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의 오두막 (2)
#002. 공포환상기담 : 악몽의 오두막 (2)
준규는 자연스럽게 책을 펼쳤고, 서서히 그 책의 내용에 빠져들었다.
“난 그 책을 읽고 놀랄 수밖에 없었어. 왜냐하면….”
이윽고 준규는 그 책의 내용이 매우 충격적이란 걸 알았다. 그때 별생각 없이 아무 페이지나 펼친 거였지만 거기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아니 입에 담으면 안 될 거 같은 끔찍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꼭 텍스트에서 피비린내가 풍겨온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아, 이 부분은 자세하게 묻지 마. 실은 묘사는 잘 기억 안 나. 그냥 느낌이 그랬다는 거야.”
꿈속이었지만 알 수 있었다. 그 책에 쓰인 이야기가 정말 끔찍한 내용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준규는 그 책을 읽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마치 끔찍한 사고 현장을 무서워하면서도 결국에는 구경하고 마는 어린아이 같은 심리였다고 할까.
준규는 거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잠시 숨을 고르며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뭔가에 생각에 빠진 것처럼 그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린 채 굳게 입을 다물었고 서준은 말없이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
꿈 이야기를 줄줄 늘어놓다가 자세한 묘사는 생략하고 갑자기 두려운 기색을 보이는 준규를 보며 서준은 생각했다. 이 녀석은 공포영화를 너무 과몰입하면서 본 게 아닐까? 그러나 대놓고 준규에게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날 서준에게 털어놓지 않았지만, 준규의 기억에 딱 하나 남는 것이 있었다.
책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 실려있던 내용, 그것은 괴물에게 찢겨 죽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그 묘사가 지나칠 정도로 섬뜩하고 노골적이었다고 그것을 떠올리며 준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날 준규가 서준에게 털어놓지 않은 이야기는 하나 더 있었다. 그건 꿈의 후반부였다.
꿈속에서 책의 마지막 페이지마저 걷히고 준규가 그 책을 내려놓으려 할 때였다.
끼이익-!
그때 뒤에서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낡은 철제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준규는 깜짝 놀라 책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툭 하고 책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는 오두막 안의 적막을 깨뜨리지 못했다.
‘그것’이 준규를 따라 오두막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준규가 책에 정신이 팔려 뒤를 살피지 못하는 동안 줄곧 그를 쫓아온 그놈이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그림자가 짙어 놈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놈의 키는 일반 성인 남자보다 배로 컸고 그 형체는 털이 수북한 무언가를 뒤집어쓴 것처럼 또렷하지 않았으나 형형하게 빛나는 두 눈이 지금의 준규를 노려보고 있는 건 알 수 있었다.
마치 ‘드디어 잡았다’며 놈의 두 눈이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다고 준규는 생각했다.
터벅-터벅-!
이윽고 소리를 내며 그놈이 준규에게 다가왔다. 준규는 피가 빠져나가는 공포를 느꼈다. 소리를 지르고 싶어도 목이 굳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오두막의 문은 닫혀 있고 뒤에는 벽이 있을 뿐이었다.
지금 준규가 도망갈 곳은 없었다.
이윽고 세 발자국 정도를 앞에 둔 상황에서 놈이 서서히 손을, 아니 손이라 추정되는 것을 뻗었다. 뚜렷하지 않은 놈의 얼굴이 가로로 벌어졌다. 저것은 입이다. 인간의 입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길게 찢어진 선이 넓게 벌어지면서 마치 웃는 형상을 띄고 있었다. 놈의 형태는 그림자에 묻혔지만 길게 찢어진 입안에 피처럼 붉은 잇몸은 선명했다.
그리고 그 붉은 잇몸에 빼곡하게 박혀있는 날카로운 이빨들.
놈의 커다란 손이 준규의 팔을 잡아채고 준규의 몸이 저항 없이 앞으로 당겨졌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커다란 입이 준규의 목을 물어뜯었다.
- 아아악!
피부가 뜯기고 피가 솟구치는 불같은 고통을 느끼며 준규는 소리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눈을 떴다.
