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화살 (5)
#013. 돌아온 화살 (5)
그때 강기는 윤슬에게 선생님한테 이르면 죽여버리겠다, 너네 집에 불을 지르겠다며 심심찮게 협박도 했었다. 분명 그때 성적인 추행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한창 아이들이 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성적으로 온갖 더러운 욕을 윤슬에게 퍼붓는 것은 예사였고 윤슬의 옷을 벗기고 그 모습을 촬영하여 그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했던 일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 사진을 어른들한테 들키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기에 교사들 앞에선 결코 그를 괴롭히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때의 강기는 모든 아이들이 동경하는 대상이었고 또한 두려워하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그를 막는 인물은 없었다.
거기다 윤슬 역시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구조 요청을 하거나 어른한테 도움을 청하는 걸 생각할 수 없었다. 어쩌면 눈치를 챈 교사가 있었을 수도 있으나 아이들에게 생각보다 어른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피해자인 윤슬은 차마 자신이 당한 일을 밝힐 수 없었다. 할머니가 자신을 먹여 살리느라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할머니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윤슬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그 폭정이 끝나게 된 계기는 시간이 지나 한 학년 위로 올라가면서 윤슬과 강기의 반이 갈렸기 때문이었다. 윤슬에게는 그나마 다행이라 할 일이었다.
하지만 그 1년 동안 피해자였던 윤슬에게 들러붙은 그림자는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졸업할 때까지 윤슬은 철저하게 그 학교에서 고립되고 말았다. 아마 분명 그랬을 것이다.
거기까지 떠올린 강기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몸에 열이 올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제야 자신이 저지른 짓들이, 현재는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일들이 지금 강기 자신한테 돌아오려 하고 있단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미 엎지른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듯이, 한번 쏘아버린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화살은 사냥감이 누구든 그저 맞출 뿐이다. 강기는 그 칼 같은 현실을 지금 제대로 실감하고 있었다.
아니다. 지금 자신이 쏜 화살은 돌아왔다.
그 화살에 맞은 사냥감이 거기서 죽지 않겠다면서 그 화살을 자기 손으로 뽑아 버렸다.
그리고 이번엔 사냥감이 활을 만들어 사냥꾼을 쏘려고 쫓아왔다. 화살은 그 사냥감의 몸에 꽂혔던 그것이었다.
두려움은 공포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소란을 부리는 게 아니다. 오히려 침묵처럼 사람을 압도하고 정신을 마비시키는 것이다.
지금 눈앞에 윤슬이 있고, 이 윤슬과 함께 있는 상황에 강기는 아득한 두려움을 느꼈다. 열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황에서 강기는 비틀거리며 목발을 찾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목발은 윤슬의 등 뒤에 있었다. 윤슬은 항상 강기의 옆이 아닌 자신의 옆에 강기의 목발을 두곤 했다.
윤슬은 여전히 얼음보다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강기는 생각했다. 몸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힘이 윤슬을 이기지 못할까? 그래도 윤슬은 여자고 체구도 작은 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 아까부터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윤슬이 자기 정체를 밝혔을 때부터, 그리고 그가 과거의 일을 떠올렸을 때부터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는 윤슬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윤슬이 자신을 찾아와 챙겨주었던 것도 웃어주었던 것도 떠올렸다. 설령 그것이 이 상황을 위한 밑밥이었다 해도 지금의 강기를 살린 것은 틀림없는 윤슬이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처지를 알았다. 자신은 이미 윤슬에게 메인 지 오래라는 것을. 한때는 자신이 사냥꾼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이 윤슬에게 잡힌 사냥감이었다.
“너… 너… 나, 나한테 뭘 어쩌고 싶은 건데…?”
강기는 차마 변명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 여자는 그때의 일을 복수하기 위해 처음부터 계획하고 접근한 걸까? 왜 이제야 자신한테 나타나서 이러는 걸까? 자신이 사고를 당했단 것을 알고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걸까?
하지만 윤슬은 그의 그런 의문에 아무것도 대답해 주지 않았다. 왠지 지금의 상황은 사고를 당하고 자신의 다리가 절단되었다는 걸 알았을 때와 비슷한 것 같았다. 지금까지 자신을 이루고 있던 것이 한 번에 무너졌던 그때 그 느낌이.
윤슬이 심드렁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글쎄…. 다음엔 어떻게 할까?”
지금 윤슬의 표정은 마치 어린애가 벌레를 가지고 놀다가 지저분한 체액이 몸에 튀었을 때의 표정 같았다.
강기는 짐작했다.
적어도 이 상황은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윤슬이 쉽게 강기를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강기는 알았다. 이 여자는 자신을 단순히 죽이기 위해 찾아온 것이 아니란 것을.
이 여자의 복수는 이제야 시작이란 걸. 죽음으로 쉽게 끝내기엔 증오심이 매우 깊었고 해소될 수 없었다.
윤슬이 그에게 되돌려준 화살엔 독이 발려 있었다. 그리고 그 독은 아주 천천히 상대를 마비시키고, 그다음 상대를 고통스럽게 죽여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