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의 흉가 (4)
#006. 언덕의 흉가 (4)
“너 대체 언제 이 마을에 온 거냐? 기왕 왔으니 나랑 얘기나 하자.”
“…….”
재민은 주변에 울릴 정도로 크게 떠들어댔지만 묘하게 주변의 어둠이 그 목소리를 덮어버리는 것 같았다. 여래는 재민이 불편했고 마을 사람 누구 하나라도 이 근방을 지나갔으면 하고 바랐다. 그러나 주변엔 그저 침묵만이 가득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여래의 불편한 심정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재민은 제멋대로 떠들고 있었다.
“내가 이 근방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거든. 마트에 좀 가려고 나왔는데 너 걸어가는 게 보이더라. 근데 참 섭섭하다. 난 너인 줄 바로 알아봤는데… 야, 기왕 온 거 우리 집 구경이나 하고 가라.”
재민의 말에 여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재민이 이 근방에 이사를 왔다고? 그러나 이 녀석이 살고 있다면 소하가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리 없다. 여래는 녀석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여래는 단박에 재민의 제안을 거절했다.
“아니, 나 너무 늦어서 금방 들어가 봐야 해.”
“야아, 그러지 말고…!”
여래가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벗어나려고 하자, 재민은 아예 손을 뻗어 여래의 팔목을 잡았다. 여래는 팔목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감각에 그것을 뿌리치려고 했다.
그러나 기묘할 정도로 재민의 손아귀 힘은 강했다.
“거, 오랜만에 만났는데 친구 부탁도 못 들어주냐?”
“아니, 지금은 너무 늦었으니까… 그러니까 다음에 만나자.”
“야아, 그러지 말고….”
여래가 거부를 표했음에도 재민은 이상할 정도로 여래에게 들러붙었다.
나 안 간다니까 하고 여래가 외치자 재민은 끈질기게 그러지 말고 자기 말을 들으라며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재민의 그 태도는 묘할 정도로 집요하기 짝이 없어서 여래는 불쾌감을 느꼈다. 거기다 낮에 소하가 남긴 말이 떠올라 여래는 어떻게든 재민을 뿌리치고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남자인 재민의 팔 힘은 여자인 여래가 쉽게 뿌리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윽고 실랑이가 길어지자 재민의 얼굴에서도 서서히 웃음기가 사라졌고 좀 더 사나운 표정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야, 이년아! 얌전히 있지 못해! 씨X! 거, 더럽게 말 안 듣네!”
기어이 재민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고 억지로 여래를 잡아당기는 수준이 되었다. 당황한 여래의 버둥거림은 더 심해졌다.
그리고 그때였다.
재민에게 붙들린 상황에서 여래는 뒤에서 뭔가가 스치는 소리가 나는 걸 들었다. 이건 틀림없는 사람의 기척이다. 뒤에 누군가가 있다는 걸 눈치챈 여래가 뒤를 돌아보려던 순간이었다.
퍼억-
그때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여래는 자신의 머리 위로 단단한 무언가가 날아오는 걸 느꼈다. 눈이 번쩍하고 머리가 띵한 통증을 느끼며 여래가 정신을 잃은 건 순식간이었다.
이후 여래가 눈을 뜬 건 한참이 지난 뒤였다. 아니, 여래는 자신이 얼마나 정신을 잃었는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었다.
- 대체 여긴 어디지?
눈을 뜬 여래는 자신이 컴컴하고 창고와 유사한 방에 앉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래의 앞에는 낡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여래는 테이블과 한 세트로 추정되는 의자에 누가 던져넣고 간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앉아있었다.
여래는 몸이 미끄러질 뻔한 걸 가까스로 추스르며 상체를 일으켰다. 다행히 몸은 묶여 있지 않았지만, 어딘가 얻어맞은 것처럼 온몸이 얼얼했다. 특히 머리 부근이 멍든 것처럼 욱신거렸다.
- 유재민 그 망할 새끼가…!
여래는 자신이 어떻게 이 방에 오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떠올렸다. 분명 자신은 은혜의 일 때문에 상심에 사로잡혀 그가 죽은 샛길까지 왔다가 흉가에 지나치게 가까이 갔었다.
분명 오래 방치되었음에도 깔끔한 흉가의 모습에 기분이 이상해진 여래가 발걸음을 돌려 마을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그때 동창이라고 하지만 만나고 싶지 않았던 유재민이 나타났다. 유재민은 여래를 끌고 가려고 했고 여래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텼다.
서로 옥신각신하는 와중에 여래의 뒤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동시에 여래는 머리를 부딪치는 충격을 받으며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눈을 뜨자, 이곳이었다.
- 내 가방은 어디 갔지?
일단 여래는 자신의 가방부터 찾았다. 가방 안에는 여래의 핸드폰이 들어 있고, 그것이 도움을 요청할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여래의 가방은 근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당황한 여래는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방은 매우 어두웠고, 손이 닿지 않는 윗부분에 조그만 창 하나가 겨우 달려 있을 뿐이다. 그쪽으로는 탈출도 못 하겠다 싶었던 여래는 몸을 돌렸다. 뒤쪽에는 출입구라고 여겨지는 문이 있었고, 여래는 거기에 다가가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나 문은 꽁꽁 잠겼는지 도무지 열리지 않았고, 당황한 여래는 아예 발을 들어 문을 걷어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여래는 희미하게 문밖에서 낄낄거리는 남자의 비웃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눈치챘다. 그 남자의 목소리는 낯이 익었고, 여래는 밖에 누가 있는 건지 바로 눈치를 챌 수 있었다.
- 유재민… 저 개새끼가!
여래가 재민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입술을 깨물고 얼굴을 일그러뜨리던 찰나였다. 순간 여래의 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고 그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어둑한 방 안에는 여래 혼자만이 있던 게 아니었다.
여래는 뻣뻣하게 굳은 고개를 겨우 돌려 방 안쪽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 불이 켜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방안은 희미하게 밝은 느낌이었다.
이윽고 여래는 자신 말고 다른 사람, 그것도 웬 남자가 테이블 앞에 앉아있다는 걸 눈치를 챘다. 그걸 안 순간 여래의 얼굴이 공포로 물들었고, 온몸은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
하지만 남자는 여래가 두려움으로 굳은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두렵긴 했지만, 여래 역시 남자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여래가 겁을 먹지 않은 건 결코 아니었다.
다만, 여기서 저 시선을 피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래는 꼭 자신의 꼴이 산중에서 사람을 해치는 짐승과 마주한 인간 같다고 느꼈다.
한동안 어색하고 숨통을 틀어막을 것 같은 침묵이 방안에 짙게 깔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