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집 : 이야기를 모으는 자 -30-

제물의 도시 (4)

by 이사금

#030. 제물의 도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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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은 궁금증이 가득한 시선으로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고층 건물에 크게 매달린 전광판에선 1급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화려한 건물의 외관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머물고 있을 법한 화려한 인간들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었다.


준이 보기에 2급의 사람들도 생기 넘치고 좋은 인상을 가졌지만 전광판에 비추는 1급의 인간들은 그와는 비교도되지 않을 만큼 눈에 띄고 화려하고 생기 넘치는 외양을 하고 있었다.


전광판을 계속 바라보던 준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대놓고 사람을 분류해서 특정 공간 안에 나가지 못하게 막아둔다면 분명 반발이 있을 것이다. 암만 평화로운 곳이라도 해도 불평불만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특히 이런 방식으로 사람들의 급을 나누고 차별을 한다면 그에 대한 분노는 더욱 커지고 곪아갈지도 모른다. 박탈당한 사람들의 해소될 데 없는 증오는 어떤 식으로 터질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치안이 좋지 않은 마을, 가난하고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거주지는 항상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준이 살던 고향에서도 경찰이 손을 쓰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 슬럼가는 존재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은 지원이 적어 질병에 쉽게 걸리거나 굶는 일이 아직도 허다하다.


범죄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어쩔 수 없이 도둑질에 손을 대는 인간들도 나오기 마련이었다.


심각한 경우에는 사회에 불만을 품고 복수를 하겠다며 테러를 감행하는 자들도 나오곤 했다.


그러나 준은 이 도시에 들어왔을 때 분명 3급의 마을을 지나쳤어도 별다른 일을 겪지 못했다. 이상할 정도로 이 지역의 사람들은 달관하는 것처럼 살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준의 의문에 답이라도 해 주려는 듯, 수가 전광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도시에는 1년에 총 네 번 축제가 있어요.”

“축제요?”

“축제보다는 제의(祭儀)나 전통…이라고 해야 할까요. 1년에 네 번 구역을 돌아가면서 하는데 저희 구역은 이미 지나갔고 지금 다른 구역이 할 시기가 왔네요. 가끔 방송으로 다른 구역의 축제를 보여주기도 하거든요.”


이윽고 전광판의 화면이 바뀌었다. 화면에서 불처럼 전등이 일렁이는 모습이 보였다. 그 등불 아래 요정같이 생긴 남녀 둘이 나란히 걸어가다가 멈추는 것이 보였다.


그 요정 같은 남녀를 중심으로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무채색의 옷을 입은 3급의 인간들이 제일 많아 보였고 색상이 들어간 옷을 입은 2급의 인간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 축제? 공연 같은 건가?


준이 전광판의 화면을 본 순간 떠올린 것은 ‘당근과 채찍’이라는 흔한 격언이다.


혹시 이 도시는 유명인을 초청하여 화려한 축제를 한번 씩 벌이고, 대가 없이 2급과 3급의 주민들을 초대하여 그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걸까?


하지만 그런 축제라면 준의 고향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축제가 하나 있다고 해서 사람들의 분노나 박탈감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 유희 한번 따위로 사람들의 증오가 쉽게 희석될 리 없을 텐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준은 바로 이어져 나오는 충격적인 모습에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허억!!”


만약 옆에서 수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준은 그 자리에서 놀라 주저앉았으리라.


준은 지금 화면에 나오는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방금 요정 같은 남녀를 둘러싼 채 환호하던 무수한 사람들이 곧이어 그 남녀를 향해 돌을 집어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집어던진 돌은 너무 많고, 또 떨어지는 속도도 빨라서 금방이라도 화면을 가득 채울 것 같았다. 이제 아까의 요정 같은 남녀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돌에 맞고 묻히기 전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준은 보지 못했다. 또 돌에 깔린 그 시체가 어떻게 되었는지 준은 알 수가 없었다.


와아 와아-!


전광판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마치 스포츠 경기를 응원하는 함성 같기도 하고 유명 가수를 향해 내지르는 탄성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멎을 때까지 사람들이 집어던지자 돌은 쌓이고 또 쌓였다.


