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화살 (1)
#009. 돌아온 화살 (1)
이야기가 끝나고 방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여래는 그 알 수 없는 침묵이 자기 몸을 죄어드는 것 같아 묘하게 어색하고 찝찝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남자의 강요에 따라 이야기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자신이 꺼낸 이야기가 만족스러웠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정확하게 그 이야기는 고등학교 시절에 다녔던 학원의 누군가가 겪었다고 하는 이야기를 좀 더 그럴싸하게 각색을 했을 뿐이다.
진위가 확실하지 않은 소문이었고, 당시 십 대 아이들이 으레 떠들만한 평범한 귀신 목격담에 불과하다고 여래 스스로도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듣기에 흥미로웠는지는 판단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모를 일이다. 지금 이 남자는 오싹한 이야기를 여래에게 요구했고 여래는 마치 미숙한 학생이 어떻게 완성한 과제를 평가받는 것처럼 의기가 꺾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약간의 침묵이 더 흐른 끝에 남자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게 끝이야?”
“…네?”
남자의 입에서 실망을 숨기지 못하는 듯한 말이 튀어나오자 여래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여래는 어쩌다 대답을 하기는 했지만, 온몸의 기운이 아래로 빠지는 감각과 으슬으슬한 추위를 동시에 느꼈다.
이내 남자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여래를 지긋이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 아 씨…! 대체 나더러 어쩌라는 건데.
말없이 행하는 그 동작의 의미를 눈치챈 여래는 형언할 수 없는 심정에 말문이 막히면서도 어떻게든 입을 열어 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는 모순적인 상황에 사로잡혔다.
이야기.
좀 더 오싹한 이야기.
지금 자신의 상황보다 더 오싹한 이야기.
여래는 이를 꽉 깨물면서 그 짧은 시간에도 머리를 최대한 굴렸다. 이윽고 영겁 같았지만, 실상은 허망하리만큼 짧은 침묵이 시간이 지났다.
여래는 서서히 입을 열었다.
***
1.
거지 같은 년, 냄새나는 년, 더러운 년, 씨X년, 개 같은 년…….
강기의 머릿속에 온갖 욕설들이 떠올랐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 자신이 앞의 여자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강기는 감히 눈앞의 여자에게 그때와 같은 욕설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지금 강기의 목줄은 오로지 눈앞의 여자가 죄고 있었기 때문이다.
2.
강기는 지금의 상황에 쉽게 익숙해지지 못했다. 아무래도 한쪽 다리가 없이 걸어가는 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꽤 지났건마는 강기는 자신의 다리를 보면서 두고두고 과거의 실수를 후회했다. 사고가 나기 전에, 네가 아무리 젊어도 무모한 짓은 하지 말라고 하던 사람들의 충고를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강기는 젊었고 혈기가 넘쳤다. 그래서 도통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사고 이후 목숨이라도 건진 게 다행이라는 사람들의 위안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1년 전 오토바이 사고 이후 그는 더 이상 두 발로 걸을 수 없었다.
그날 사고가 있던 날, 그는 자신의 왼쪽 다리가 사라진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도 믿을 수 없었다.
이것은 기분 나쁘고 질 나쁜 악몽이야.
강기는 잠에 든 뒤 깨어나면 자신은 멀쩡한 모습으로 일어날 거라고 믿고 싶었다. 억지라는 것을 이미 머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강기는 그렇게 바랐다.
하지만 한번 일어난 일이 다시 조정되는 일은 꿈에도 있을 수 없었다.
그 사고 이후 강기는 분노로 가득 찬 시간을 보냈다. 자기 운명이 왜 이렇게 되었냐며 주변을 원망하기도 했다. 사고의 원인은 자신한테 있었으나 그때 적극적으로 자신을 말리지 않은 사람들에게 증오하는 말을 쏟아냈다. 목숨이라도 건진 게 천운이라고 위로하는 사람들의 말을 매몰차게 거부했다.
그들의 의도가 나쁜 데 있지 않음에도 강기는 그런 이야기 따윈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한동안 그는 모든 것에 화를 냈고 원망했고 우울해했다.
사고 이후 일관된 그의 행동에 지친 것은 강기 본인이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이었다. 평소 그와 친하던 사람들은 서서히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와 술자리를 마다하지 않던 친구들도, 선후배도, 그에게 호의를 품던 여자들도 하나둘 그를 떠나갔다.
이제 그에게 종종 연락을 하는 건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동생뿐이었다. 아버지는 달랐지만 유일하게 그를 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동생마저 최근 입대를 했기 때문에 연락이 더 어려워진 측면이 있었다. 동생은 강기의 몸 상태를 고려해 입대일에 굳이 보러 오지 않아도 된다고 형인 그를 배려해 주었다.
당시 강기는 몸도 몸이었지만 마음도 만신창이었기에 동생을 배웅하러 나갈 형편이 되지 않았었다. 그래도 강기는 가끔 동생의 안부가 궁금하여 그전에는 연을 끊고 살다시피 한 어머니에게 종종 전화를 걸기도 했다.
어쩌다 연락이 닿은 그의 어머니는 그가 전화를 하는 것도 꺼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모자지간의 정이 있기야 한 모양인지 돈이 필요하면 부쳐 주겠다면서 급하게 전화를 끊는 게 일반적이었다.
가장 궁금했던 동생의 안부는 아주 짤막하게 얘기하고 말 뿐이었다. 어머니의 상태가 이 정도인데 아버지는 오죽했을까.
애초에 아버지란 작자는 강기의 연락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다. 강기가 어린 시절 어머니와 이혼한 그는 희한하게도 재혼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결혼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부류였다.
네가 생긴 것이 가장 큰 실수였다고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의 결과가, 과거의 오점이 화살이 되어 돌아온 결과라고 그는 자식인 강기에게 스스럼없이 말하곤 했다.
그래도 책임감은 남았던 모양인지 아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사는 것마저 질색했음에도 생활비는 부쳐주던 그는 강기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연락을 끊어버렸다.
강기가 그에게 연락하고 싶어도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번호마저 바꿔버린 모양인지 연락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를 잘 아는 지인들은 그가 출가(出家) 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어버렸음에도 강기는 딱히 아버지의 정이 그립진 않았다.
딱히 강기가 사람의 정을 그리워한 기억은 없었다. 그의 부모가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낼 수 없는 이들이라 해도 강기는 언제나 혈기와 에너지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 에너지가 너무 넘치다 못해 주변을 불태워버릴 정도라고 질색하는 이들이 있었을 만큼.
때로는 그 에너지가 다른 사람이 취해야 할 것까지 끌어다 쓰는 정도라며 그를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젊은 강기에겐 가소로운 일이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