놈을 막아라! (2)
#019. 공포환상기담 : 놈을 막아라! (2)
3.
지안은 근방 동료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지안이 동료를 만날 수 있는 건 마을의 경계에서나 가능했다. 옆 마을에 머물던 지안의 동료는 그간 지안의 이야기를 듣더니 다른 동료들을 통해 지안에게 유용하다 싶은 정보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이번에 내가 발견한 게 하나 있어.”
오늘 동료가 전해준 건 오래된 신문의 한 종류였다. 종이 신문은 취급하지 않는 곳이 많아졌고, 특히 수십 년 전 신문은 구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은근 이런 거 보관해두는 곳들이 많거든. 거기 인간들한테서 좀 빌려왔어.”
“고마워. 도움이 될 것 같아.”
“네가 말한 것과 비슷한 사례가 다른 마을에서도 몇 번 더 있었던 모양이더라고.”
지안은 다른 마을의 동료들이 보았다던 사례를 귀로 들으며 눈으로는 신문의 한 면을 훑었다.
- XX시 마네킹 공장에서 의문의 화재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 경찰은 사건의 원인을 조사 중으로…
결국 공장은 폐쇄되었다는 건 굳이 신문으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내용을 확인한 지안은 동료에게 물었다.
“설마, 이건 그놈이 화재를 일으킨 거야?”
그러자 지안의 동료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도 그쪽 일은 잘 모르지만, 근방 친구들 말로는 화재는 사람들이 일으킨 거라고 했어. 바로 놈이 공장에 출현했을 때.”
“사람들이? 왜?”
“그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놈이 공장 밖으로 나오지 않길 바란 게 아닐까?”
“……?!”
동료의 말에 지안은 당시의 일을 상상했다.
몸이 뒤틀린 채 눈이 마주친 것들을 붙잡아 사지를 잡아 뜯는 괴물. 그 괴물이 어느 순간 사람들이 머무는 공장에 나타났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어떻게?
지안은 다음과 같이 상상했다.
- 지금 몸이 뒤틀린 괴물이 나타나 사람을 찢어 죽이고 있어요! 빨리 출동해주세요!
이런 신고를 하면 과연 진지하게 들을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지안은 또 생각했다. 이런 일은 경찰이 온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경찰이 그런 신고를 받고 출동을 할 리도 없겠지만, 만약 경찰이 출동한다고 한들 그런 괴물을 어떻게 막겠는가?
그 괴물은 처음엔 언덕길에서 벌인 짓과 비슷하게 작은 동물들을 먼저 발견하고 찢어발겼으리라.
그러나 어느 순간 불운한 공장의 직원 하나가 표적이 되었다. 공장 사람들은 끔찍하게 죽은 사람의 시신을 발견하고 당황하고 두려워했다. 기계에 말려든 것도 아닌데 사람의 몸이 토막 난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놈이 드디어 정체를 드러냈다. 또 다른 직원 하나가 놈에게 붙잡혔고 끔찍한 최후를 맞았다.
- 으아악! 괴물이다!
공포에 질린 직원들은 도망가기 시작했고, 그중 누군가가 외쳤다. 저 괴물이 바깥에 나오면 안 된다. 그러니 문을 잠가야 한다고.
하지만 공포에 질린 그들의 움직임은 둔했다.
그래도 공장의 내부는 복잡했고 또 다른 누군가가 마지막 방법으로 놈의 몸을 무거운 물건으로 찍어눌렀다. 놈의 몸을 잠깐이나마 봉쇄한 뒤 빠져나간 사람들은 출구를 막고 그 안에 불씨가 될 만한 재료를 던져넣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왜 공장에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지안이 신문을 다 읽은 기색을 보이자 동료가 다시 말을 건넸다.
“이건 아주 오래전 이야기긴 한데….”
“음?”
“그놈이랑 관련해서 신빙성 있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
지안이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동료를 바라보았다. 동료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믿을 만한 정보라는 듯 자신이 아는 것을 풀기 시작했다.
“화재가 난 공장 근처에 처형장이 하나 있었더라고.”
