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 갇힌 남자 (1)
#025. 방 안에 갇힌 남자 (1)
- 이건 너무 지치는 일이야.
막 이야기를 하나 마친 여래는 절박한 상황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님을 느꼈다. 그럼에도 여래는 남자의 요구에 따라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여래는 새삼 이야기가 매끄럽게 튀어나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능력에 내심 놀라워 하고 있었다.
그렇게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그것은 깊고 매우 어두운 미로 같은 건물의 안이었다.
그는 자신이 왜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 채 일단 눈앞의 길을 계속 걸어갔다.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뒤로 돌아갈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거기서 멈춰 서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 공간이 어두웠기 때문일까?
거기서 가만히 있으면 어둠 속에 뭔가가 튀어나와 그를 채가거나 습격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천천히 잠식해 왔다. 그것은 인간 아니, 양지에 사는 생물이 본래 가진 공포였을지도 모른다.
으레 살아있는 자들은 어둠 속에 갇혀 있으면 밝은 곳을 찾기 마련이었다. 본능적으로 밝은 곳은 탈출구라는 관념을 머릿속에 새기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런데 언제였던가?
그는 어떤 기억을 떠올렸다. 그가 떠올린 건 아마 어린 시절 위기 상황에서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TV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 같았다. 화재 같은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으면 사람들은 그 본능 때문에 일단 밝은 곳으로 확인하지 않고 무작정 달려간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2차로 또 다른 종류의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경고 영상을 본 기억을 그는 떠올렸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자리에 혼자다.
그러니 그가 망설여야 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건물에서 홀로 있는 것은 다른 의미로 섬뜩했다. 그래도 TV에 나온 경고 영상물처럼 사람들이 밝은 곳으로 몰려들었다가 압사당하는 유의 사고를 그가 당할 일은 없는 것이다.
그는 또 생각했다.
지금 자신의 처지가 어린 시절 우연히 TV에서 본 영화랑 비슷한 것 같다고 말이다.
기억이 좀 가물가물하긴 했지만 그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평범하게 살다가 어떤 알 수 없는 단체에 의해 납치당하는 내용인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까 주인공들이 경찰, 수재 여학생, 의사, 자폐아, 탈옥수, 건축가 이런 사람들이니 그 모두를 한 번에 평범함이라는 카테고리에 넣기는 그렇다는 사실도 떠올렸다.
뭐, 그래도 그들은 특이한 단체나 조직이랑 상관없이 자기 삶을 영위했던 자들인 것은 분명했다. 그런 자들이 어떤 조직의 음모에 의해 납치당하고 아무것도 없는 방에 들어가 다른 방으로 이동하면서 탈출구를 찾아야 하는 게 영화의 줄거리였다. 그런데 방마다 각양각색의 함정이 존재하여 까딱 잘못하다가는 끔찍한 죽음을 맞기도 했다.
어린 시절 우연히 본 영화치고는 등장인물들이 끔찍한 죽는 장면도 그렇거니와, 인간들끼리 불신으로 인해 신뢰가 깨지는 장면도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제목은 잊어버렸어도 영화의 내용은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문득 TV에서 화재 현장에 사람이 많이 있을 때 날 수 있는 사고를 가정한 경고 영상물과 그 영화의 내용과 연결했다. 그래서 지금 자기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말았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지만 정말 위험할 때는 차라리 혼자인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그렇게 판단했다.
사람들은 원래 그런 존재다.
처음에는 너를 믿네, 너뿐이네 이런 말을 쉽게 떠든다고 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굳은 믿음을 깨버리고 다른 이들의 뒤통수를 치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그건 굳이 영화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그런 사건들을 현실에서도 충분히 봐 왔었다. 그가 믿었던 삼촌이란 남자는 생김새도 훤칠하고 말도 번드르르 잘했기에 사람들의 환심과 믿음을 샀다. 하지만 결국 자기 어머니가 평생 모아 온 돈과 아버지의 보험금까지 가지고 달아나 버렸다.
그는 자신보다 10살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평소 하는 행동이 어른스럽고 아는 것이 많아 보여 형이 아니라 삼촌이라 부르던 사내였다. 그는 어머니가 일하던 식당에 자주 찾아오던 단골이었으며 싹싹한 성격 탓에 다른 사람들한테도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 다가와 특정 지역에 좋은 건물이 들어설 거라며 입을 털었다. 심지어 공사 현장까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가기도 했다. 비단 속은 것은 그의 어머니뿐만이 아니었다. 꽤 순박하게 살던 사람들은 그놈의 세 치 혀에 넘어가 평생 모아 온 돈을 의심도 하지 않고 넘겼다고 했다.
그들 전부가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그 삼촌이란 작자는 연락도 받지 않았고 거처에서 사라진 지도 오래였다.
그는 어머니가 그렇게 통곡하며 우는 것을 아버지 장례식 이후로 처음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국 그때의 일이 원인이었을까? 몸이 좋지 않았던 어머니는 결국 쓰러지셨고 그 뒤로 회복을 하지 못했다. 몇 달 후 그는 쓸쓸하게 어머니의 빈소를 지켜야 했다.
- 만약 내가 그놈을 다시 만나면 돈은 돌려받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놈의 대가리는 내 손으로 박살 내버리겠어.
어머니의 죽음 이후 그는 그 사기꾼을 만나면 보상은 됐으니 어머니와 자신이 당한 만큼 갚아주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다. 하지만 놈을 찾을 수 있을까? 경찰은 놈이 아무래도 중국으로 도망을 간 것 같다고 얘기했다. 복수를 암만 다짐한다고 하더라도 놈을 찾을 수 없다면 뭔 소용이란 말인가.
그는 낙담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생각하기도 싫었던 과거의 일이 떠올랐는지 그는 이상했다.
옛 생각에 잠겨 걸어가다 보니 그는 어느덧 희미하게 빛나는 구역까지 들어온 것을 알았다. 그는 주변을 살폈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펴보자 거기에는 문이 달려있었다.
그 문은 마치 정신병동이나 교도소 독방에서 볼 법한 것들이었다. 그 위에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작은 창이 나 있는.
- 도대체 이 건물 뭐지?
그는 의아한 마음에 창 안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