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의 흉가 (1)
#003. 언덕의 흉가 (1)
그날 아이들의 탐험은 별 볼 일 없게 마무리되었다. 이후 그날의 기억은 추억도 되지 못한 채 아이들의 뇌리에서 서서히 지워졌다.
이후 마을에 큰 도로가 난 뒤에서 그 샛길은 방치되었다. 언덕 부근에 있는 폐가는 더욱 사람들의 시선에서 멀어졌고, 아이들은 아무도 그 집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번에 은혜가 그 폐가로 향하는 길목에서 시체로 발견되기 전까진.
어째서 은혜는 그 언덕에 있었을까?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으로 향했던 걸까?
여래는 당시 은혜가 걸어갔을 방향을 따라 마을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누구도 답해 줄 수 없는 그런 의문을 품으며.
여래는 장례식장에서 동네 사람들, 그리고 은혜의 친척들이 몰래 수군거리는 소리를 엿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친구의 이른 죽음이 마을의 괴이한 소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그 터가 마을의 흉한 기운을 있는 대로 끌어당기는 거라는 이야기를 하는 노인도 있었고, 아예 아무도 거기에 다가가지 못하게 막아둬야 하는 게 아니냐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죽은 아이마저 귀신이 되어 나타날까 무섭다는 이야기까지 꺼냈다. 사람들의 대화가 그런 방향으로 진행되자 여래는 왠지 그 자리에 있기가 힘들어졌다.
그래서 여래는 은혜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는 심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희미하지만 익숙한 마을 길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대체 은혜는 어쩌다 그런 외진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걸까?
장례식장에 오기 전 되도록 엉뚱한 곳에는 들리지 말라고 한 작은 이모의 말은 잊어버린 채 여래는 그 언덕길로 향하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해가 떨어지기 전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고, 그래서 여래는 위험할 일은 없을 거라고 여긴 건지도 몰랐다.
그런데 여래가 언덕에 미처 도달하기 전이었다. 언덕과 버스 정류장 사이에 있는 작은 마트 근처에서 여래는 뜻밖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마트 안에선 순경 복장을 한 짧은 단발머리의 경찰이 무언가를 살피려는 목적인지, 아니면 뭔가를 사기 위해서인지 주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생수를 사기 위해 마트로 들어간 여래는 그 경찰의 얼굴이 왠지 낯이 익어 보였다. 그러나 크게 내색은 하지 않고 그 옆을 지나치려고 했다.
공교롭게도 여래를 먼저 알아본 것은 그 경찰이었다.
“…너 한여래?”
“?!”
여래가 깜짝 놀라 돌아보자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경찰과 얼굴이 마주쳤다. 그제야 비로소 여래는 그 낯익은 경찰이 자신이 아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너 심소하?”
다름 아닌 그 경찰은 여래의 옆 마을에 살던 심소하라는 이름의 동창생이었다.
***
심소하는 은혜와 같은 중학교를 나왔었다. 듣기로는 중학교 때 아이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소하의 집안은 대대로 무당이었다는 소문이 있어 괜히 시비를 걸던 애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래는 눈앞에 있는 소하의 모습이 자신이 기억하는 고등학교 시절과 매우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고등학교 시절 소하는 마치 귀신을 연상할 정도로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다녔다.
그러나 지금 소하의 머리는 귀밑에 겨우 닿을락 말락 할 정도로 짧아졌고, 하얗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창백했던 얼굴엔 좀 더 온기가 돌았다. 날이 더워서 그랬는지 그 이마에는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 졸업하고 진짜 오랜만이지?”
“응, 소하 너 경찰 됐었구나. 생각도 못 했다 얘.”
여래의 말에는 어쩌다 경찰이 될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음…, 그게 그렇게 됐어.”
소하는 그런 반응을 충분히 예상이라도 한다는 것처럼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여래와 소하는 마트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 그간 못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뭘 하고 지냈는지, 잘 지내고 있었는지. 연락 좀 자주 하지 왜 이제야 찾아왔냐며 조금은 섭섭하다는 정도의 이야기들이었다.
여래가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소하는 은혜의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그는 여래보다 먼저 은혜의 장례식을 찾아갔고, 지금은 마을 순찰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소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래는 고등학교 시절의 일들을 단편적으로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 여래는 은혜, 그리고 소하와 친하게 지냈다. 어쩌면 은혜와 소하는 같은 중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더 친하게 지냈던 건지도 몰랐다. 은혜의 집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지만 딱히 소하가 무당 집안의 딸이라는 것에 연연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여래는 소하가 졸업하면 집안의 대를 이어 무당이 될 거라고 수군거리던 아이들을 떠올렸다. 소하가 귀신을 본다거나 귀신을 부른다거나 하는 억측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소하의 긴 머리와 창백한 안색이 그런 소문을 더 굳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소하는 그런 아이들의 뒷담을 무시했고, 아이들도 대놓고 소하의 앞에서 그의 집안을 두고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소하가 귀신을 본다는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소하가 남들보다 촉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었고 그것 때문에 아이들이 소하를 남다르게 여겼던 건지도 몰랐다.
왜인지 모르지만 소하가 가지 말자고 하는 곳에선 크건 작건 사고가 터지거나 사람이 다치는 일이 생겼다. 몇 번의 우연이 소하를 아이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게 만들었고, 어떤 애들은 대놓고 소하에게 점을 칠 줄 아냐며 묻는 아이들도 있었다. 돈을 주겠으니 운세를 봐달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소하는 거절했고, 어떻게 사고가 일어날지 알았느냐는 질문에는 그저 안 좋은 느낌을 받았다고만 대답했다.
“그냥 어떤 기분 나쁜 감각이 몸 전체에 다가오는 것 같아.”
소하의 말에 따르면, 늘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가끔 소하도 실수로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다친 적이 많았다. 보통 이런 경우에 소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어떤 기운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실수나 사고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가끔 소하도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운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걸 피하려고 벗어나다가 사고를 피하는 일이 많았다고 소하는 아이들에게 덤덤하게 털어놓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모두 소하의 말을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