이윽고 돌이 전광판의 화면을 가득 메웠다. 더 이상 아까의 요정 같은 남녀의 모습은 화면에 담을 수도 없었다.


곧이어 함성이 줄어들고 사람들이 점차 자리를 뜨는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전광판 화면에서 뭐라 뭐라 설명하는 나레이션이 흘러나오고 있고 한동안 거대한 돌무더기를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준은 속이 울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선명하게 느끼고 있었다.


- 서, 설마 내가 도시 입구에서 봤던 그 시체는……!


준은 안쪽에서 토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토할 것 같지는 않았다.


준은 수가 자신의 팔을 붙들고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것을 보았다. 수가 무덤덤한 표정으로 준에게 말을 건넸다.


“아까 나온 사람들은 1급 출신이에요.”

“…?!….”

“이 도시에서 가장 사랑받는 남녀 두 사람을 고르는 거예요. 오로지 1급에서만. 2급과 3급에서는 1급이 아니라면 용납을 하지 않는 거예요.”


수의 그 말에 준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도시가 어떤 식으로 평화를 유지해 왔는지 비로소 파악이 됐다.


제삼자인 준은 납득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도시 사람들은 자신들 딴에 납득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기 자신들의 질서를 지켜왔던 것이다.


적어도 한번 눈앞에서 생생하게 피를 볼 수 있다면 자신들의 불만스러운 처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일찍 행복을 갖게 되지만 반드시 마지막에 처참한 피를 봐야 하고, 피를 보지 않는 대가로 계속 불행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면 아마 후자를 선택하는 인간도 적지는 않으리라. 반대로 전자를 선택하고 마지막의 불행을 감내하는 인간들도 더러 존재하긴 할 것이다.


수가 말한 전통일지도 모른다는 말 또한 이해 못할 말은 아니었다.


역사 속에서 사람을 제물로 삼지 않은 시절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심지어 준의 고향에서도 사람을 제물로 삼았던 전설은 희미하게 남아있지 않던가.


다만 사람을 제물로 삼는 전통이 전설이 되어 사라졌을 뿐. 폐쇄적인 곳에서 만만하고 어리숙한 인간을 하나 잡아 착취하는 일은 어디에나 있기는 했다.


현대에 이르러 은밀하게 행해질 뿐 전통을 이루는 그 뿌리가 사라진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도시에서는 전설로 남은 그것을 다만 이 도시가 기이할 정도로 제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문득 준은 또 의문이 생겼다.


이런 질서를 납득할 수 있다 한들 아까의 희생양이 꼭 1급에서 나오리란 보장은 없지 않은가.


수의 말에 따르면 1급은 이 도시의 통치자들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그들이 아랫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적당한 인간들을 골라서 1급으로 둔갑시켰다면?


아까 수는 어차피 2급이나 3급은 1급의 인간들이 사는 곳에 다가가지도 못한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그들이 도시를 다스리기 위해 무슨 짓을 하는지 아래 인간들이 어떤 수로 안단 말인가.


1급이 적당한 희생양을 아래 계층에서 골라와서 사람들 눈을 속이는 것도 어렵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 도시의 사람들은 그 가능성 여부는 생각지도 않는 것일까. 아니면 대강 눈치를 채고 있으면서 자신들을 위해 묵인을 하는 것일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준은 눈앞에 있는 수를 다시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더없이 친절한 이 도시의 주민 역시 저 행위에 동참했던 걸까? 그동안의 대화를 생각해보면 수는 생각이 얕은 사람이 아니다. 준이 가진 의문을 수도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준은 갑작스럽게 앞에 있는 이 여자가 무서워졌다. 달관한 것처럼 행복하게 사는 이 도시 사람들도 무서워졌다.


이윽고 준은 자신을 부축하려는 수의 손을 뿌리친 뒤 그 자리를 박차듯 벗어났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시의 밖을 향해 달려 나갔다. 여기 남아서 도시의 남은 자리를 구경하겠다는 생각은 남김없이 버린 채 두 번 다시 이 도시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 다짐한 것처럼.


그렇게 준은 망설임 없이 도시를 빠져나갔다.




※ 소설 『괴담집 : 이야기를 모으는 자』는 2시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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