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와 방문자
#003. 공포환상기담 : 까마귀와 방문자
1.
까악-까악-
적패지(赤牌旨)를 물고 달아난 것 마냥 검은 까마귀가 울었다. 불길하지만 처량한 울음소리였다. 마치 무언가의 종말을 이야기하듯. 아래 지나가는 사람들이 재수 없다며 까마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하지만 까마귀가 인간의 폭언을 알리 없었다.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기묘할 정도로 사람의 심정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괜히 옛사람들이 까마귀를 죽음을 예고하는 재수 없는 새로 여긴 것이 아닐 것이다.
하필이면 그 불길한 새가 울던 곳도 병원 옥상 부근이었다. 하얀 병원의 건물과 까마귀의 검은 빛깔은 도드라지게 대비되었다. 쓸쓸한 겨울의 오후가 까마귀의 울음소리와 어우러져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길 때 그것을 예고하는 상징처럼.
제법 오래도록 병원을 벗어나지 못하는 환자들은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듣고 괜스레 더 우울해졌다. 거동조차 불편한 사람들의 우울증은 하루 이틀 만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몸이 굳으면 마음도 서서히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안개비가 조금씩 사람의 체온을 빼앗아가듯 우울과 절망은 당장은 눈에 띄지 않아도 사람들의 마음을 갉아먹었다.
꼭 죽을병이 아니라도 사람이 자기 몸을 맘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은 답답하고 서러운 일이다. 오래 아픈 사람들이 우울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나마 회복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은 퇴원할 날을 기다리며 견딜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우울이란 건물 안에 영영 갇힌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가 이 병원을 찾아온 지도 제법 오래되었다.
아마 횟수로 따지면 세 자리는 훌쩍 넘어갈 것이다. 그는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의 암울하고 답답한 심리를 이해 못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어찌 보면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그런 환자들을 기나긴 우울함의 통로에서 건져 주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고도 생각했다.
까악- 까악-
까마귀가 다시 울어댔다.
까마귀는 새들 중에서도 머리가 좋은 종이라고 하였던가? 까마귀들이 병원 부근에 터를 잡고 난 뒤로 이제는 병원을 항상 찾아오다시피 하는 그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까마귀들이 그를 볼 때마다 우는 건, 그가 반가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를 경계하기 위해서 그런 건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짐승의 심리를 어찌 인간이 이해할까? 다만 그 울음소리가 사람을 위축되게 만드는 건 확실했다. 까마귀들이 그를 보고 울어댔지만 그는 까마귀의 울음 따위를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일단 병원에 온 이상 그는 그의 일을 해야만 한다. 그가 자신의 일을 미룬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일을 하면서 그가 딱히 긴장을 하거나 어렵다 느낀 경우는 없었다.
그에게 있어 이 일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 중의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그가 해야 할 일은 늘 많았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곧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병원 안내데스크를 무심하게 지나치고 오늘 자신이 들려야 할 병실을 찾았다. 굳이 다른 직원들에게 묻지 않아도 그는 알 수 있었다. 이윽고 그는 아무렇지 않게 그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병실 안에는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던 환자 하나가 잠든 것처럼 누워있었다. 그는 그 환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김우영- 김우영- 김우영-.
그가 이름을 세 번 부르자 환자가 스르르 눈을 떴다. 환자 김우영은 깨달았다. 이제 병원을 떠날 때가 된 것이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남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환자 김우영은 이제 미련이 없었다. 이젠 밖으로 나가려 해도 자신을 제지할 사람은 없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환자 김우영은 군말 없이 그를 따라갔다.
XX년 X월 XX일 환자 김우영은 그렇게 병실에서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2.
까악-까악-
적패지(赤牌旨)를 물고 달아난 것 같이 검은 까마귀가 울었다. 불길하지만 처량한 울음소리가 마치 무언가의 끝을 암시하듯이 울려 퍼졌다. 아래 지나가는 사람들이 재수 없다며 까마귀를 보고 침을 뱉었지만 까마귀가 인간의 모욕적인 행동을 이해할 리 없었다.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기묘할 정도로 사람의 심정을 내려앉게 만들었다. 괜히 옛사람들이 까마귀를 보고 불길함을 예고하는 재수 없는 새로 여긴 것이 아닐 것이다.