준규의 앞에는 어스름한 새벽빛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의 방안이 들어올 뿐이었다. 그의 몸은 피에 젖은 것처럼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몸은 얻어맞은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파르르 떨렸다. 희미하게 남은 고통이 가라앉고 주섬주섬 몸을 일으키는 동안 간밤의 꿈은 희미해졌고, 어딘가 무서운 감각만이 남았다.
준규는 꿈의 마지막을 확실히 떠올릴 수 없었다. 눈을 떠서 현실로 돌아오자 책 속의 모든 내용 또한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면 대부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을 읽고 자신이 심한 충격에 시달렸다는 것뿐. 그리고 다시 잠이 들면, 또 꿈은 준규를 그 새하얀 오두막으로 데리고 갔다. 그는 거기서 또다시 검은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끔찍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호기심 때문인지, 아니면 내용을 다 잊어버려서인지 다시 내용을 각인시키려는 듯 준규는 책을 읽었다. 그리고 또 끔찍한 꿈의 후반부가 되풀이되었다.
하지만 준규가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오면 그 꿈의 후반부를 잊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면 또 같은 일을 되풀이하게 되기가 여러 날. 놀랍게도 준규는 꿈의 마지막은 잊어버린 채로 서준에게 자신이 겪은 악몽의 분위기만을 전달했다.
그래서 서준은 어떻게 준규가 그 꿈에서 깨어났는지 알 수 없었다.
얼마 후 서준은 준규의 종적이 모호해진 걸 알았다. 서준이 문자를 보내고 반응이 없었고, 전화를 걸어도 통 받지 않았다. 서준은 조금 걱정이 된 나머지 언제 한 번 녀석이 사는 데를 찾아가 볼까 하다가 일에 치여 그 다짐마저 까맣게 잊고 말았다. 준규가 털어놓은 꿈 이야기마저 잊어버리고 또 몇 달을 보낸 뒤에야 서준은 준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서준은 준규의 동생으로부터 그의 죽음은 사고는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몸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준규가 본가로 들어왔을 때는 잠시 회복되는가 싶더니, 도로 눈에 띄게 몸이 여위어갔다고 했다. 조만간 검진이라도 받아보자는 말을 가족이 꺼냈을 즘, 정말이지 갑작스럽게 준규는 깨어나지 않았다.
영영 잠에 빠진 것처럼 그는 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역시 자신도 모르는 어떤 병이 있던 게 아니었을까?
서준은 그리 판단했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준규는 눈에 띌 정도로 피폐해졌다. 서준은 그 녀석의 이상한 꿈도 그런 쇠약함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을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잠을 설치던 서준이 겨우 깊은 잠에 빠졌을 무렵이었다.
꿈속에서 서준은 어떤 숲을 헤매고 있었다. 준규가 말한 것처럼 어떤 소리도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적막하고 어두운 숲속을 말이다.
- 이거 꿈이구나.
서준은 숲을 헤매면서 자신이 꿈속에 있다는 걸 알았다. 이건 준규가 생전에 말한 꿈과 비슷했다. 그동안 잊고 지낸 준규의 꿈 이야기가 무의식 속에서 떠올랐던 걸까? 서준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뒤통수에 시선이 달라붙는 것 같았다. 실제로 뭔가 달라붙거나 피부를 건드리는 건 아니지만 서준은 뒤통수가 묘하게 간질거림을 느꼈다. 머리를 몇 번 긁적였을 뿐, 차마 뒤돌아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저 서준은 앞으로 계속 걸어갈 뿐이었다. 눈앞에 새하얀 오두막이 나올 때까지. 사람이 만들었을 테지만 사람의 흔적 따윈 남지 않은 새하얗고 기이한 오두막을 말이다. 마치 준규 녀석이 생전에 말한 것과 같은.
그리고 그 하얀 오두막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탁자와 검은 책이 집 중앙에 놓인 것이 보였다. 서준은 직감했다. 아마 준규가 그랬듯이 자신도 그 책을 읽으려 들 것이다. 꿈속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다음의 일은 어떻게 될지, 지금의 그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등 뒤에 오두막의 문이 열려있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은 상태로.
서준은 천천히 책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