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화살 (2)
#010. 돌아온 화살 (2)
그런데 그랬던 강기가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강기는 낯선 이 감정에 당황하고 어쩔 줄 몰라했다.
사고를 당하기 전 그의 넘치는 에너지는 이제 해소하고 나갈 데 없는 분노가 되었고, 그의 내부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했다. 처음 분노는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다가 더 태울 것이 없어지자 저절로 몸을 줄여가며 서서히 소진되기 시작했다.
분노가 지나간 자리에는 우울함과 허무함이 몰려왔다.
그 우울함과 허무함이 식은 재와 같아 강기의 마음을 버석하고 메마르게 만들었다.
강기는 사고 이후 처음으로 ‘죽고 싶다’라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기는 죽을 수 없었다.
강기는 사고 당시 자신의 몸이 겪었던 고통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던 그였음에도 몸이 부서지고 피부가 찢어져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은 놀라우리만치 생생했다.
죽음에 도달하려면 다시 한번 그때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걸까?
설령 그 고통을 감수하고 죽음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속이 시원할까?
강기의 죽음에 다른 이들이 자신한테 부채를 느끼거나 혼자만 자신과 다른 행복을 누리는 것에 미안해하기라도 할까?
거기까지 생각이 들자 강기는 자기 혼자 죽는 것은 매우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고통스럽고 우울한 감정이 강기를 들이닥쳤다. 온 세상에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견딜 수 없었음에도 강기는 죽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는 살아도 산 게 아닌 것처럼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자신의 삶이 절망으로 가득 찼음에도 그는 죽는 것이 두렵고 억울했기에 죽지는 못하고 겨우 삶을 지속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3.
윤슬. 김윤슬.
강기는 여자의 이름을 속으로 나직이 불러보았다. 자신에게 스스럼없이 다가온 희한한 여자.
사고 이후의 어느 날이었을까? 강기는 이제 그날이 며칠이었는지 정확하게 떠올리지도 못했다.
그날 분명 강기는 안에만 있기 힘들어했었다.
집에만 있으면 우울함이 온 정신을 갉아먹을 것만 같아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강기는 목발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아직도 목발에 익숙해지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그건 강기가 견뎌내야 할 운명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든 그 상황에 익숙해져야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계단을 오르는 것은 역시 쉽지 않았다. 순간 그의 목발이 미끄러지고 그의 몸이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대로 계단 아래로 떨어진다고 느끼며 강기는 눈을 질끈 감았을 찰나였다.
“… 조심해요! 넘어져요!”
그 순간 강기는 뒤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몸을 감싸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딱딱하면서 폭신한 사람의 감각이 등에서 느껴졌다. 강기는 자신을 받쳐주는 사람이 무게를 견디다 못해 휘청거리는 것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까딱 잘못했으면 둘 다 넘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준 덕에 강기는 손으로 계단의 난간을 붙들 수 있었고 겨우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강기에겐 이것 또한 천운이나 다를 바 없었다.
그때 지나가던 여자가 강기를 뒤에서 받쳐주지 않았더라면 그는 그대로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을 테니까 말이다. 겨우 몸을 추스른 강기가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그보다 훨씬 작은 체구로 낑낑거리며 그를 잡아준 젊은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여자의 모습은 위태로웠지만 단단해 보이기도 했다.
강기는 허둥지둥 계단의 난간을 잡아 여자에게서 벗어났다. 그렇게 그나마 몸을 가눌 수 있게 되자, 여자는 한시름 놓은 표정으로 떨어진 목발을 들어 강기에게 건네주었다.
“어… 죄, 죄송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여자의 친절에 강기가 어쩔 줄 몰라하며 그에게 사과했다.
그런데 그렇게 사과를 해 놓고도 놀란 것은 다름 아닌 강기 본인이었다. 강기가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던가.
그동안 언제나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제멋대로 살아오던 것이 강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 진득하게 민폐를 끼쳐오던 그였지만 한 번도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제대로 사과를 한 적은 없었다. 하물며 자신의 실수로 일어난 사고에도 자신을 말리지 않은 주변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렸던 이가 강기 아니었던가.
생각지도 못한 자신의 행동에,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여자의 친절에 강기는 당황하고 말았다. 여자에게 이런 식으로 친절을 받은 것은 왠지 처음 같았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강기에게 아양을 떨거나 아부를 하는 여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순수하게 자길 도와주는 사람을 그동안 만난 적이 있었던가? 심지어 친부모마저 자식인 강기에게 애정 주기를 거부하던 상황이 아니었던가.
그래서인지 이번에 강기는 여자에게 더 폐를 끼치기 싫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자신에게 친절을 더 베풀어줬으면 하는 상반된 마음도 들었다. 그런 감정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채 강기는 허둥지둥 여자에게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러나 무슨 일일까?
강기가 목발을 짚고 돌아가려 하자 여자는 강기를 바래다주겠다고 했다. 괜찮다고 거절하는 강기에게 여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왠지 안심이 되지 않는다고 말을 이었다. 그렇게 여자의 도움으로 그날 강기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것이 강기와 윤슬의 첫 만남이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강기는 자신이 꼭 천사를 만난 것 같다고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