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동화
#004. 공포환상기담 : 잔혹동화
이것은 동화 같기도 하고 동화 같지 않기도 한 이야기였다.
전래동화란 게 으레 그렇듯 마냥 행복한 이야기 같으면서도 본질은 잔인하고 살벌하기 그지없으며 이것이 과연 행복한 결말이라 할 수 있는지 의문스러운 이야기들도 더러 섞여 있기 마련이다.
유라는 자신이 아는 이야기 또한 그렇다고 생각했다.
으레 동화는 황당무계하고 현실에 있기 어려운 망상 따위로 비유되기도 하지만, 알고 보면 동화만큼 뒤틀린 현실을 반영하는 것도 없는 것 같았다. 어쩌면 마지막에 등장하는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은 후대의 인간들이 잔혹하기 그지없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정신승리를 위해 가져다 붙인 것일지도 몰랐다.
유라는 자신이 아는 이야기가 그래도 해피엔딩이길 바랐다. 결말이 좋았다면 중간 과정의 고난이야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현실은 잔인했다. 동화의 본질은 그 현실의 축소판이었고 해피엔딩은 그저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 들어간 결과였을 뿐이다.
***
옛날 한 옛날에 어떤 왕국에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 있었고 그곳에서 선량한 사람들이 살았다.
그리고 그 마을에는 고귀한 신분은 아니었지만 한 나라의 공주님처럼 아름다운 여자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신분이 낮은 집안의 딸이었지만 그런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같이 자란 그들은 마치 자매처럼 친하게 지냈다. 그의 부모들도 주변 사람들도 그들을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그들이 비록 공주처럼 귀한 신분으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딸들이 행복한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마치 동화처럼. 어쩌면 동화처럼.
그런데 이 이야기는 동화 같기도 하면서 동화 같지 않은 이야기였다.
그들이 사는 곳 근처의 숲에는 흉악한 괴물이 하나 살고 있었다.
그 괴물이 언제부터 마을 근처에 살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사람들은 그 괴물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되도록 그 괴물과 엮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사람들은 모두 그 괴물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때때로 괴물은 자신이 사는 숲을 벗어나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내려왔고 마을 사람들의 생업을 방해하며 그들을 다치게 만들었다.
괴물이 항상 마을을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괴물 때문에 피해를 입는 것은 사실이었고 그 때문에 마을 사람들을 그 괴물을 증오하고 두려워했다.
마을 사람들 중 숲속에 홀로 사는 괴물을 불쌍하게 여기거나 그 사정을 알아주려는 인간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아름다운 딸들도 그 괴물을 두려워했고, 아름다운 딸들의 부모도 그 괴물을 혐오했다. 사람들은 그 괴물이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을 해코지할까 봐 두려워하고 멀리 했다.
이야기는 사람들이 예상한 수순대로 흘러갔다.
숲속의 괴물은 아름다운 여인을 마을에 요구했다. 분명 괴물은 마을의 아름다운 여인을 강제로 취하거나 아니면 제물로 삼아 잡아먹거나 혹은 둘 다 이루기 위해 여자를 끌고 가려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어딘가에서 훌륭한 왕자가 나타나 그 괴물을 퇴치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왕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사람들이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흐름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바람과는 달리 왕자는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왕국의 왕자는 애초에 그런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 숲속 괴물의 힘이 막강하진 않고, 그의 부모들도 그저 유약한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인지 괴물한테 호락호락 당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딸들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러나 괴물은 언제라도 아름다운 딸들을 데리고 가려고 틈을 살피는 듯 마을 주위를 맴돌았다. 괴물이 아직 무슨 짓을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다들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그런 두려움이 길어지면서 마을 사람들도 서서히 지쳐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이 끝날 일 없이 커지자, 결국 아름다운 딸들 중 더 선량한 여성 쪽이 자신을 희생하기로 했다. 그는 부모와 친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괴물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의 친구는 마을에 남기로 했다.
