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트라, 휘말려 들다 (1)
#005. 공포환상기담 : 엑스트라, 휘말려 들다 (1)
어느 날이었다.
난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게 아니라, 우리들이 현실이 아닌 소설 속에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처음엔 소설이라기보단 외계인 같이 초월적인 존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세계가 아닐까 추측도 했었다. 그런데 현재 흐름을 보면 나 혹은 우리가 속한 이 세계는 소설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세계를 창조한 조물주는 종교에서 말하는 우주를 창조한 절대신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눈치챈 것에 의하면 말이다.
종교에서 말하는 절대신이란 것은 인간의 머리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보통 그렇지 않은가?
절대신은 우주처럼 넓고 크고 알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에 가깝다. 인간의 모습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의 뜻을 알 수가 없다고 따르는 자들은 한탄하곤 했다.
그러니 여기서 나 혹은 우리가 포함된 세계를 만든 자 또한 비슷한 관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초월적이거나 신성하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일단 내가 보기에 그렇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의도를 알 수 없으니 그의 뜻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절대신의 세상과는 좀 달랐다. 나는 우리 세계가 돌아가는 꼴을 보면서 이것에 명백한 의도가 있다는 걸 알았다.
그는 꼭 우리를 가지고 게임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엔 우리가 게임 속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느끼기를 우리가 있는 세상은 게임보다는 소설에 가깝다 여겨졌다. 작가가 자기 작품을 창조할 때 어떤 주제의식이나 목적을 갖고 상황을 만드는 것처럼 우리가 마주치는 상황에도 특정한 의도가 너무 명백하게 보인다는 점 때문이다.
다만 선택지가 많은 게임에 비해 지금 나 혹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전개가 너무 빤하다고 할까.
게임을 잘해보지 않아서 판단할 수 없지만 적어도 게임에서는 여러 종류의 엔딩을 볼 수 있지 않은가. 심지어 유저의 선택이나 행동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니까.
그러나 여기 세계에선 결말이 하나뿐인 것 같았다. 적어도 내 판단에 의하면 말이다.
얼마 전에 사건을 조사한다면서 찾아온 저 형사가, 이후에 나와 마주친 한 귀신이, 그리고 나에게 귀신이 있다고 말해 준 어떤 꼬마가 모든 사건을 해결하고 완벽하게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
아마 이 세계의 결말은 그것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결말과는 무관했다.
왜냐면 나는 엑스트라였기 때문에.
그렇다면 어째서 소설 속 엑스트라에 불과한 내가 이 세계의 미스터리를 깨닫는 인간이 된 것일까?
아직도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조물주 그러니까 작가 양반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실수인 걸까? 아니면 이 소설 속 세계관이 너무 엉성한 탓일까?
그러나 적어도 주연이라 분류할 만한 저 셋은 자신들이 어떤 처지인지 모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나처럼 이 세상이 하나의 소설이라는 걸 알아차렸는지 난 확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물론 가끔 나도 다른 사람들에 내가 알아낸 사실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내가 소설 속 중요한 인물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괜히 서글퍼져서 이런 운명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현실, 소설 속이라고 해도 내 현실은 냉엄했다.
“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소설 속이에요! 우리들은 모두 작가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는 거예요!”
만약 이렇게 다른 이들 다 듣게 이런 말을 소리내 외친다면 다른 사람들은 분명히 날 미친놈으로 취급할 것이다.
“네가 소설을 너무 많이 봤구나.”
“너 미쳤니?”
누군가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새는 특정 인물이 자신이 현실 속 인물이 아니라 소설, 만화, 게임 속 인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운명을 바꾸려고 하는 이야기가 유행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가 그런 작품의 영향을 받아 어딘가 이상해진 거라고 여길 것이다. 내가 나름 조리있게 내가 알아낸 세계의 법칙을 설명하려고 한들 망상증 환자의 괴상한 헛소리로 치부할 뿐 진지하게 귀담아듣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난 얼마 안 되는 친구들과도 절연 당하고 사람들과 마주치는 동안 꺼리는 눈빛을 받을지도 모른다.
아니, 단순 이상하게만 생각하면 다행이다. 타인이라면 모를까, 평범하기 짝이 없는 가족들은 정신병원에 날 처넣으려 할지도 몰랐다. 비록 이 세계가 소설 속이라 하더라도 그건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결정적으로 나한테 운명을 바꿀 만한 힘은 없었다. 유행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과 달리 나에게 진심으로 특별하다 할 만한 능력이 주어지지 않았다.
이건 참으로 지독한 일이었다. 보통 이런 장르의 소설 속 인물들은 작가의 의도와 역행하여 자기 삶을 살 수 있는데, 나에게는 그런 선택권이 존재하지 않는다니.
소설 속 세계라고 하지만 이런 점은 참으로 현실적이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운명을 바꿔볼 생각을 포기하고, 소설 속 내 역할에 충실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