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집 : 이야기를 모으는 자 -4-

언덕의 흉가 (2)

by 이사금

#004. 언덕의 흉가 (2)






- 누구였지? 걔….


문득 여래는 뒤에서 소하를 허언증이라고 비웃고 까대던 아이들이 있었던 걸 떠올렸다.


특히 사내 녀석들이 유달리 소하를 잡아먹을 듯이 굴었던 기억이 났다. 가끔 여자애들 일부도 이상할 정도로 소하를 미워하여 그런 남자애들과 작정하고 소하를 비웃던 일이 떠올랐다.


그중에서 제일 질이 나쁘게 소하를 미워했던 놈.


뒤에선 유달리 소하를 잡아먹을 듯이 까면서도 정작 소하 앞에서는 찍소리 못 내던 녀석이 있단 걸 여래는 떠올렸다.


학교에서 가장 질 나쁜 애들과 어울리면서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으스대던 녀석. 그리고 그걸 방패 삼아 은근 다른 애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해 대서 아이들의 미움을 샀던 녀석.


여래는 그 녀석의 이름과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 녀석은 사람의 청을 잘 거부하지 못하는 은혜에게 이상하게 달라붙었던 놈이었다. 여래는 그 녀석이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했는지는 떠오르지 못한 채, 그저 녀석이 매우 불쾌하게 굴었다는 것만을 기억했다.


그리고 그런 여래의 기억을 상기시키듯, 소하가 입을 열었다.

“…유재민.”

“음?”


그때 소하의 입에서 나온 그 뜻밖의 이름이 나왔고 그 순간 여래의 기억이 또렷해졌다.


- 맞아, 걔 이름은 분명 유재민이었어.


여래는 비로소 싫었던 녀석의 이름을 떠올렸다. 기억이 하나 떠오르자 마치 담이 무너지듯 연쇄적으로 다른 기억들이 여래의 뇌리에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포주 같은 새끼.”


유재민을 칭할 때 항상 소하는 그렇게 말했다.


당시 여래나 은혜는 포주란 단어가 어떤 걸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몰랐다. 소하가 무당 집안이기에 자기들과 다른 좀 예스럽고 어른 같은 단어를 쓰고 있다고 여겼을 뿐이었다. 포주라는 단어가 정확하게 뭘 말하는 건지 여래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생수병을 입에 물며 골똘히 생각에 사로잡혔던 소하가 말을 이었다.


“유재민 그 새끼, 다른 놈들한테 여자들을 상납하고 있었어.”

“…?!….”


예상하지도 못한 소하의 말에 여래의 얼굴이 굳어버렸다. 뭔가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왜인지 은혜의 죽음에 재민이 관여했을 거라는 알 수 없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은혜와 달리 재민이 녀석이 소하를 어려워했던 건 사실이다.


아니, 어려워했다기보다는 두려워하는 것이 맞을지도 몰랐다. 소하가 대대로 이어진 무당 집안 자식이라는 특수성은 알게 모르게 일부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심게 했으니까.


“어쨌든 너무 밖에 있지 마.”


소하의 말과 함께 옛 생각에 사로잡혔던 여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너무 한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소하가 먼저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었다.


“요새 여기도 많이 흉흉해졌거든.”

“혹시 마을에 무슨 일 있었어?”

“음….”


여래의 질문은 은혜의 죽음 말고 다른 일이 있었냐는 뜻이었다. 충분히 알아들은 소하가 입을 열길 망설이던 차에 도로 아래에서 소하와 같은 순경복을 입은 경찰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아마 그는 소하의 파트너일 것이다. 여래는 소하가 그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걸 보았다.


“여래야, 나 먼저 가 볼게.”


그렇게 소하는 자리를 뜨기 전에 최근 마을에 자잘한 범죄가 늘었다는 이야기를 재빠르게 털어놓았다. 예전보다 마을에 사람들이 늘었고 그러다 보니 사건 같은 것도 늘었다는 것이다. 아까 소하가 지나가면서 언급한 유재민의 이야기도 그렇거니와 여래는 여러 궁금증이 일었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더 물을 새는 없어 보였다.


자리에서 뜨면서 소하는 다시 당부했다.


“엉뚱한 데 들르지 말고 돌아가. 너 은근 사람 말 안 듣잖아.”


그렇게 말하는 소하의 모습이 꼭 자기 엄마 같다고 여래는 생각했다.


“나중에 시간 되면 연락할 테니까 그때 다시 만나자.”


핸드폰 번호를 교환하며 이르는 소하의 그 말은 너 잘 돌아가는지 확인하겠다는 투 같았다. 마치 말 안 듣는 꼬마를 타박하는 선생님 같은 소하의 태도에 여래는 어딘가 가슴이 뜨끔해지는 것 같았다.


유령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여래가 믿는 것은 아니다. 어둠을 무서워할 나이는 지났다고 여래는 생각했다.


그렇게 소하가 사라지고 여래도 일어섰다. 어느새 서쪽 하늘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심하게 어둡지는 않았고 언덕 폐가는 멀지 않았다. 여래는 샛길과 이어진 작은 길을 돌아서 가면 작은이모가 사는 집과 멀지 않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그것이 여래를 지나치게 안도하게 했다. 그렇게 소하의 당부도 잊어버린 것처럼 여래는 원래의 목적지로 향했다. 그때의 여래에게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여래는 그런 방식으로라도 알고 싶었던 건지도 몰랐다.

- 은혜야, 넌 대체 왜 여기에 왔던 거야?


자신도 소하처럼 촉이 좋았다면, 죽은 은혜가 남긴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래는 한순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학창 시절 소하는 자신이 무당 집안의 자식이라는 걸 부정하는 것처럼 귀신은 못 본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렇지만 여래는 소하의 촉이, 뭔가가 다가와서 느껴진다고 소하의 그 감각이야말로 인간을 초월한 뭔가를 감지하는 능력이라고 추측했다. 아마 소하는 그렇게 죽은 자의 기운을, 또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래는 문득 소하가 경찰이 된 이유가 그런 데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죽은 자와 접하려면, 그리고 그들의 억울함을 해소하려면 소하의 촉은 차라리 그런 쪽으로 활용되는 것이 더 나을 테니까.


그렇게 한참 정신을 놓은 채 걸어가던 여래는 자신이 어느덧 소문의 흉가 근처에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왔다는 걸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전 03화괴담집 : 이야기를 모으는 자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