사람들이 충분히 예상했던 것처럼 괴물은 자신의 소굴로 자신이 강제로 신부 삼은 여인을 감금했다.
만약 이것이 흔한 동화와 같은 이야기라면, 또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였다면 아마 다음 전개는 괴물이 실은 저주받은 왕자였다는 이야기로 흐를 것이다. 그리고 저주받은 왕자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자신의 정체와 왜 저주를 받았는지 밝힐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신부를 기쁘게 해 주기 위해 그에게 아름다운 드레스나 값진 보물을 안겨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저주가 풀려 아름다운 왕자의 모습으로 돌아와 자신의 신부를 데리고 왕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사람은 누구보다 행복하게 사는 결말을 맞을 것이다.
어쩌면 또 이런 전개가 나올지도 모른다. 마을에 남은 다른 아름다운 여인, 신부가 된 딸의 친구나 여자 형제가 그 사실을 알고 그를 시기하여 둘 사이를 훼방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고난이 끼어든다고 해도 결국 괴물과 신부는 오해를 풀고 백년해로하는 결말을 맞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이야기가 정말 동화와 같았다면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아는 동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여자를 끌고 간 괴물은 왕자도 뭣도 아니었다. 괴물은 그저 괴물이었을 뿐이고 신부로 삼은 여자에게 주는 것은 값진 선물도 왕궁에서의 행복한 삶도 아닌 이유 없는 폭력과 고통스러운 나날뿐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구해주러 오는 왕자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여자는 괴물의 소굴에서 괴물의 신부로 고통받으며 살다가 쓸쓸히 죽어갔고 그가 죽자 괴물은 또 마을로 내려가 흉악한 짓을 벌이기 시작했다. 괴물이 다른 여자를 신부로 삼기 위해 끌고 갔는지 아니면 그의 악행을 못 견뎌 한 인간들 손에 처단당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
친구 소진의 유품을 정리하던 유라는 소진이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책을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모아둔 것을 알았다. 낡고 헤져서 이제는 중고로라도 사 갈 사람이 없는 책들을 어찌할까 망설이던 유라는 동화책을 훑다가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화 속에는 항상 아름다운 여자가 나오며 그런 여자를 노리는 괴물이 있고 여자를 구하는 왕자가 있다. 어떤 경우는 괴물이 저주를 받아 모습이 변한 왕자인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반드시 둘을 훼방하는 사악한 존재가 나타나서 주인공들이 고난을 겪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는 그것을 극복하고 행복하게 산다.
동화란 게 다들 그렇지 하면서 비웃으면서도 유라는 왜 옛날 사람들이 저런 이야기들을 반복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아마 괴물에게 끌려가는 여자들은 옛날에는 더 많았을 것이다. 바보같이 괴물을 괴물인 줄도 모르고, 그가 변신한 왕자라고 생각하여 괴물을 선택한 여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여자들의 일생이 무난히 풀려나갈 것이라고 믿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끌려간 여자들이 그래도 행복하기를 빌면서 뒤에 이야기를 덧붙였을 것이 틀림없다. 여자들을 끌고 간 것이 괴물은 아니었다고, 설령 괴물이었다고 해도 나중에는 철이 들어 왕자처럼 변하기를 바라면서 어떻게든 뒤의 이야기들을 이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실제로 있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들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 해도 손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동화란 결국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을 담은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현실은 잔혹 동화고, 진짜 동화는 그저 한풀이 위로나 마찬가지였다.
죽은 소진이 자신이 선택한 남자가 괴물과 다를 바 없는 인간이란 것을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좋았으련만. 그 남자가 저지른 짓이 세상에 밝혀지자 엉뚱하게도 오명을 쓰고 자살해야 했던 것은 소진이었다. 하지만 괴물을 선택한 것도 소진이었기에 그는 죽기 전에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참으로 무력하고 서글픈 현실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뭘 어쩌겠는가. 그래도 적어도 저세상에서 친구인 소진이 동화처럼 행복하게 살기를 빌면서 유라는 조용히 그 책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