오늘따라 그 반갑지 않은 새가 울던 곳은 근방 학교의 운동장 부근이었다. 학교는 얼마 전에 보수공사를 하여 외관은 깔끔하였건만 그 외관의 깨끗함이 까마귀의 검은 빛깔과 대비되었다. 눅눅하고 흐린 여름의 오후는 까마귀의 울음소리와 어우러져 마치 공포영화의 도입부를 보는 듯했다. 무언가 안 좋은 일이 생길 때 그것을 예고하는 상징처럼.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까마귀의 울음소리를 듣고 괜히 짜증을 냈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고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예민해져 있었다. 아이들의 짜증과 불안은 하루 이틀 만에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시험도 시험이었지만 성적이 떨어지거나 교우 관계가 틀어졌거나 아니면 여러 가지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이 있었다. 구름이 해를 가려 낮임에도 어두워진 것처럼 아이들의 얼굴도 나름의 사정으로 어두워 보였다.
그래도 이번 시험이 끝나면 좀 숨통이 트일지도 모른다. 몇몇 아이들은 시험이 끝나면 할 일을 미리 구상해놓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시험의 결과에 어떤 눈총을 받게 될지 일찌감치 불안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가 지나가더라도 어떤 아이들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교정에서 옥상을 올려본 아이는 한숨을 폭 쉬었다.
이제 시험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곧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이 울렸건만 아이는 교실로 올라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제 수업 같은 건 더 이상 아이에겐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교사들도 학생들도 아이를 잊어버린 건지 아무도 아이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아이는 그들을 탓하지 않았지만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교정 한 구석에서 오래 버티는 것도 이제 슬슬 지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까악- 까악-
교정에서 까마귀가 또다시 울어댔다.
까마귀는 새들 중에서도 머리가 좋은 종이라고 하였던가? 까마귀들은 학교 근처에 터를 잡고 종종 옥상에서 휴식을 취하면서도 가끔 학교 옆을 지나가는 그를 알아보는 것 같았다. 까마귀들이 그를 볼 때마다 우는 건, 그가 반가워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그를 경계하기 위해서 그런 건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짐승의 심리를 어찌 인간이 이해할까? 다만 그 울음소리가 사람을 위축되게 만드는 건 확실했다. 까마귀들이 그를 보고 울어댔지만 그는 까마귀의 울음 따위를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그는 평소에 가던 곳이 아닌 학교로 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원래 그가 자주 찾아오던 곳은 아니지만 오늘은 특별히 여기에 볼 일이 있으므로 여기까지 온 이상 그는 그의 일을 해야만 한다. 그가 자신의 일을 미룬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일을 하면서 그가 딱히 긴장을 하거나 어렵다 느낀 경우는 없었다.
그에게 있어 이 일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 중의 하나였으니까. 그리고 그가 해야 할 일은 늘 많았기 때문에 망설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곧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학교 입구를 무심하게 지나친 그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낯선 사람이 들어왔건만 학교에 있는 그 누구도 그를 제지하려 하지 않았다. 교사도 아이들도 그저 교실 안에서 자신들이 할 일을 할 뿐이었다. 운동장에는 아이 혼자만이 남아 멍하니 옥상을 올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멍하니 서 있는 아이의 뒤통수를 보았고 몇 걸음 남은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신주하- 신주하- 신주하-.
그가 이름을 세 번 부르자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학생 신주하는 깨달았다. 이제 학교를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다.
남자가 나지막이 말했다. 학생 신주하는 이제 미련이 없었다. 지금 학교 밖으로 나가려 해도 자신을 제지할 사람은 없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학생 신주하는 군말 없이 그를 따라갔다.
XX년 X월 XX일 학생 신주하가 학교 옥상에서 몸을 던진 지 49일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