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집 : 이야기를 모으는 자 -8-

물 위의 공 (2)

by 이사금

#008. 물 위의 공 (2)






그건 여래가 고등학교 수험생 시절 다닌 같은 학원의 아이들로부터 듣게 된 이야기였다.


***


진기는 근처 개울가를 내려보았다.


오늘 아침까지 비가 내렸기 때문인지 근처는 물기로 축축했으며 개울가의 물도 불어난 것처럼 보였다. 빗물인지 냇물인지 알 수 없는 섞인 물들이 바위와 돌 틈을 타고 흘러 아래로 흘러가고 있었다.

지난번에 본 그것은 이번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진기에게 변화가 있었던 걸까? 하여간 그 이상한 일이 있고 나서 친구인 하림은 진기가 물가로 가면 유달리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왜 그렇게 신경을 쓰냐며 진기가 타박하자 하림은 버럭 화를 냈다.


“너 새끼가 물에 빠져 죽을까 봐 그런다. 왜?!”


지난 번에 있었던 일은 아닌 척해도 하림이 쪽이 더 놀랐던 모양이다. 언제나 덤덤했던 하림의 반응에 진기는 약간 놀랐다. 남들에게 관심 없는 무심한 놈이라 생각했더니 진기는 하림의 또 다른 일면을 혼자 봤다는 생각에 묘한 쾌감에 도취했다.


진기는 흐르는 물을 바라보다 시선을 거두고 안으로 들어왔다. 저번처럼 또 홀리는 일이 생기면 곤란하니까. 아마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하림이 녀석이 발칵 뒤집어질 게 뻔했다.


진기는 자신이 몇 주 전에 겪은 일을 떠올렸다.


겨울이라고 하지만 아직 눈은 내리지 않았고 물가도 얼지 않던 시기였다. 그날 진기는 공부를 하다 답답한 나머지 개울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춥기야 했지만, 몸을 웅크릴 정도로 추운 것은 아니었고 공기가 차가웠어도 숨 쉴 때마다 속을 찌를 정도는 아니었다. 개울가의 물도 얼어붙으려면 동장군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던 시기였다.


- 어라, 저거 뭐지?

그때 진기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개울가 물 위에 동그란 것이 둥둥 떠다니는 게 보인 것이다.

- 누가 놀다가 공을 떨어뜨리고 갔나?


진기는 대수롭지 않게 근처 공원에 놀러 온 사람들이 놀다가 공을 물에 떨어뜨리고 갔다고 생각을 했다. 개울가에 사람들이 떨어뜨린 물건이나 혹은 몰래 버린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는 건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평범한 물건이라도 멍하니 그거 하나만을 바라보면 사람의 시야가 일그러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멍하니 하나만 바라보던 사람이 귀신을 보는 소동에 휘말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걸지도 몰랐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던 공이 흐름에 실려 점점 진기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진기는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마치 뭔가 신기한 것을 목격한 것처럼.


- 저 공… 내가 가지고 갈까?


보아하니 주인도 없는 공 같았다. 하지만 특별한 느낌이 나는 공은 아닌 것 같았다.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공이라면 주인이 저런 데 흘리고 갈 이유가 없었다.

개울가 자체는 그다지 깊은 물은 아니었다. 막상 뭔가를 건지려고 한다면 건지고 갈 수도 있었다.


그런데 굳이 놔두고 간 걸 생각한다면 저 공은 주인이 버린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 주인도 없는 거 같은데… 내가 가져가도 되겠지?


진기의 눈에 공은 멀리 있지 않아서 손을 뻗으면 금방 잡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거기다 공도 어느새 진기의 앞까지 물결을 타고 흘러왔다.


공을 줍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진기는 조금씩 조금씩 공에 가까이 갔다. 겨울이라 그런지 공기가 차가웠다.


그런데 그때였다.

“야 김진기!! 너 지금 뭐하냐?!”


갑자기 뒤에서 소리를 치며 진기의 어깨를 붙잡는 이가 있었다. 진기는 그것이 친구인 하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엥? 김하림, 너 여기서 뭐하냐?”

아직은 멍한 눈으로 진기는 뭐가 뭔지도 모른 채 하림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하림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미친-! 너야말로 지금 뭐 하는 거야?!!”

“엥, 아니 난 저기 공이 있길래….”

“공은 무슨 공?! 너 지금 얼어 죽으려고 작정했냐?!”

하림의 외침에 그제야 진기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겠다.


진기는 자신이 어느새 물속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미 진기는 허리까지 차가운 개울가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고 그건 진기를 뒤따라온 하림도 마찬가지였다.

“이 정신 나간 새끼! 하도 안 와서 어떻게 됐나 했네!!”


하림은 진기의 팔을 잡았다.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뭐가 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하는 진기의 팔을 이끌고 하림은 물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개울가 물에 진기와 하림의 옷과 신발은 젖을 대로 젖어서 걸을 때마다 물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빨리 와! 동상 걸리겠다! 미친놈아!!”

진기는 그제야 확실히 정신을 차렸다.

자신은 홀린 거였다.

물 위에 떠 있던 뭔가를 보고….

진기는 마지막으로 자신을 홀린 것의 정체를 알고 싶어졌다. 그는 하림에게 팔을 잡혀 끌려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물가를 바라보았다. 공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지만, 자신의 기억보다는 좀 더 멀리 있는 거 같았다. 그리고 공이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모양이 둥근 것 같지도 않았다.


이윽고…


진기가 공이라 생각했던 그것은 돌아가는 진기를 흘끗 노려보는 것 같더니, 이내 그 몸을 빙글 돌리고는 차고 검은 물속으로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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