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2)
#002. 프롤로그 (2)
토끼보다 작은 그 짐승은 바로 족제비였다. 그놈은 기다란 목을 뻗어 토끼의 목을 물어뜯고 있었다. 여래는 순간 나무판자 사이로 피가 맺힌 토끼의 털과 찢어진 채 붉게 드러난 토끼의 상처 부위를 선명하게 보았다.
이미 토끼의 목은 상당히 물어 뜯겨 누군가가 구원의 손길을 뻗는다고 한들 늦었을 것이다.
- 케엑-! 키에엑!
그러나 아직도 숨이 붙어 있어서, 어떻게든 죽지 않으려고 토끼는 발버둥 치고 있었다. 자신을 물어뜯는 갈색 짐승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죽어가는 토끼는 버티고 있었다.
“히익!”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래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며 판자 위로 발을 굴렀다. 딱히 여래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쩌면 이런 일은 이 숲 속에서 빈번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살고 싶어서 발버둥 치는 토끼의 모습을 지켜보게 된 여래는 왠지 토끼의 편을 들고 싶어졌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판자 위로 발을 굴렀다. 설령 늦었을지라도 미약한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서였다.
이윽고 짐승들의 동작이 멈추고 갈색의 기다란 그 녀석이 놀란 것처럼 판자 사이로 여래를 바라보았다. 순간 녀석과 여래의 눈이 마주친 것처럼 둘 다 움직임이 멎었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 녀석은 다시 여래를 무시하고 움직였다. 더 이상 토끼는 울부짖지 않았고 녀석은 태연하게 다시 토끼 시체에 다가갔다. 그리고 그 목에 다시 이빨을 박아 자기보다 배는 커다란 그 몸을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나 토끼와 그 갈색 족제비는 흔적도 보이지 않을 만큼 토굴 깊숙한 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토끼들도 하나둘 그 자리를 떠나 버렸고, 그 자리에는 여래 한 사람만 남았다.
살아있는 것의 죽음을, 그리고 죽지 않으려는 발버둥을 그렇게 생생하게 접하기는 처음이라서 여래는 그 상황이 너무나 낯설었다. 하지만 그날 여래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윽고 이상한 열패감과 미묘한 무력함에 사로잡힌 여래는 얼마 안 가 정신을 차리고 후다닥 산책로를 벗어났다.
그날의 일은 앞으로 있을 어떤 불길한 일의 예고였을까?
이후, 여래가 은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건 숲에서 그런 일을 목격하고 닷새나 지나서였다.
여래의 엄마 혜진은 인강을 듣는 여래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혹시 은혜라는 애가 여래 너랑 같은 학교 다녔었니?”
엄마 혜진이 평소답지 않게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여래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은혜라면… 고등학교 동창 중에 같은 이름 가진 애가 있긴 있는데.”
그런데 엄마가 은혜를 알고 있던가. 여래는 기억을 더듬었다. 이사 오기 전 내가 은혜를 집에 데리고 온 적이 한 번은 있었던가? 생각해 보니 엄마가 착한 애 같다고 칭찬을 한 것도 같았었다.
대학교 졸업 이후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자 자연스럽게 연락이 드물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여래가 은혜를 잊고 지낸 것은 아니었다. 몇 달 전 은혜가 취직하고 더 바빠지자 연락이 더 뜸해진 건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고등학교 입학 당시 은혜는 여래의 마을로 이사를 왔었다. 여래와 은혜는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되었기에 더 친해진 감이 있었다.
“그게 아까 이모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혜진은 약간 뜸을 들이며 말을 꺼냈다. 여래의 작은 이모는 아직 고향에서 살고 있었고, 혜진은 조금 어두운 얼굴로 마저 입을 열었다. 엄마 혜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문득, 여래는 며칠 전 목격한 족제비에게 사냥당해 죽어가던 토끼를 떠올렸다.
***
여래는 장례식장에 놓인 은혜의 영정 사진을 보면서 그 사진에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걸 느꼈다. 부드러운 눈매와 동그란 얼굴, 여전히 순하고 사람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착한 인상.
“대체 걔가 왜 거기에 갔는지 영문을 모르겠어.”
여래를 알아보며 눈물을 쏟던 은혜의 어머니는 이럴 줄 알았다면 그날 자신이 마중을 나가야 했다고 후회가 잔뜩 섞인 한탄을 쏟아냈다.
은혜가 공무원에 합격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터진 일이다. 대학교 기숙사 문제로 몇 해 동안 고향을 떠나 있던 은혜는 취업과 함께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평소대로였다면 은혜는 건강하게 사무실과 집을 오고 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평범하고 변화 없는 나날을 보내던 은혜의 갑작스럽고 기이한 죽음은 그 작은 마을을 약간 소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은혜의 사인은 심장마비라고 했다.
그날 길가에 쓰러진 채 방치된 은혜의 시신을 지나가던 동네 사람이 발견했다고 했다. 은혜는 평소에도 버스를 이용해 집과 사무실을 오고 갔고, 항상 비슷한 저녁 시간대에 돌아왔다고 했다. 은혜의 성격상 가족들에게 일언반구 없이 어딘가 다른 곳으로 빠지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은혜가 발견된 곳은 버스 정류장과 마을로 이어지는 큰 도로에서 벗어난 샛길이었다. 평소 다니던 대로가 아니라.
여래는 기억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도로를 벗어나 샛길로 들어서면 산 쪽으로 난 커다란 언덕이 하나 있다. 그곳 언저리에는 방치된 폐가가 하나 존재했고, 심심하게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아직도 여래는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가 초등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뻔한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 돌았다. 과거 그 집에 살던 남자가 자기 부인과 중학생이던 아들을 칼로 찌르고 자살했다는 괴담 같은 이야기를.
아들은 겨우 살아남아서 서울에 있는 친척 집으로 보내졌다던가?
이것이 아이들이 꾸며낸 말이 아니란 것을 여래는 잘 알고 있었다. 예전에 어떤 동네 어른이 다른 이들에게 ‘그 집이 도무지 빠져나가지 않는다’라고 한탄하는 걸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그 집의 주인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듣게 된 것도 그때의 일이었다.
여래의 기억엔 그 집에서 죽은 사람의 유령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헛된 소문일 수 있어도 사람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가짜가 아니었다.
여래가 어린 시절에도 그 근방에 흉가 탐험을 한다며 찾아가는 아이들이 없지는 않았다. 여래도 몇 번 아이들을 쫓아가기도 했다. 처음 아이들은 흉가에 들어서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었지만, 막상 도착했을 때는 실망을 했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곳이었기에 아이들은 섬뜩한 핏자국이라도 남아있기를 고대하던 것인지도 몰랐다.
“뭐야, 여긴 아무것도 없네!”
“귀신 나온다더니 거짓말이었나 봐.”
그러나 그 낡은 폐가에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낡은 집이라고 하지만 사람의 흔적이 없어져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었을 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의 흉가치고는 그저 쓸쓸한 흔적만 남은 그곳에 아이들은 매우 큰 실망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