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환상기담 : 고요한 밤의 짧은 이야기 -7-

엑스트라, 휘말려 들다 (3)

by 이사금

#007. 공포환상기담 : 엑스트라, 휘말려 들다 (3)





이것이 내 뇌가 만들어낸 착각이 아니라면 틀림없다. 처음엔 같은 상황을 여러 번 겪고 루프라던가 리셋이라던가 그런 것을 연상했을 뿐.


왜 소설이나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도 흔히 나오지 않았던가.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대개는 큰 충격을 받을만한 사고를 당한다던가 어떤 주술 같은 것을 써먹는다던가.


예를 들면 오래전에 인터넷에서 유행한 다른 세계로 가는 방법? 혹은 다른 차원으로 통하는 입구를 맞닥뜨리거나 하는 이유로 과거로 회귀한다거나. 또는 교통사고를 당해 영혼이 과거로 날아가 새 인생을 시작할 기회를 얻는다는 내용의.


지금 중요한 문제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란 사실이지만.

평소에 나는 지금보다 과거로 더 돌아갈 수 있다면 로또 1등 당첨번호를 기억한 뒤 당첨이 되겠노라 다짐했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과거 리셋 같은 희귀한 일이 나에게 벌어질 리는 없었지만은.


그런데 벌어지긴 했다. 다만 루프나 리셋을 선택할 권리가 나에게 없었을 뿐.

거기다 어떤 작가들은 이런 전개에 은근 덫을 놓는 경우도 많았다. 보통은 미래의 정보를 바탕으로 찾아올 고난을 피하고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도 많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 속에선 주인공들이 과거로 돌아가긴 돌아가는데 미묘하게 달라진 과거로 돌아가거나 혹은 처음의 미래보다 더 암울한 미래를 주인공들에게 건네주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짓은 보통 공포물 작가들이 벌이더라.

공포소설은 진심 주인공을 고문하기 위한 장르나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가끔 우스갯소리로 인터넷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심즈와 비슷하게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게임 속 세계 아니냐는 이야기를 본 적도 있는데 이 세상이 게임이든 소설이든 난 조물주가 아끼는 대상이나 주연급은 아니란 생각을 했다.


만약 작품 속의 중요한 캐릭터라면 이 지루하고 변화 없는 생애에서 뭔가 눈에 띄는 이벤트가 하나라도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게임이든 소설이든 내가 어떤 가공의 캐릭터라 한다면 특정한 시기에 뭔가 벌어져야 하건만 교묘하게 내 인생은 그런 기회를 피해 갔다. 그저 메인 주인공들을 장식하는 평범한 물건같이 보잘것없는 시간을 보냈을 뿐.

아니다. 생각해보니 주인공이 되는 건 기회가 아니라 덫일지도 몰랐다.


적어도 나는 소설 속 주인공처럼 고난에 빠지기는 싫었으니까.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것은 억울하지만 저 주인공들이란 분명 조물주(작가)가 내려준 각종 고난과 이벤트를 겪어야 하는 법이다.


훌륭한 이벤트가 그를 기다린다고 해도 그에 따르는 험난한 과정은 필수인 것이다. 혹은 작가의 애정이 지나쳐서 어떤 고난을 겪지 않아도 문제일 것이다.


종종 작가들이 자기가 만들어낸 특정 인물들을 편애한 나머지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독자들의 원성을 받아 외면받는 경우도 많지 않던가. 그건 일종의 세계관 붕괴다. 세계관이 붕괴한 소설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나는 모른다.


아예 어이없는 결말을 맞이하여 파국을 맞거나 작가가 손을 놓아버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지 않던가. 아마 소설의 비극은 작가가 아예 손을 놓고 그 세계를 외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건이 진행되다 만 소설은 그야말로 정체되어가는 세상과 다름없지 않은가. 거기다 독자들에게 잊히기까지 한다면 종말이나 다를 바 없다.


물론 나도 주변을 돌아보면서 듣게 되는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잘 나가는 인간들이 그렇게 조물주의 편애를 받아 인생이 잘 풀리는 녀석들이 아닐까 싶었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세계관에 포함되는 인간이므로 그런 녀석들에 대한 분노가 없을 리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엑스트라였다.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세계에 영향력을 줄 입장이 아니란 말이다.


엑스트라로 사는 대신 고난을 피하는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렇게 생각을 하게 됐으니까. 거기다 내가 인지한 바에 따르면 이 소설은 행복하고 사람에게 힐링을 건네주는 장르는 결코 아닌 것이다.


- 그래. 엑스트라로 태어났어도 굴곡이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이 최고야.


난 지금껏 많은 공포소설과 공포영화를 보아왔다.


아마 나나 다른 사람들은 작품 속에서 진심 한번 배경을 채우기 위해 지나가는 수준의 인간일 것이다.


똑같은 엑스트라라 하더라도 귀신이나 유령, 악마나 괴물 혹은 살인범에게 살해당하는 역할들하곤 달랐다. 적어도 그들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더라도 세계관을 설명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에 따른 대가가 너무 참혹하다. 배경 수준인 우리와 다르게 적어도 세계에 영향을 주는 인간들이기는 하지만 결말이 너무 끔찍하기 그지없어서 주인공도 못되고 세계에 영향력을 주지도 못한다면 그저 평범하게 아무 일 없이 살아가는 지나가는 인간 A인 것이 낫지 않은가.


그렇게 평범한 엑스트라 인간 A로 살다가 어디에선가 사건이 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며 다시 일상을 살아가는 그런 인간.


물론 얼마 전에 살인 사건을 쫓는 형사와, 억울하게 죽은 혼령과 귀신을 보는 아이와 만났다 하더라도 난 그들의 질문에 몇 번 대답만 해주었을 뿐 적어도 소설 속 사건에 크게 휘말리지는 않았다.

메인 사건에 휘말려 끔찍한 꼴을 당할 일은 없었다 이 말이다. 설령 살인 사건을 쫓는 형사와 억울하게 죽은 혼령과 귀신을 보는 아이를 두 번째 마주쳤을 때도 난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어쩌다 우연이 반복되었을 뿐. 어쩌면 같은 지역에 살다 보니 같은 인간을 마주치기도 하지 않은가. 처음엔 단순 그런 경우라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세 번째 같은 인간들을 마주치게 되었을 때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네 번째에도 또 같은 상황에서 같은 인간들을 마주쳤다. 그리고 또 반복되었다. 벌써 몇 번째란 말인가? 이 반복을 수십 차례 겪다 보니 난 깨달은 게 있었다. 그동안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지만 내가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덫에 걸린 걸 알았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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