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
#009. 공포환상기담 : 폐가
“저 집엔 아무도 안 사나 보네.”
“저기에 사람 안 들어온 지 한 20년은 됐을걸?”
“저 집터가 도깨비가 살던 터라나 뭐라나. 하여간 사람이 오래 버틸 수 있는 곳이 아니야.”
“기억이 날락 말락 한데 오래전에 저 집에 살던 사람들 갑자기 소식이 끊기지 않았나.”
마을 사람들이 일컫는 불길한 집은 도깨비 언덕이라고 불리는 장소 위에 있었다. 거기에 어째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사람들은 그 언덕을 도깨비들 사는 터라고 여겼다.
터의 기운이 세서 원래 저기는 사람이 살 만한 데가 아니라는 이야기는 덤이었고, 그 믿음 덕에 도로가 아래에 있으면서도 마을 주민 대부분은 그 언덕 주변을 지나다니진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종종 밭에 간다거나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지나가게 되면 자기가 아는 바를 하나씩 털어놓고는 했다. 집이 불길한 건 사실이지만 그 집에 얽힌 이야기는 흥미롭고 사람을 자극하는 게 있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는 상관없이.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집에 있는 누군가가 들으라는 것처럼 그 주변을 지나갈 때마다 한 마디씩 하고는 했다. 예전에 살던 사람들이 터의 기운 때문에 일이 안 풀리고 사업도 망하고 하나둘 비명횡사를 하거나 견디지 못하고 야반도주를 했네 하는 이야기들을 말이다.
그러나 이런 집과 언덕에 얽힌 소문이란 건 근거 없는 괴담과 비슷했다.
오늘도 어쩌다 언덕 아래를 지나가게 된 마을 노인들은 꼭 흉물을 대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나눴고, 그 말을 엿듣던 ‘영주(靈宙)’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 도깨비 언덕 흉가라니.
어느 순간부터 그 집은 그런 이름으로 고유명사가 되었다. 알게 모르게 다른 지역에까지 소문이 났고 때로는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네, 미스터리 소재를 찾는 방송이네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아-!”
영주는 집에 얽힌 오명에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토해냈다.
영주가 머무는 집은 근방에서 꽤 유명한 장소였다. 외양만으로 보면 한때는 깔끔하고 모던하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마을의 다른 집보다 좀 더 높은 데 자리 잡고 있어 주변 풍광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고, 크기도 제법 있는지라 꽤 부유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거라며 부러움을 사기도 했었다.
- 이 집 가족들은 그냥 떠날 때 되어서 나간 거야.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고.
영주는 집을 떠난 가족들을 떠올렸다. 이 집에 마지막까지 머물다가 떠난 이는 가장 나이가 많은 여성이었고, 거동이 힘들게 되자 다른 지역으로 시집간 막내딸의 집으로 옮기게 되었을 뿐이다.
사람이 비명횡사했다거나 터의 기운을 못 이기고 도망갔다거나 하는 건 사람들의 입을 타고 말이 부푼 것뿐이다. 방치된 집이라고 다 같은 취급은 아닐 터였음에도 이 언덕의 폐가를 중심으로 별별 소문이 돌고 있었다.
이내 도깨비가 살던 터에 함부로 집을 지어 사람들이 급살을 당했느니, 강도가 들어와서 주인을 살해했다느니 흉흉한 이야기까지 따라붙었다. 그 소문을 시정할 힘이 없는 영주는 속만 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 집이에요. 한번 들어와서 살펴보시죠.”
영주는 집에 들어오는 사람의 기운을 느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간 발길이 끊어졌던 집에 사람들이 찾아온 것이다. 영주는 오랜만에 찾아온 사람들을 반가워했다. 이 집 가족들이 떠난 지 거의 20년 만이었으니까.
- 절대 놀라게 하지 말아야지.
영주는 계단 근처에 조용히 몸을 숨기며 이번에 찾아온 사람들을 조용히 살펴보았다. 집을 찾아온 사람들은 중개사로 보이는 남자와 중년의 부부로 보였다. 정말 오랜만에 사람의 기운을 느낀다며 영주는 반가움에 들뜨고 말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세 명의 방문자 중 부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뭔가를 보고 멈칫했다.
“왜 그러세요?”
“아뇨, 저기 계단에 사람 있던 것 같던데.”
“에이, 그럴 리가요.”
그날 지나치게 기분이 풀어진 탓일까? 영주는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말았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요, 그저 영주는 조용히 그들을 곁에서 지켜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영주의 모습을 얼핏 목격한 부인 쪽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이에 중개사로 보이는 남성이 아무렇지 않은 척 입을 열었다.
“혹시 동네 꼬마들이 몰래 들어왔을지도 몰라요. 빈집에는 으레 그런 일이 있거든요.”
가끔 헛소문 때문에 어린 녀석들이 들어오기도 한다고 중개사가 덧붙였지만, 부부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부인 쪽은 어린애들이 아니라 젊은 여자를 본 것 같았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 바보! 그때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니었는데.
이후 그들은 다시 이 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던 걸까?
영주는 사람이 온 것을 너무 반가워한 나머지 긴장이 풀린 자신의 안일함을 탓했다.
본디 영주는 그 집의 터주신이었다. 그 집이 생겨났을 때부터 집을 보호하고 그 안에 머무는 이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타고난 존재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이 집을 찾아오지 않았다. 집의 수호신은 사람이 살아야만 기운을 얻는 것이다.
- 난 더 이상 여기서 버틸 수 없어.
영주는 절망적인 시선으로 집을 바라보았다. 영주가 그나마 버텼기 때문에 이 집은 쇠락해 가는 걸 약간 늦출 수 있었다.
- 살인 사건 같은 건 있지도 않았어. 그저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졌을 뿐이야.
그러나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으려고 하는 이 집에서 영주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결국 떠나야 할 시기가 일찍 온 것뿐이라며 영주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렇게 터주신인 영주는 단념하고 집을 떠났다. 영주마저 떠나자 도깨비 언덕의 집은 아무도 남지 않는 집이 되었다.
얼마 후 마을 사람들은 언덕의 폐가에서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는 걸 눈치챘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집 창문에서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았다던가 이상한 빛이 서려 있었다거나 하는 소문이 마을에 새롭게 떠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