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 열 줄 소설 -16-

혼잡과 날카로움

by 이사금

016. 혼잡과 날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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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내리실 역은 XXX역, XXX역입니다.”


진영은 오늘따라 지하철에 사람이 많다고 느꼈고, 지금 발 디딜 틈조차 없다 여기면서도 어떻게든 사람들 사이를 비집어 공간을 만들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그러다 앞에 있는 누군가와 몸이 부딪혔고 순간 옆구리가 욱신거리는 걸 느끼며 진영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그는 앞에서 모자를 쓴 채 얼굴이 잘 드러나지 않는 창백한 남자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사실에 당황하고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당황한 진영이 급하게 사과했으나 남자는 별 반응 없이 그를 바라보다 이내 내리는 사람들에 섞여 썰물처럼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남자의 태도에 뭔가 황당함을 느낀 진영이 조금 넓어진 공간에 안도를 느낄 참이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새된 비명을 질렀고 섬뜩한 기분에 사로잡힌 진영은 저도 모르게 바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내 진영의 시야에 들어온 건 지하철 바닥에 점점이 흩어진 붉은 선혈이었다.


그리고 아까부터 욱신욱신 고통이 올라오는 진영의 옆구리에는 날카롭게 반짝이는 작은 칼 한 자루가 덜렁 꽂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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