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집 : 이야기를 모으는 자 -16-

목격

by 이사금

#016. 목격






자박거리는 작은 발소리가 고요한 골목길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아직 초등학생인 정민은 홀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체구와 작은 책가방은 곧 골목길 사이에 묻혀버렸다.


본래 으슥하다고 여겨지는 골목길이긴 하지만, 정민이 그곳에서 위험을 느낀 적은 없었다. 만약 그 골목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면 어른들이 먼저 그에게 경고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민의 가족이 이사를 오고 난 뒤 몇 달이 지났어도 특별한 사고가 벌어진 적은 없었다. 바꿔 말하면 정민이 사는 마을이 제법 치안이 좋다고 해도 되는 장소라고 스스로 증명하는 것일 거다.

그렇기 때문에 정민은 집으로 돌아가는 그 골목길에 사람이 없다고 해도 무섭지는 않았다. 해가 저물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고, 사람의 시선을 몽롱하게 만드는 오후의 햇살이 그 어두운 골목길에 살살 부서지고 있어 오히려 사람의 몸을 나른하게 풀어지게 만드는 날이었다.

그날, 정민은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이 참-! 이러지 마. 이런 데서 누가 보면 어떻게 해?!”


뭔가 따지고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달래는 것 같기도 한 것은 틀림없는 성인 여자의 목소리다. 어두운 밤길도 아니고 인적이 아예 드문 곳은 아니니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한들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정민을 그 자리에 불러 세운 이유는 다름 아니라, 목소리의 주인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분명 어딘가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오는데 정작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기묘한 상황이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러지 말라니까!”


속삭이는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이번에 좀 더 애처롭게 변했다. 그리고 거기에 약간의 절박함이 더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목소리의 주인은 보이지 않았고 정민은 아예 멈추어 섰다. 그리고 자신의 감각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짚었다.


정민이 느끼기에는 분명 저 골목길 안쪽에서 들려온 것이 틀림없었다.

사람의 시선에 노출되지 않은 장소, 건물과 건물이 겹쳐 짙은 그늘이 진 좀 더 으슥한 곳에서 묘하게 사람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정민은 마치 이끌리는 것처럼 소리가 난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제발… 좀!”


이윽고 정민은 그늘이 깊게 드리워진 더 안쪽에서 두 남녀가 엉켜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저 안에 얼굴이 창백한 젊은 여자를 좀 더 키가 큰 남자가 붙들고 있었다. 남자의 단단한 팔이 여자의 손목을 그러쥐고 마치 여자를 바로 덮칠 것처럼 벽으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히익-!”


그 모습을 목격한 정민은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게, 그래도 호기심 왕성한 어린아이 특유의 낮은 비명 소리를 질렀다.


정민은 어린아이였지만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순진하지 않았고, 어른들이 하는 일들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으슥한 곳에서 다 큰 남녀 두 사람의 몸이 엉켜있는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대강 파악하고 말았다.


- 우와! 저 사람들 이런 데서 뭐 하는 거야?


정민은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마치 흥미진진한 영화의 한 장면을 지켜보는 것처럼 두 남녀의 실랑이를 몰래 지켜보았다.


지금 창백한 얼굴의 젊은 여자는 여전히 난감한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며 애원을 하고 있다.


“저기 제발 손 좀 놔줘. 아프단 말이야.”


여자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깃든 것 같았지만 그래도 차분함을 유지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남자의 억센 손은 여전히 여자의 가는 팔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여자는 어떻게든 남자를 설득하려 하는 것 같았고 정민이 보는 방향에선 남자의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민이 그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겁에 질린 여자의 얼굴뿐이었다.

저 두 남녀가 앞으로 어떤 짓을 할지 궁금해진 정민은 그 자리를 뜰 생각은 안 한 채 두 사람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는 그저 이 해프닝을 심심한 하루를 깨뜨리고 벌어지는 재미있는 광경이라고만 생각했다.


“악! 아파!! 그만, 그만해!!”


반면 여자는 남자를 달래느라 정민이 자신들을 지켜보는 걸 눈치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골목 안쪽의 그늘이 좀 더 짙어졌다 싶은 순간 여자의 목소리에 아까보다 더한 공포가 스며들었다. 여자의 음성이 불안해지자, 그들을 지켜보던 정민도 덩달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영문을 알 수 없지만 뭔가 심상치 않게 상황이 돌아간다고, 아직 초등학생인 정민이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갑작스럽게 들이친 불안감에 압도된 탓인지 정민은 얼어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윽-! 으흑… 컥!!”

순간 여자의 말소리는 뭉개지고, 그 입에선 숨이 막히고 목이 졸리는 것처럼 괴로운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끄윽- 커억-!


상상도 할 수 없던 사람의 괴로운 신음 소리가 정민의 귀에 닿았고, 허옇게 눈이 뒤집힌 채 본래의 얼굴색보다 더 하얗게 질려가는 여자의 얼굴이 정민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히이익-!”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정민은 이번엔 숨기지도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지금 일어나는 일은 결코 남녀의 장난스러운 행위가 아닌 것이다. 남자의 억센 손은 어느 순간 여자의 팔에서 떨어져 이번엔 여자의 목을 가차 없이 조르고 있었다. 그것은 명백하게 살의가 깃든 행위,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도 ‘살인’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행위였다. 여자는 어떻게든 남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손으로 남자를 밀어내려고 바르작거리고 있었다.


커억- 끄윽-


이윽고 완벽하게 숨이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남자를 밀어내려는 여자의 손이 스르르 아래로 떨어졌다. 동시에 여자의 머리칼이 흐트러지며 공포에 질린 여자의 얼굴이 가려졌다. 곧 남자의 손이 여자의 목에서 떨어진 순간 여자의 몸은 마치 마네킹이나 인형처럼 생기 없이 바닥으로 털썩 쓰러졌다.


“?!”


정민은 이제 바들바들 떨면서 그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초등학생에 불과한 정민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바로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재빠르게 그 자리에서 도망쳐 사람들에게 저 남자가 여자를 죽였다고 소리를 지르는 용기가 당장 어린아이의 머리에서 떠오를 리 없었다.

정민은 그 자리에서 굳은 것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이윽고 쓰러진 여자에게 흥미를 잃은 것처럼 남자가 조용히 몸을 돌렸다. 감정이라고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 남자의 싸늘한 눈이 지금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정민을 향하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골목 안의 그늘 때문인지 남자의 얼굴은 정민의 눈에도 잘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꼭 처음부터 숨어있던 정민의 존재를 눈치챘던 것처럼 태연하게 남자는 정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


남자의 얼음장 같은 시선과 마주친 순간 정민은 심장이 덜컥 떨어지는 것 같은 감각을 느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며 머릿속에 빨간 불이 울리는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라고 정민의 본능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공포로 굳은 몸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이윽고 남자의 몸이 빠르게 정민에게 다가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정민이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다리를 움직였다. 하지만 남자가 더 빨랐다. 남자는 이제 정민에게 팔을 뻗었고 마치 수리가 병아리를 채가는 것처럼 정민을 그늘이 있는 자신의 자리로 끌어당겼다.


“아악!”


이윽고 골목길 안에는 어린아이의 짤막한 비명이 환영처럼 울리다 사라졌다. 운이 나쁘게도 그날, 그 시각에 그 골목을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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