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많은 축생과의 사투 (2)
#012. 공포환상기담 : 다리 많은 축생과의 사투 (2)
설마 그 교활한 놈이 저기로 도망갔을까?
그렇다고 약을 뿌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도망간 놈을 무시하고 살기에는 더 찝찝한 것이다.
그는 문득 자신이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소녀와 두꺼비가 된 것 같았다. 그는 어린 시절 읽은 동화책을 떠올렸다. 징그러운 괴물의 삽화 때문에 유달리 기억에 남은 이야기다.
옛날 옛날 어느 고을에 한 가난한 소녀가 어머니를 모시며 살았더랬다. 그 소녀의 부엌에 웬 두꺼비가 나타나자 소녀는 두꺼비가 불쌍해서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두꺼비는 개만큼 매우 크게 자랐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마을에는 몹쓸 지네 괴물이 나타나 산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그해 농사를 망쳐버린다고 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젊은 처녀를 뽑아 괴물의 먹이로 바쳤다.
그런데 가난한 소녀가 그해 제물이 되었고, 소녀는 울면서 지네굴로 갔다. 두꺼비도 소녀를 따라갔다. 이윽고 집채만 한 지네가 땅굴에서 나타나 소녀에게 다가왔다. 커다란 두꺼비는 소녀를 지키기 위해 지네와 처절하게 싸웠고 소녀는 기절했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찾아와 보니 소녀는 살아있었고 두꺼비는 소녀를 살리고 지네와 함께 죽어있었더란다. 소녀와 마을 사람들은 두꺼비의 공을 기리고자 사당을 만들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는 왠지 두꺼비의 심정도 소녀의 심정도 백번 이해가 갔다. 놈이 나타나 손가락을 물어뜯고 그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는 자신이 동화 속의 소녀와 같다고도 느꼈다. 아니, 마을 사람들도 비슷했을 것이다.
사람 손보다 작은 것도 저리 끔찍한데 집채만 한 것이 마을을 들쑤시다니….
기절초풍할 것도 모자라 심장마비나 걸리지 않았으면 다행이다. 생긴 것만으로도 죄악인 놈이 그해 농사를 망치다니 죄악에 죄악을 더한 셈이다. 전설 속에서도 그 썩을 놈의 짐승은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테러를 하고, 생업 쪽으로도 테러를 한 셈이다.
살아있어 봐야 사람들의 증오만 불러일으키는 놈, 선천적으로 혐오감밖에 들지 않는 놈이다. 조상들이 보는 눈과 현대의 사람들이 보는 눈이 비슷했다. 아니, 조상들이 현명했다. 신으로 모실 놈과 그렇지 못할 놈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똑같이 사람 잡아먹는 설화라 해도 호랑이나 뱀은 그 모습이 신비롭고 멋있기라도 하다. 하지만 놈들은 그런 게 없다. 호랑이와 뱀 같은 짐승은 오래 묵을수록 신령에 가까워지지만 놈들은 오래 묵을수록 사람을 해치는 악귀나 요물에 불과하게 될 뿐이다. 신령이 되려면 일단 태생부터가 남달라야 할 텐데 일단 그놈들은 생김새부터 글러먹었다.
타고난 게 죄악이니 백번, 아니 천 번 만 번 죽어 마땅하다.
그런 놈을 해치운 두꺼비는 영물 중의 영물인 게 틀림없다.
- 저 끔찍한 놈들이 다리가 많이 달린 것은 분명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야.
그는 확신했다.
어떤 영혼이든 생전에 착한 일을 많이 했으면 후생에 저런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태어날 리가 없다. 다리가 여럿 달리고 혐오감만 느껴지는 축생 따위를 세상에 사랑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진짜 두꺼비 같은 동물들이 한 끼 보양이나 하라고 태어난 게 틀림없다. 한방에선 놈들을 약으로 쓴다고도 하는데 자신한테 몸에 좋다고 공짜로 줘도 사양이다.
그는 생각했다.
지금의 자신은 전설 속에 나오는 두꺼비였다. 지금 자신을 둘러싼 집이란 공간은 마을이다. 놈의 횡포에 망가져 가는 마을이었다. 지금 자신이 놈을 해치우지 못하면 전설 속의 놈이 한 해 농사를 망치듯 우리 집을 망칠 것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가족이 입는다. 또한 자신은 전설 속의 소녀였다. 갑자기 나타난 지네 괴물에게 물어뜯기는 가엾은 소녀들.
하지만 동시에 소녀를 지키는 두꺼비였다. 지금 자신에게 따로 지켜줄 두꺼비가 없으니 자신이 이번에 두꺼비가 되어서 놈을 물리쳐야 했다.
“나와라, 인마…. 어디 숨었냐.”
식탁 아래, 수납장 아래, 선반 아래 그는 곳곳에 약을 뿌렸다. 식기나 먹을 것과 거리를 두어야 했기 때문에 이건 좀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놈의 기척은 없었다.
설마 그도 모르는 구멍으로 도망친 걸까? 그러면 다행인가 싶다가도 놈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 하니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그런데 그때였다.
사삭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종아리 옆을 검은 줄기처럼 생긴 선이 잽싸게 지나가고 있었다.
- 놈이다!
그 순간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신문지는 약하다고 빠르게 판단했다. 그는 들고 있던 둥근 약통을 놈의 가운데 마디에 가차 없이 찍어 눌렀다. 이후에 그가 그때 일을 회상했을 때에도 다시 없는 정말이지 놀라운 순발력이었다. 비명도 못 지르는 하찮은 축생은 몸을 뒤틀었다.
하지만 그는 봐주지 않았다. 더 강하게 놈의 몸을 찍어 눌렀고 약통 밖으로 돌출된 그놈의 머리를 신문지 뭉치로 인정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분이 풀릴 때까지 놈의 머리를 때려잡았다.
이윽고 놈의 하찮은 육신이 축 늘어졌다. 그가 이긴 것이다.
그는 쾌활하게 웃으며 신문지를 펼쳐 놈의 더러운 몸뚱이를 감쌌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텃밭을 향해 놈의 늘어진 몸뚱이를 던져버렸다.
- 징그러운 놈! 두 번 다시 우리 집에 나타나지 마라!
그는 만족한 듯 대강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고 방에 드러누웠다. 놈과의 사투가 길었던 탓인지 왠지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어디에서 봤더라. 지네는 암수가 함께 다닌다고…?
그는 펄떡 몸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그가 잡은 놈 말고 한 놈이 집안에 또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젠장…!”
그와 놈들의 사투는 끝나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또다시 스쳐 가는 생각에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 지네가 암수가 함께 다닌다면 전설 속의 괴물도 두 마리였다는 얘기다.
세상에 이럴 수가…! 두꺼비가 죽어버린 마당에 그 마을은 과연 무사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