희영의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실제일지도 모를 온갖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도 몰랐으니까.
- 말도 안 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내 희영은 자신의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비웃었다. 곧 그는 말도 안 되는 불안감을 떨치려는 목적으로 잠시 걸음을 멈춰 섰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힐끔 윗집 현관을 바라보았다.
“……?!”
그러나 놀랍게도 윗집의 현관문은 닫히지 않았고 빼꼼 열린 문 사이로 아까 그 남자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는 경계하는 시선으로 희영이 돌아가는 모습을 계속 바라보고 있던 것이다.
꼭 희영이 누구인지 알아내겠다는 것처럼.
“…….”
남자가 자신을 훔쳐보고 있는 걸 안 희영은 소름이 끼쳤다. 자신이 핸드폰을 가지고 나왔던가? 아래층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건만 희영은 자신의 집까지 아득하게 멀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남자가 자신의 얼굴을 봤고 아직도 지켜보고 있다. 거기다 자신은 아래층에서 올라왔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복도를 벗어나면서 희영은 오싹한 기분에 다시 윗집의 현관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불안이 스멀스멀 희영의 발목을 타고 목 뒤까지 올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