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 열 줄 소설 -47-

검은 우물의 기억

by 이사금

47. 검은 우물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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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유빈은 어떤 악몽에 시달렸다.


꿈속에서 유빈은 근심 없이 동네 아이들과 마을에서 뛰어놀다가 들판 한가운데 있는 어떤 깊은 굴에 다다랐다.


굴 안으로 넘어질 뻔하던 유빈은 아이들을 불러 모았고 유빈을 비롯한 아이들이 신기한 듯 굴을 바라보며 호기심이 생긴 듯 작은 돌과 나뭇가지를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 순간 그 굴 안에서 하얗고 조그마한 손이 튀어나와 유빈을 낚아챘고 유빈은 기겁하다가 악몽에서 깨어나는 것이었다.


성장기 동안 유빈은 그런 기묘한 악몽에 시달렸고, 어느 정도 자라 무서울 게 없어진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 시절 철없던 시절의 상상력이 자신의 악몽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하고 스스로 추측했다.


그리고 오늘 할머니의 장례식을 맞아 오랜만에 고향 시골로 내려온 유빈은 어릴 적 놀던 들판을 거닐다가 그곳의 풍광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걸 눈치챘다.


- 울타리가 쳐 있다.


분명 자신이 굴을 발견한 그곳은 사람이 다가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고 깊은 곳이니 추락을 조심하라는 표지판까지 붙어 있었다.


유빈은 어린 시절 자신이 발견한 굴이 실은 굴이 아니라 용도를 잃어버린 마른 우물이었다는 것, 한때 동네의 어린애가 실종되었다가 우물 안에서 겨우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마을 어른에게 듣기도 했다.


비로소 유빈은 자신이 목격했던 그 하얀 손은 악몽에서 튀어나온 존재가 아니라 불운하게 그곳에 갇힌 어린아이가 구조를 요청하던 손길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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