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 갇힌 남자 (2)
#026. 방 안에 갇힌 남자 (2)
창 안쪽에서 쑤욱- 얼굴 하나가 갑자기 나타났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려 하자 안쪽에 있는 인간이 외쳤다.
“이봐요! 밖에 있는 양반!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지만 문 좀 열어줘요!”
안에 있는 사람은 여자였다. 나이는 가늠할 수 없지만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만큼 나이를 먹은 것도 같았고 또 동시에 자기 또래의 젊은 여자 같기도 했다.
- 문을 열어달라니?
그는 당황하여 창 안쪽을 다시 살폈다. 방 안은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았고 그저 창 앞에 여자의 실루엣만 어느 정도 감이 잡힐 뿐이다.
“문 좀 열어달라니까요? 아!! 진짜…!! 그 망할 놈이 우릴 속였어!! 입바른 소리를 하더니 우릴 여기에 가둬놓고 갔다니까!!”
여자의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에 그는 당황했다.
도대체 이 건물은 뭐란 말인가?
혹시 인신매매범들이 피해자를 가두기 위해 만들어낸 건물인 걸까? 자신 역시 모르는 사이에 납치를 당한 건지도 몰랐다.
그런데 자신이 어떻게 문을 연단 말인가, 열쇠도 없는데. 그가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안에 있는 여자가 그의 속내를 눈치챘는지 다시 소리를 쳤다.
“이 문은 열쇠로 여는 게 아녜요! 앞에 번호 패드가 있잖아! 그걸로 비밀번호를 누르면 돼요!!”
여자의 말대로 문 옆에는 조그만 키패드가 달려있었다. 이걸 누르면 문이 열리는 구조일 것이다. 하지만 비밀번호를 그가 알 리가 없었다.
“저… 비밀번호를 모르는데요?”
“나 참…! 댁이 모를 리가 있어요? 나도 알고 있는데! 근데 난 안에 있어서 누르지 못한다고!!”
그렇게 소리를 친 여자가 답답하다는 듯 숫자 하나하나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1… 9… 9… 0… 0… 4… 그는 비밀번호가 매우 낯이 익다는 생각을 하며 손가락을 패드에 갖다 대려고 했다.
그런데 또 그때였다. 반대편 방문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그건 꽤 낮고 울림이 큰 목소리였다.
“이봐!! 그거 절대 열어 주면 안 돼!!”
“…네?”
그는 깜짝 놀라 번호를 누르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반대편에도 똑같은 방문이 있었고 창가에서 누군가가 바싹 다가와 그를 주시하고 있다. 방 안에 있는 이가 다시 외쳤다.
“여기 있는 인간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여기에 갇힌 거야. 그러니 여자 말은 무시하시오!”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는 당황했다.
한쪽 방에서 열어달라는 여자가 있었고 반대편 방에선 열지 말라는 남자가 있었다. 정체와 목적을 알 수 없는 이 건물 안에서 어떤 인간들이 갇혀 있는데 그에게 말하는 건 반대였다.
열어 줘. 절대 열지 마.
그는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자신은 왜 여기에 있는가. 궁금한 것은 많은데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이는 없는 것 같았다.
방 안에 있는 자들에게 여기 건물이 뭐냐고 물어봐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해 주는 이가 없었다. 반대편 방의 남자는 가둘만한 놈들을 가두는 곳이라고 말할 뿐이고 여자는 자신이 속아서 끌려온 뒤 여기에 갇혔다고 했다.
그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의 마음을 흔든 건 여자 쪽이었다. 여자의 목소리는 왜인지 돌아가신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목소리였다. 반면 반대쪽 남자는 그 사기꾼의 목소리와 유사한 것 같아 기분이 나빠졌다. 남자의 명령조 어투도 불쾌했고 그는 일단 안에 갇힌 사람들을 풀어줘야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특히 자신이 속아서 여기에 갇혔다는 여자의 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동질감이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반대편 방의 남자가 필사적으로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여자의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반전이 일어났다.
이윽고 따릭 소리가 나면서 잠금이 해제되자 문은 보란 듯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방에 있던 여자가 밖으로 나오자 그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방 안에서 나온 것이 그의 예상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 저거 인간이 맞기는 한 건가?
여자의 뒤로 뭔가 검은 것들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여자가 문턱을 나서는 순간 검은 안개 같은 것들이 여자를 삼키고 말았다. 아니, 그대로 여자를 녹여서 흡수한 것 같았다.
이윽고 여자는 사라지기 전에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 열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한 걸까? 그러나 그 여자는 별말이 없었고 순순히 덩어리와 하나가 되었고 그는 어안이 벙벙하여 그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곧 그가 인식도 하기 전에 검은 덩어리들이 그를 덮쳐왔다. 그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그 덩어리에 흡수되었다.
- 안돼…!!
반대편 방 안에 있던 남자가 소리를 쳤다. 방 밖으로 나가면 자신도 저렇게 되리라. 그런데 띡띡띡 누군가가 패드를 누르는 소리가 난다. 방문이 벌컥 열리고 검은 덩어리가 한데 쏟아지고 있었다. 방 안의 남자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
경보음이 요란하게 병동 안을 울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의사와 간호사들은 다른 환자들을 병실로 옮기며 문을 닫아걸었다. 또 다른 이들은 경찰에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안진영, 1990년 4월 생.
사기 전과 7범이었던 김길훈을 구타하여 살해한 장본인이었다. 안진영이 그나마 정신이 온전했을 때의 자백과 주변인들의 증언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기꾼이 그의 어머니에게 사기를 치고 도망간 자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 사기를 저지르고 이제는 시골에서 사이비 교주 행세를 하던 인간을 찾아내 안진영은 보복살인을 저질렀다.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평소 심한 우울증과 피해망상, 그리고 극도의 정신착란을 자주 보였기 때문에 이곳 정신병동으로 옮겨진 환자였다.
저지른 짓에 비하면 꽤 얌전하게 굴던 환자였기에 어쩌면 다른 간호사들도 한눈을 팔았던 걸지도 몰랐다.
평소와 다르게 갑작스러운 발작과 난동을 부리던 그는 간호사와 경비원을 차례로 습격한 뒤 그 뒤로 병실에서 도망을 쳤다. 의사들의 소견을 보면 사기꾼 김길훈을 자신의 손으로 응징했으면서도 아직도 그가 어머니의 돈을 가지고 도망쳤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아직 밖에 김길훈이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 그것 때문에 그가 밖에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만약 사기꾼과 비슷한 외모의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만큼 그에게 위험한 것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병동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잡아 와야만 했다.
여전히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고, 안진영은 바람처럼 밖으로 내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