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의 흉가 (3)
#005. 언덕의 흉가 (3)
해가 지고 있었다고 하지만 분명 햇빛이 지상에 많이 남아있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주변은 심하게 어두워져 있었다.
오래 고향을 떠나 있었기 때문일까? 여래는 높이가 낮은 산이라고 하더라고 그 근처는 밤이 빨리 찾아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말았다.
그제야 여래는 겁이 덜컥 났다.
벌써 주위에 깔리기 시작한 밤기운 때문은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의 눈앞에 있는 흉가의 모습 때문이었다. 여래와 마주하고 있는 흉가의 모습은 여래가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을 따라 흉가 탐험을 했을 때와 다른 게 없어 보였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그때보다 더 깔끔하게 보이기도 했다. 마치 지금 누가 저곳에 숨어 살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서서히 깔리는 어둠에도 여래는 그 폐가의 외벽에 페인트가 덧칠되어 있는 걸 눈치챘다. 창문에는 먼지가 잔뜩 끼어 있었고, 불빛은커녕 사람의 흔적은 없어 보이는데도 외벽은 이상하리만치 깔끔했던 것이다.
아무도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사람의 흔적 하나가 남아있다. 그런 모순된 모습이 한층 더 흉가를 기괴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순간 여래는 그 집을 계속 바라보면 꼭 그 창문에서 무언가가 나타나 자신을 쳐다볼 것 같은 망상에 사로잡혔다. 쓸데없는 상상력이 한순간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황급하게 그는 발걸음을 돌렸다.
- 도, 돌아가자!
샛길을 좀 더 벗어나면 작은 골목이 나오고 그 골목은 다시 이모와 다른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이어진다. 지금 움직이면 더 어두워지기 전에 사람 사는 곳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었다.
“헉-! 헉-!”
마을과 샛길이 이렇게 멀 리가 없는데 이상하게 집이 보이지 않았다. 그 짧은 거리에서 길을 잃을 리가 없는데 이상한 상황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여래의 심장이 평소보다 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 뭐지? 이 안개는…?!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던 여래는 자기 주위에 안개가 서서히 들어차고 있다는 것도 눈치챘다.
그건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오늘 낮까지만 하더라도 구름 한 점 없이 날씨가 맑았는데, 지금은 비라도 내릴 것처럼 습한 안개가 주변에 들이차고 있었다. 지금의 안개는 미묘할 정도로 짙었고, 그 안개와 밤이 어우러지는 미묘한 분위기에 여래는 온몸이 떨려오는 걸 느꼈다.
- 이건 꼭 귀신한테 홀린 것 같잖아!
은혜의 장례식장에서 마을 사람들은 흉가가 흉한 기운을 긁어모은다고도 했다.
어쩌면 그 집에 가까이 간 탓일까? 집의 안 좋은 기운이 자신한테 미친 것일까? 여래는 순간 자신이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엉뚱한 세계로 빠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가라앉지 않는 심장 박동과 후들거리는 다리를 느끼며 여래는 다시 길을 걸어갔다. 안개는 더 짙어졌고 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뭔가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고 여래가 울상이 되어갈 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어이, 거기 너 한여래 맞지?!”
여래는 갑자기 안개 너머에서 나타난 남자의 목소리와 그림자에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
새삼 여래는 너무 놀란 경우에는 소리도 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벌렁거리는 심장을 애써 억누르며 여래는 안개 너머의 남자가 서서히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바라보았다.
“…….”
여래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고 남자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래의 손이 어느새 가방 속에 있는 핸드폰을 향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야아- 진짜, 오랜만이다! 너!”
“…?!….”
남자는 여래의 몇 걸음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긴장을 억지로 깨 버리려는 것처럼 굉장히 장난기 서려 있었다. 그건 여래가 두려움에 질린 걸 알고 달래주려는 목적이 아닌, 그저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 대체 뭐야?
여래는 불길함을 억누르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남자를 찬찬히 바라봤다. 남자는 뭔가 재미있는 걸 발견한 것처럼 싱글벙글 거리며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태도는 불순해 보였지만 아직 여래를 위협하려는 기색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여래는 결코 마음을 놓지 않았다. 가방 속에 굴러다니던 핸드폰을 손안에 가득 쥐며 여차할 때 그 자리를 벗어날 각오를 하고 있었다.
“야아, 한여래 너 나 모르겠어? 거, 되게 섭섭하다 야!”
그런데 남자는 여전히 태연하게 웃으며 여래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자신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을 거는 남자의 모습에 여래는 한순간 궁금증이 일었다. 남자의 목소리는 어딘가 익숙했지만, 여래는 그가 누구인지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저 기분 나쁘게 이죽거리는 얼굴은 누구일까?
누군가는 제법 멀쩡한 외모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외모에서 숨길 수 없는 경박함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느껴지는 지나친 가벼움이 이상하게 여래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묘하게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던 녀석.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을 대할 때 얕잡아보던 태도.
여래는 비로소 앞에 생글거리는 남자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 유재민이다.
저 남자는 친구였던 은혜에게 집적거리고 소하를 뒤에서 욕하던 녀석이다. 질 나쁜 패거리와 어울리며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면서도 마치 그걸 자랑처럼 여기던 한심한 놈이었다.
“유재민?”
“이야- 이제야 기억났나 보네!”
여래가 이름을 떠올리자, 재민은 더 대담하게 덥석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거리낌 없는 태도가 묘하게 사람의 신경을 거슬렀고 여래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재민은 그런 여래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저 할 말만을 떠들어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