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집 : 이야기를 모으는 자 -14-

돌아온 화살 (6)

by 이사금

#014. 돌아온 화살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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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가 끝났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여래는 무언가 묵직하고 커다란 일을 끝낸 것처럼 저도 모르게 숨을 내쉬었다. 막막함이 아닌 어려운 일을 해냈다는 안도감에서 비롯된 숨결이었다.


그러나 여래는 알고 있었다.


남자가 이 정도 이야기에 만족할 리는 없을 것이다.


“…….”


남자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빤히 여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끔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테이블 위로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긴 이야기가 끝나고 침묵이 찾아오자 건반 두드리듯 테이블을 치는 소리가 고요한 방안에 울려 퍼졌다.


이야기를 하느라 남자가 자길 빤히 바라보는 것도 잊어버린 여래는 문득 깨달았다. 남자는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생각에 취해 있는 것이다. 여전히 눈은 커다랗게 뜬 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남자의 모습에 여래는 괜스레 더 불안해졌다.


그때였다.


“형, 아직 안 끝났어?”


지루함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남자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유재민은 방안에서 여래와 남자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것일까?


방 안의 상황을 묻는 그 목소리에는 여래에 대한 관심은 일절 보이지 않았다. 여래가 한 이야기는 전혀 모르는 것 같은 말투였다.


밖에 있는 유재민의 목소리에는 오로지 남자가 지금 상황에 만족했는지, 뭘 하고 있는지, 하고 있는 일이 언제 끝나는지에 대한 궁금증만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여래는 생각했다.


지금 눈앞에 앉은 이 남자는 아마 질이 나쁜 범죄자 부류일 것이다. 아마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납치한 뒤 고문을 하거나, 살인을 저지르는 그런 부류일지도 모른다. 어떻게 이런 인간이 이런 작은 마을에 숨어들었는지, 어떻게 사람들 눈을 속일 수 있었는지 여래는 그것까지 파악할 수 없었다.


이 남자가 언제부터 이런 짓을 벌였는지 알 수도 없다.


하지만 여래는 은혜의 죽음에 이 남자가 깊게 관여한 걸지도 모른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은 소하처럼 촉이 좋거나 영감이 뛰어난 인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래는 이 남자가 은혜에게 자신에게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강요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다면 유재민 저 자식은 왜 이 남자를 그렇게 신경 쓰고, 희생자를 일일이 찾아서 대령까지 하는 걸까?


여래는 의아했다.


그러나 그동안 자신이 보아 온 유재민의 행동이나 성격을 보자면 짐작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건 언제였더라?


정확한 날짜는 기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재민이 다른 애도 아닌 은혜에게 같이 놀자고 한참 떼를 쓴 적이 있었다. 평소에는 은혜를 자기 아래로 보던 녀석이 그날따라 자기 친구들이랑 놀자며 은혜에게 달라붙었다.


그러나 재민의 친구들이라고 한다면 근방에서도 질이 나쁘기로 소문난 애들이었다. 그중에는 사고를 치고 자퇴를 한 아이도 있었다.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을 뿐이지 재민에게 호감이 있을 리 만무했던 은혜는 그날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재민에게 확실하게 거절하지도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가 학교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여래와 은혜가 막 교문을 나서려는 순간이었다.


“야, 여기!”


그때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재민이 은혜를 향해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재민의 옆에는 어딘가 분위기가 험상궂은 남자애들이 몰려 있었다. 학교가 바로 앞인데도 담배를 물고 있는 녀석도 보였다. 지나가는 아이들은 그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저 흘끔거리고만 있었다.


여래와 은혜는 어쩔 줄 모른 채 교문 밖을 나서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재민이 실실 웃으며 은혜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게 소하였다.


그날 주번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였는지 다른 애들보다 늦게 교정으로 나왔던 소하가 급하게 여래와 소하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소하의 무표정하지만 태연한 얼굴을 본 순간 여래는 긴장감이 씻은 듯 내려가는 걸 느꼈다.


“은혜, 너 오늘이 할머니 제사라고 하지 않았어?”

“응? 어…!”

“너네 부모님이 그래서 빨리 들어오라고 했잖아. 거들어야 할 일 많다고.”


그때 부모님에 할머니까지 언급되자 재민도 더 이상 은혜에게 같이 가자고 떼를 쓰지 못했다. 소하는 그렇게 말하며 은혜의 팔목을 잡아끌었고, 여래가 그 뒤를 쫓아갔다. 여래는 뒤쪽에서 재민이 남자애들과 뭐라고 수군거리는 걸 들은 것 같았다.


다행히도 그 일 이후 재민이 은혜에게 같이 놀자고 달라붙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평소보다 은혜를 얕잡아보고 소하를 미워하는 태도가 짙어졌을 뿐.


그러나 그 일 이후로 소하가 여래, 그리고 은혜와 친분이 깊어진 건 틀림없었다.


그런데 왜 하고많은 아이들 중 녀석은 가장 얌전한 은혜에게 그랬던 걸까? 혹시 은혜가 가장 만만해 보였기 때문일까? 만약 그때 은혜가 재민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대로 끌려나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여래는 상상도 하기 싫어졌다.


어쩌면 재민이나 그 녀석들은 무슨 짓을 벌여도 반항을 하지 못할 것 같은 대상을 물색했던 건지도 몰랐다.

그런 일이 있고 며칠 뒤 여래는 은혜에게서 기묘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소하한테 우리 할머니 제사 얘기는 한 적 없었어.”


그날이 할머니 제사는 맞았지만, 기독교를 믿는 집안 특성상 은혜의 집에서 크게 준비할 만한 것은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은혜는 소하가 할머니 제사를 핑계 삼아 준 덕에 혹시 모를 덫을 벗어날 수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래는 소하에게 은혜에게서 뭐 들은 게 있었냐고 직접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소하의 대답은 의외였다.


“아니, 난 그냥 그때 아무 말이나 던진 거였는데.”

“엥? 진짜?”

“응, 근데 신기하다. 진짜 은혜네 할머니 제사였다니.”


아무래도 소하에게마저 그날의 일은 신기한 경험이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날의 일은 여래와 소하, 은혜 세 사람에게 특이한 경험이었고 유재민이라는 인간에 대한 악감정이 남은 기억이었다.


아마, 지금 유재민이 여래를 강제로 끌고 와 남자에게 갖다 바친 행위는 그때 은혜를 다른 녀석들에게 갖다 바치려 한 그 행위와 크게 다를 바 없었으리라.


톡톡-


그렇게 여래가 골똘히 생각에 잠겼을 무렵 남자의 손가락이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강해졌다. 순간 여래는 남자가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남자는 지금 여래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여래는 오싹함과 함께 초조함이 들었다. 또 이야기를 만들어낼 재량이 과연 여래 자신에게 있을까?


- 어쩌지? 그냥 그때 그 이야기를 해 볼까?


그렇게 여래는 남자가 좋아할 만한 오싹하면서도 신기한 경험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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