“처형장?”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참 전 이야기야. 현재는 그런 일이 없지만, 옛날에는 죄인의 사지를 마차에 매달아 뜯는 형벌도 있었잖아.”
“……!”
“거기서 그렇게 죽은 자들의 원한이 뭉쳐서 놈이 태어난 거라면?”
사지가 뜯겨 죽었기 때문에 몸은 온전하지 않을 수 있다. 마치 엉망으로 흩어진 몸을 마구잡이로 엮은 것처럼 보인 이유가 그것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어쨌든 그건 절대 곱게 죽은 건 아니었을 거야.”
어떤 이유에서든 인간의 원한이 뭉쳐 탄생한 괴물은 현세에 나타났다. 지안은 그것이 살아있는 것들과 마주치면 그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이유를 짐작했다. 동료의 말을 통해 비로소 의문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4.
컴컴한 밤이지만 길거리에는 가로등이 밝았다. 그래서 시간이 늦었음에도 민아는 겁도 없이 밤길을 갈 수 있었다.
“우리 엄마가 태워준대. 그러니까 좀 더 있다가 가.”
친구인 예지는 집에 놀러 온 민아에게 너무 늦었다며 만류했지만, 어차피 옆 마을이니 멀지도 않다며 민아는 어른스러운 척 현관을 나섰다. 내일 보자며 태연하게 친구의 집을 나선 민아는 언덕길에 다다르자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왜인지 오늘은 평소보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것 같고 겨울도 아닌데 공기가 서늘했다.
- 도망쳐.
그리고 누군가가 민아의 귀에 속삭인 것 같았다. 민아가 어리둥절하며 주변을 살피던 순간이었다.
쿵쿵-! 타닥타닥!
얼마 지나지 않아 민아는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쫓아오는 소리를 들었다. 이에 민아는 기겁하여 언덕길을 죽어라 달려갔다. 방금 민아에게 속삭인 건 다름 아닌 지안이었다.
지안은 지신(地神)이었고, 지신은 마을의 수호신이었다.
그는 마을의 인간들을 바라보고 그들이 엉뚱한 데 홀리지 않게 돕는 일을 하고 있었다. 또 잡귀나 불운이 그들에게 붙지 않고 마을이 무사히 유지될 수 있게 버티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 여자애가 저러다 잡히겠다!
지안은 옆 마을에서 놀러 온 여자아이 민아가 그것의 표적이 된 걸 알았다. 지안은 직접 저 상황에 끼어들 수는 없었지만, 인간의 방향을 트는 건 할 수 있었다. 인간들이 삿된 곳에 들어가지 않게 힘을 쓰는 것 또한 지신의 역할이었으니까.
곧 지안은 평소 인간들이 가지 않을 방향으로 민아의 시선을 끌었다.
놈을 잡을 수 없으나 그래도 놈의 시선을 벗어나게 할 수는 있다. 언덕 옆에 있는 숲 한가운데는 아주 오래전 인간들이 신에게 제를 지낸 자리가 남아있었다. 이제는 인간들의 기억에서 지워졌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는 잡귀가 얼씬도 하지 못했다.
- 이쪽으로 오렴!
그렇게 지안은 자신의 힘으로 인간들의 발길이 끊긴 채 신성(神聖)이 유지된 자리까지 민아를 인도했다. 민아가 살아남는다면 마치 자신이 홀린 거라고 회상할 것이다.
어쨌든 놈은 절대 지신인 지안을 해코지할 수 없다. 지안이 놈을 어떻게 할 수는 없어도 승산은 있는 것이다.
“허억-!”
그렇게 지안의 의도대로 민아는 그 자리까지 달려가고 있었다. 해가 뜨기 전까지 민아를 피신시킨다면 놈의 마수에서 구할 수 있으리라. 언젠가 놈을 처단할 존재를 하늘이 보내 줄 때까지 지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을 막아야 했다.
- 하늘이시여. 제발 빨리 저놈을 없앨 수 있는 존재들을 이 마을로 보내 주십시오.
지신의 임무를 다하면서 지안은 그렇게 바랐다. 자신의 바람이 닿길 바라면서 지안은 해가 뜰 때까지 파들거리며 영험한 자리에 몸을 숨긴 민아의 곁을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