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의 추억
#015. 연못의 추억
그건 고등학교 시절 친구인 소하가 신기한 것이 있다며 여래와 은혜를 잡아 이끌었던 날의 일이다. 당시 그들이 도착한 곳은 학교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뒷산의 계곡 근처였다.
지금은 어느 정도 개발이 되어 사람이 붐비게 되었지만 적어도 그 시절만 하더라도 그 계곡 근처는 아는 사람만 알 만한 장소였다. 여래는 소하가 그곳을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평소 촉이 좋았던 소하가 특유의 능력으로 기묘한 기분이 드는 장소를 찾아낸 것인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다.
하여간 당시 아는 사람만 알 만한 그곳에는 매우 깨끗하고 너른 연못이 하나 펼쳐져 있었다. 그곳은 소하가 먼저 알아낸 장소였고, 종종 은혜와 여래도 소하를 따라 기분 전환 겸 구경을 하러 가던 곳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연못에 세 사람의 키보다 훨씬 커다란 뱀 두 마리가 엉켜서 반대편 가장자리에 몸을 누이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는 먹처럼 까맣지만, 윤기 나는 비늘을 가진 뱀이고 하나는 색을 한 가지로 묘사하기 어려울 정도로 화려한 색상을 가진 뱀이었다.
그 뱀들은 세 여자애가 자신들을 바라보든 말든 개의치 않으며 연못의 물살을 살살 즐기는 것 같았다. 뱀들이 미미하게 움직일 때마다 그 비늘은 햇살과 물방울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반짝거리고 있었다. 세 아이는 마치 홀린 것처럼 뱀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뱀, …무서워.”
소하와 여래는 마치 신기한 짐승을 바라보듯 그 뱀들의 모습을 구경했지만, 은혜는 그 뱀들이 무서웠던 모양이다. 은혜는 연못에서 멀어지며 여래와 소하의 뒤로 숨으려고 했었다.
“괜찮아, 은혜야.”
두려워하는 은혜를 달래며 소하가 다시 뱀들을 가리켰다.
“전부터 봤는데 저것들 절대 사람들 공격하지 않아. 신기한 뱀이야.”
소하는 그날 그렇게 말했다. 어쩌면 집안이 집안이었기에 저 뱀들에게서 뭔가 특별함을 느낀 건지도 몰랐다. 그런 소하의 말에 은혜도 안도감을 느낀 것인지 전보다 덜 두려워하는 기색으로 뱀들을 바라보았고 나중에는 무서움 따위는 잊어버린 것 같았다.
저 정도 크기라면 뱀이 아니라 구렁이일 거라며 아마 그날 여래와 소하 둘 중 누군가가 덧붙였던 것 같기도 했다.
드물 정도의 커다란 뱀, 아니 구렁이 두 마리와 신비롭고 아늑한 연못.
그것만으로도 세 명의 여자아이는 현실이 아닌 또 다른 이세계에 빠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이윽고 먹구렁이와 오색 구렁이가 천천히 물속에서 움직였다. 여래, 소하, 은혜는 보물을 구경하는 것처럼 그 두 마리 구렁이를 바라보았다.
구렁이들도 세 여자아이를 인식한 모양인지 빤히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소하의 말대로 뱀에게선 위험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왠지 저 구렁이 두 마리 다 암컷일 것 같지 않아?”
그때 소하가 뭔가 눈치챘다는 것처럼 손으로 두 마리 구렁이를 가리켰다.
그리고 그다음이었다. 가만히 있을 줄 알았던 먹구렁이가 갑자기 몸을 움직이더니 사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그 꼬리로 물살을 갈랐다.
꺄아-
그러자 이슬 같은 물방울이 세 사람이 있는 곳까지 튀었다. 세 사람은 후다닥 그 자리를 벗어났다.
이윽고 촤라락- 물길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두 마리 구렁이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아이들이 뒤를 돌아보자 두 마리 구렁이는 자신을 구경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는 것처럼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때 여래는 정말 그 뱀, 아니 구렁이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옛날 이야기처럼 승천을 하기 위해 몇 년 동안 기다리고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면서 소하가 일러주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일절 뱀과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지는 않았었다.
***
이런 이야기라면 괜찮을까?
그날 신기한 구렁이를 목격한 일은 여래와 소하, 그리고 은혜 세 사람이 간직한 추억이다.
- 안돼. 이 이야기는 저 남자 따위에겐 들려주기 아까워.
여래는 과거의 추억을 입에 담으려다가도 묘하게 가슴 깊은 곳에서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남자는 여전히 여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당장 여래한테 이야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때의 일은 비록 기묘했을지언정, 신비로운 기억으로 남은 일이었다. 여래는 이따위 남자에게 그 일을 이야기 해주기는 싫었다. 답답했던 고등학교 시절 가장 아름답게 남은 기억은 앞에 있는 남자에게 주기에는 지독하게 귀한 것이었다.
- 적어도 이 이야기는 꺼내지 말자. 아니 꺼낼 수 없어.
왜인지 그런 욕심 비슷한 고집이 여래의 내부에서 솟아올랐고 여래는 다시 머리를 굴려 다른 이야기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